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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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별의 문 앞에 섰다. 지금 나는 2년간 함께 살았던―그리고, 한 때는 결혼을 약속했었던―연인과 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헤어질 예정에 있다
한편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 글이 끝날 즈음의 내 마음이 어떨지는 단언할 수 없다. 세상에 영원한 마음이 없다면, 내 마음이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 확실한 건 현재의 내가 지독한 결핍, 발작에 가까운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고, 이렇게 글로 써서 남기는 일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작용이라는 것이다. 자기연민에 빠져 아주 대단한 석별의 정으로 포장하거나, 그로써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보겠다 하는 생각도 없다. 애당초 내 글에는 그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결합이란 서로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별은 단 한 사람의 의사만 있어도 이뤄지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내가 무언가 다르고 특수한 관계 속에 있다고 착각해왔을 뿐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이 어느 한 쪽에겐 갑작스럽지 않으며, 실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작용이라 생각했다. 맨 처음에 호기심은 사랑이 된다. 사랑은 배려가 되고, 배려는 인내가 되며, 인내는 체념이 된 다음 무관심이나 증오로 탈바꿈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결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가정할 때,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한 쪽의 착각 혹은 오만으로부터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예상도 없이 이별을 맞닥뜨렸으며, 그 문 앞에서 당최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럴 때 견딜 수 없어 찾아간 정신과에서, 의사선생님이 “이런 걸 글로라도 좀 써보는 것이 어때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하고 제안해왔다. 처음에는 선생님도 별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하신다 싶었는데, 홀로 남은 집에서는 도저히 할 만 한 것이 없었다. 책을 읽자니 남이 쓴 활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TV를 켜보니 내가 보는 프로그램이라곤 전부 서연이와 함께 보던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온 집안의 물건이며 가구에 서연이와의 추억이 묻어 있었다. 어딘가 연락을 하고 싶지만 최근통화 목록에도 서연이가 대부분, 이런 얘기를 할만한 가족이나 친구도 내겐 없었다. 나는, 몇 년 전까지 궁지에 몰렸던 내가 으레 그랬듯이, 또 한 번 글 쓰는 일로 도망치는 것 이외의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
이 글의 결말은 나도 모른다. 결말을 알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알고 싶지도 않다. 나이를 먹다보면 아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알수록 괴로워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므로. 나는 그저, 내 속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충동질하는 이 거대한 이별 앞에서, 방금 막 깊은 잠에서 깬 보초처럼 맞서는 것이다. 이제는 꿈에서 깨야한다. 깰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