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2)

11월 22일

by 이묵돌

11월 22일.


이 날은 일요일으로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사회인야구팀에 소속돼 매 주말마다 경기에 참여하고는 했다. 다만 이 날은 다른 팀원의 등판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구경만 하다 돌아왔다. 같이 나온 동갑내기 친구가, 아쉬운대로 밥이나 먹고 갈래, 하고 제안해왔다. 나는 거절했다. 일박이일 일정으로 지인들과 여행을 떠났던 서연이가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고, 이대로 집에 가서 도착할 즈음엔 저녁 시간이므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번 여행이 어땠는지 듣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서연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곤히 자는지, 인기척을 마구 내면서 들어왔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씻고, 분리수거 쓰레기도 가져다 버리면서 조금 시간을 보냈다. 서연이는 중간에 몇 번 잠에서 깨긴 했으나 자정이 넘어갈 무렵까지 쭉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보고 싶었어’ 라든가, ‘역시 집이 최고야’같은 너스레를 떨며 인사를 나눴을 텐데,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일부러 나를 피한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누운 채 휴대폰을 끼적이고 있는 서연이에게 “너 오늘 왜 그래?”하고 말을 걸었던 것이다.


“……왜 그러냐니?”하고 서연이가 대답했다.


“아니, 이상하잖아. 여행 갔다 왔는데 뭐 인사도 안 하고. 여행이 어땠다는 얘기도 없고.”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피곤한데 휴대폰은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서연이는 대답이 없었다. 노골적인 무시 같았다. 나는 불쑥 짜증이 나서, “아, 지금 뭐하는 건데?”하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아―. 시끄러.” 서연이는 지겹다는 듯이 이불을 푹 뒤집어쓰면서 말했다. “나 잘 거야.”


“잔다고?”


“어.”


서연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방에 켜져 있던 미등을 전부 끄고, 함께 눈을 붙여보려고 누웠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보다 불면증이 심해서, 일찌감치 수면제 한 알을 삼켰는데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한두 시간쯤 잠을 설쳤다. 결국 나는 잠들지 못하고 서연이를 흔들어 깨웠다.


지금껏 많이 잤으니 이제 그만 자라고, 나랑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서연이가 피곤한 걸 못 참는 성미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웬만해선 자기 전에는 말을 안 걸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꼭 지금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충동이 나를 깨우고 뒤흔들었다.


“아, 왜.”


“서연아, 나랑 얘기 좀 해. 응? 일어나서 조금만 얘기 하자.”


“내일 하면 안 돼?”


“안 돼. 나 진지한 얘기야.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누운 채로 들을 테니까 해봐.” 서연이는 이불속에서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아니……”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아무리 졸려도 사람이 이렇게 간절하게 이야기하는데, 이부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눈도 뜨지 않고 ‘들어줄게’하는 태도가 어째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할 얘기는 해야 했으므로, 나는 화를 꾹꾹 눌러 담고 가능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요즘 너랑 나랑 통 대화가 없잖아. 나도 그랬지만 너도 외부에서 하는 활동이 많았고. 평소에도 너는 작업실에서, 나는 집에서 일을 하다보니까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넌 집에서 그냥 잠만 잔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나도 이렇게 피곤한 시간에 대화를 하고 싶진 않은데. 상황이 자꾸 그렇게 돼버려. 아무튼…… 나는 우리가 같이 사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너는, 너는…… 나랑 사는 게 좋니?”


“……맞춰야 할 게 많긴 하지.” 라고 서연이는 대답했다.


“그래서 힘들어?”


“많이 힘들기는 해.”


“그럼, 얘기를 좀 해봐.”


“아, 근데 지금 너무 피곤해서.” 서연이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대화하면 안 될까? 내일…….”


“아, 내일 언제? 어차피 일어나면 넌 작업실로 가 있을 거 아냐. 지금 얘기해.”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


“안 돼, 안 돼. 제발 지금 얘기해. 응? 제발, 서연아…….” 나는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당시의 나로서는 대화가 정말 간절하기도 했고, 무언가 잘못 돼간다는 느낌에 상당히 긴장해있었다. 어쩌면 그때 당장 서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진지한 대화에 임해주는 것으로, 나는 요 며칠간 서연이로부터 받지 못했던 애정이며 관심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서연이는 이렇게 날 생각해줘. 모든 게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연이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듣는 체 만 체 하다가, 몇 초 지나고 나면 그냥 눈을 감고 잠들어버리기를 반복했다. 나는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내가 심각한 상태에 있는데,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라는데, 그깟 잠이 온다고 그렇게 날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 이야기라는 게 서로 컨디션이 맞아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잠시 미뤄두어도 괜찮은 일 아닌가. 딱 일어나서 십 분만 제대로 이야기하자는 게 내 말이었는데. 나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텐데.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건가? 서연이는 내가 고통받고 슬퍼하는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잔뜩 떠오르는 단상들과 함께, 먹었던 약의 부작용인지 뭔지 손발이 마구 떨리길 반복했다. 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내 말은 아무 소용이 없구나, 내 감정은 어떤 상관도 없구나, 그런 철저한 무기력감 속에 발작증세가 일어났다. 그런 경험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예 처음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서연이와의 관계에 대한 것 뿐 인데, 여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할 당사자는 옆에서 뭐라고 하든 아랑곳 않고 잠들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온몸의 근육이 움츠러들었다 펴지길 반복했다.


나는 한동안 발작 증상을 이어갔다. 서연이는 그런 내가 걱정이 됐는지 잠깐 나를 껴안아왔다. 그러나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 뒤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라고 결론지었는지, 휴대폰으로 몇 가지를 검색하다가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내 발작증상에는 나도 놀란 상태였고, 제대로 말도 안 나오는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이제라도 서연이가 자는 걸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가, 아예 건물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차 뒷좌석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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