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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04. 2020

습작

백서른여섯번째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였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나는 지금보다도 더 잠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일찍 일어났을 때조차 아버지는 가고 없었다. 흔적도 없이 떠나 있었다. 원래부터 집에 없었던 사람처럼 꼭 그랬다.


 돌아오던 아버지의 얼굴 뒤엔 늘상 깜깜한 밤하늘이 배경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시킨 대로, 다녀오셨어요 아빠, 하고 배꼽인사를 했다. 다만 그건 하루에 한 시간도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왠지 멋쩍고 데면데면한 기색은 별 수 없었다. 


 그럼 아버지는 날 번쩍 안아들었다. 놀란 아들내미의 멍청한 얼굴을 쓱 감상한 다음, 현관에서 집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성큼성큼 왔던 길로 돌아나가는 것이다. 누가 보면 차라리 납치하는 장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부정이었다.


 “택시 타는 게 그렇게 좋니?” 운전석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물었다. 대로 위 신호등에 빨간불이 걸렸다.


 “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말하면서도 조수석 창밖을 응시했다. 짙게 깔린 어둠위로 뻐끔거리는 헤드라이트와 가로등들이 자못 아름다웠다.


 “넌 아빠가 계속 택시 운전했으면 좋겠어?”


 “네. 계속요”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말했다. 


 “우리 빈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신호가 바뀌고, 택시는 다시 속도를 냈다. 


 “음…… 아뇨”


 “그럼?”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요”


 “이야, 아빠가 택시로 너 다니는 대학교까지 태워달라고?”아버지는 좀 터무니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네”


 “그땐 아빠가 택시 운전을 못할 수도 있잖아”


 “응? 왜요?”


 “글쎄, 왜일까? 우리 아들은 어떻게 생각해?”


 “음, 으음……”나는 그제야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뗐다. 한참을 고민하는 체 하다 대꾸했다. “……그래도 이천이십년에는 아빠가 못 하겠다”


 “이천이십년? 왜?”


 “그땐 하늘을 날아다니거든요. 자동차가”


 “……뭐?”아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대꾸했다.“그런 건 대체 누가 그러든?”


 “엄마가요”


 “엄마가!” 아버지가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약간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기야 그쯤 되면 진짜 이런 고철덩어리가 붕붕 날아다닐 수도 있겠지?”


 “네” 나는 또 다시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그래. 아빠는 머리가 나빠서 하늘 나는 자동차는 못 몰고 다니겠네…… 그래도 우리 아들은 날아다녔으면 좋겠어”


 “……네?” 나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땐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할 거냐고”


 “몰라요” 실로 정직한 대답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그래야 아빠처럼 택시같은 거 안 몰지…… 배운 게 많아야해, 사람이라는 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 공부 많이 할 거지, 아들?”


 “네”


 “그럼 됐어” 아버지가 말했다. “이만 집에 가자”


 “벌써요?” 나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저기 저 다리까지만……”


 “안 돼. 너무 늦었어”


 “아, 아……”


 “뭐가 아, 아야. 가야돼서 가자고 하는 건데”


 “그래도” 나는 생떼를 쓰고 있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아버지는 마침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면 한 번 생각해볼 순 있지”


 “열심히 할게요. 정말요”


 “진짜 열심히 할 거야?”


 “네, 진짜” 나는 확신에 가득차서 대답했다. 적어도 그 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네. 안 할게요”내가 말했다. 택시는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해서 침침한 다리위로 방향을 틀었다. 먼동에 있는 불빛들이 희뿌연 동그라미처럼 번져왔다.


 난 그 광경을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잠에 들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세 달 뒤에 돌아가셨다. 취미로 마시던 가스가 너무 독해서였다. 조촐했던 장례식 날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어느덧 이천이십년이다. 나는 어른이 됐지만 대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창밖엔 날아다니는 고철은커녕 간혹 반짝거리는 것도 드물다. 그래서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때 당신과 내가 했던 말처럼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이 바람일까 싶어서.     



<990104>, 2020. 1




< 99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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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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