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Dec 30. 2019

습작

백서른네번째

“선생님, 보아하니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도 장난아니겠는데요” 수간호사는 응급실 앞 복도의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하나 빼들었다.


“하하, 어디 저만 바쁜가요? 다 같이 바쁜데” 내가 대꾸했다.


“그래도 전 자식이라도 없지…… 선생님은 자녀분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 못 하셨다면서요”


“아유, 됐어요. 이 팔자에 무슨…… 부모가 돈만 잘 벌어가면 됐지. 필요 없어요, 그런 거”


“무슨 소리세요. 그래도 지금이 귀여울 때잖아요. 나중에 크면 정말 얼굴보기도 힘들텐데”


“……이거 생수통도 조만간 갈아야겠네” 나는 공연히 말을 돌렸다.


“아, 제가 갈게요. 아까 간다는 게, 환자분이 호출을 하셔가지고”


“혼자 들 수 있겠어요?”


“뭐, 새삼스럽게요.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할 시간이 없을 거에요” 수간호사가 움직일 채비를 하며 말했다.


“그래요. 다치지 말고…… 우리는 맘대로 다치지도 못 하잖아요” 내가 대답했다.


응급실은 성탄절을 목전에 두고 한층 활기를 띠는 모양이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잰걸음으로 통로 곳곳을 누볐다. 하얀 가운을 입은 동료 의사들이 세상 피곤한 표정으로 교차해 지나갔다.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보내야할 시간에 이게 무슨 꼴이냐, 하는 불평조차 떠올릴 틈이 없어 보였다.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자정으로 치닫는 이브에 응급실로 실려 오는 사람들. 느닷없는 만큼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즐거워야할 연말 술자리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경우, 조금 빨리 퇴근하겠답시고 속력을 냈다가 사고가 난 경우는 물론 만취한 파티룸에서 끓어오르는 젊음을 주체 못하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 케이스도 있다.


당초 응급한 상황에 들이닥치게 되는 곳이 응급실이다. 다만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중한가에 따라 우선순위가 갈리는 것은 별 수 없다. 식중독이든 골절상이든 환자입장에서야 본인이 겪는 고통이 최우선이겠지만, 제한된 인력과 시간 속에서 생사가 오가는 환자와 고통을 호소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뚜렷한 환자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하는 건 어디까지나 원칙상의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인간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 나아가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그다지 원칙적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응급실 관계자들은 매순간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그날은 유독 비극적이고 잔인한 상황이 연달아 펼쳐졌다.


대략적인 사고의 경위를 말하자면 이렇다. 휴가를 앞둔 아빠와 다섯 살배기 딸이 타고 있는 승용차는 경기도 교외의 아파트 단지를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건널목에서 사선으로 돌아들어오는 승합차를 보지 못하고 들이받힌 것이다.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 응급실 통로를 통해 세 환자가 차례로 들어왔다. 맨 처음으로 들어온 건 의식을 잃은 딸이었다. 긁히고 부딪힌 모양의 찰과상 몇 곳이 눈에 띄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중차대한 문제는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손상이었으니까.


“뇌진탕 같은데, 일단 CT부터 찍어야할 것 같아요” 뒤에 서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딸아이는 그길로 검사실까지 쭉 실려갔고, 그러는 사이에도 아무 소리도 기척도 내지 않았다.


뒤따라 들어온 건 딸아이의 아버지였다. 차량 부품이 옆구리를 깊숙이 찔러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라고 할 순 없었지만 이따금 ‘으, 으으……’ 하는 신음소리를 낼 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는 못됐다. 간호사가 부단히 지혈을 시도했지만 워낙 출혈범위가 넓어 수술이 불가피해 보였다.


“아! 아악!”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남자였다. 기껏해야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완전히 부러진 정강이뼈가 피부를 찢고 나왔다. 얼마나 확실하게 튀어나왔는지 장염이며 인대 손상 같은 경미한 환자들이나 그 보호자들이 식겁하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제발요. 제발……”


청년은 고통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다 괜찮을 거에요’라는 뻔한 말을 몇 초 동안이나 되뇌이기만 했다.


“수술실을 한 곳 빼고 다 쓰고 있어서 좀 기다리셔야 합니다. CT는 촬영 중이고요……” 응급실의 누군가가 말했다.


“남자분은 지혈이 아직도 안 되고 있어요. 선생님 한 분은 지금 오고 계신다는데, 차가 막혀서……”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계속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


“한 분은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네. 근데 그 다음 분은 좀 오래 기다리셔야할 것 같아서” 간호사가 대답했다. “하필 이럴 때……”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제발요. 살려주세요…… 제발……” 청년은 병상에 드러누운 채, 고개를 들어 튀어나온 자신의 뼈를 내려다보다가, 괴로운 듯 얼굴을 가리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다 괜찮을 거에요! 안 죽어요!” 청년 곁에 있던 간호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환자분 먼저 해요” 내가 말했다. 순간 돌연 현기증이 났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 분 먼저요?” 간호사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급실에서 몇 년이나 근무한 간호사가 그렇게 놀란 기색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다. “선생님, 골절상인데요? CT찍으러 간 아이는 아직 경과를 모르는데……”


“네. 이분 먼저” 내가 거듭 대답했다.


“오래 걸릴 텐데요. 그럼 다른 분들은 수술을 할 수가 없는데…… 아니면 지혈 안 되는 저 분 먼저 하는 게”


“그래도 이 분 먼저 해야 해요. 이 분 밖에 못해요”


간호사는 내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싹 바꾼 다음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나더러 혹시 그 청년이 관계가 있는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꼭 이분 먼저 해야 하는 이유가……?” 간호사가 다시 나직이 물었다.


“다른 두 분은 도저히 제가 할 수가 없어요” 나는 애처롭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 분 먼저 할게요. 어차피 책임은 제가 질테니까요……”


“그럼, 알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오고 계신다고 하니까요…… 바로 옮길까요?” 간호사가 말했다.


튀어나온 뼈를 제자리에 갖다 맞추고, 플레이트를 덧대 고정시키고 봉합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나는 골절수술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수술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러자 응급실이 있는 방향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한발 늦게 도착한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눈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누군가 죽은 것이다. 나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딸아이는 뇌좌상이었어요. 바로 수술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데……” 곁에 서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 나는 한동안 머리가 얼어붙은 채 서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 사람, 지혈은요?”


“남편 분은 괜찮으십니다. 늦긴 했지만 피가 멎긴 해서……”


“아니에요. 아니, 아니…… 남편이 아니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돌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해 멈추지 않았다. “전남편이에요…… 그 사람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간호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선생님 따님인줄도 모르고, 제가 그런 소리를……”


“괜찮아요, 괜찮아…… 어쩔 수 없었으니까…… 어쩔 수가……” 나는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 묻은 녹색 수술복 위로 짙푸른 얼룩이 번졌다. 이제 막 크리스마스가 밝았지만 선물은 없었다. 필요 없었다.




<블러디 메리>, 2019. 12





<블러디 메리>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아래 링크에서 이 글과 그림을 구매하거나, 혹은 다음의 작업물을 미리 예약함으로써 이 활동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랫동안 쓰고 그릴 수 있게끔 작업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자 분께는 오직 하나 뿐인 글과 그림을 보내 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