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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12. 2020

습작

백서른아홉번째

 “아직도 자고 있어?” 엄마가 방문을 반의반쯤 열어젖힌 채 말했다. 문틈 사이로 침침한 빛이 비쳐 들어왔다.


 “……” 나는 깨어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잠을 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몰라” 나는 내키지 않는 말투로 대꾸했다.


 “모른다고?”


 “그냥 피곤해. 사는 게”


 “얼씨구,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노는 애가 뭐 그렇게 피곤하다고 그래? 세상에 피곤한 사람들 다 얼어 죽었니? 하루 종일 죽어라 집안일 하는 나는 뭐 하루 종일 자고 있어야 되고?”


 “아, 밤에 못 자서 그렇다고!”


 “남들 다 자는 밤에 안자고 뭐하는 거야? 밤새도록 남자친구랑 연락하느라 못자는 거 아냐?”


 “남자친구 없어진지가 언젠데 그런 얘길 해?”


 “그럼 왜 못 자는데? 뭘 하느라 못 자는 건데? 얘기를 해야 엄마도 도와주든가 말든가 할 것 아냐?” 엄마가 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했다. 나와 내가 누워있는 침대위로 엄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난 어쩐지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몸을 움츠렸다. “채은아, 엄마 말 듣고 있어?”


 “듣기 싫어” 나는 일부러 표독스럽게 말했다.


 “뭐라도 대화를 좀 하자니까…… 벌써 세 달이 넘게 지났어. 날짜로 치면 백일이야. 왜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놀러라도 다니든가. 이렇게 집에 박혀만 있으면 더 우울해지기만 하잖아. 안 그러니?”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엄마랑 상관도 없어”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대학은 뭐하러 졸업했어? 이럴 거면 등록금 모아서 시집갈 때 보태 쓰든가……”


 “아! 그만해, 좀!” 나는 별안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고함을 내질렀다. “나도 몰라! 엄마가 대학 가라 그랬잖아! 딴 건 몰라도 대학은 꼭 가야한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귀 따갑게 말해놓고,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난리야?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누군 놀고 싶어서 노는 줄 아냐고. 엄마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살…… 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뺨이 돌아갔다. 엄마에게 따귀를 맞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빠는 몰라도. 엄마가 내게 그럴 거라곤 상상한 적조차 없었다. 이내 왼쪽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엄마한테 말버릇 좀 봐. 싸가지 없게…… 학교 다니면서 배운 게 겨우 그거야? 너희 선생님이 그러든? 좀 컸다고 바락바락 말대꾸나 하라고?”


 “……” 나는 가만히 고개를 푹 숙였다. 당장은 할 말도, 눈을 마주칠 자신도 없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는 뭐,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집안일이나 하는 줄 알아?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하고 싶은 것만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힘들어도 하나하나 참으면서 살아가는 거지. 너도 이제 얼마 안 가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 낳고, 애 키우다 보면 딱 내 나이 될 거다. 그 때 딱 너 같은 딸자식 만나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아주……”


 “……안 할거야” 


 “……뭐?” 엄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날숨을 팍 뱉고 말했다.


 “결혼 안 할 거라고?”


 “얘 하는 말 좀 봐? 결혼 안 하면, 뭐? 죽을 때까지 혼자 살게? 너 서른 넘어가면 누가 거들떠나 보는 줄 알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계획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뭔 상관이야. 안 할 건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 니 나이 때에는 다 그렇게 생각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맞선을 보고, 별 문제 없으면 한두 번 더 만나보고, 그렇게 계속 만나다가 다른 사람 찾기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면 덜컥 결혼하는 거야. 예상치 못하게. 어느 날 덜컥 해버린다고”


 “난 안 그럴 거야” 내가 말했다. 


 “아니. 넌 할 수밖에 없어. 엄마가 봤을 땐 해야 돼”


 “내가 왜?”


 “지금 이 꼬라지를 봐라. 너 혼자 뭐 할 수 있는데? 당장 학교 나와서 일도 하나 제대로 못 구하고 있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결혼을 안 하겠다고? 엄마아빠가 영원히 너 먹여 살려줄 줄 알아?”


 “아, 됐다고. 나 혼자 살 거라고”


 “……못났다, 못났어. 누구 자식인지 정말 못났다. 응?” 엄마는 큰 소리로 탄식하곤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고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것처럼, 오래전 아빠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뒤돌아 걸어 나갔다. “밥은 안 먹을 거지? 우리끼리 먹는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하기만 해봐라……”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팽개치듯 문을 닫았다. 바람 한 줄기가 휙 불었다. 차가운 부엌공기가 몸을 감쌌다. 추워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끽해야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왜 저녁을 지금 먹고 난리야……’


 그대로 누워 하릴없이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 늘 하는 짓이지만 나아지는 거라곤 없다. 멍하니 인스타 피드를 내려 보다가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대학동기의 게시물이 눈에 밟혔다. 그 밑으로 축하한다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조만간 얼굴 보고 술 한 잔 하자는, 늘 믿고 있었다는 식의 비슷한 댓글들이 줄지어 달렸다. 개중에는 내가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합격한 친구의 팔로우를 취소해봤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요즘은 휴대폰 보는 일에도 명분이 필요하다. 새 피드를 모두 확인하고, 구독하던 유튜브 채널 몇 곳에 들러 이미 봤던 영상들을 훑고 나니 마땅히 할 게 없었다. 생각 없이 들여다본 검색어 순위엔 막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이름, 어디선가 꾸며낸 광고문구와 축구경기 얘기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그럴듯한 이유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결국에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다. 하기야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뭇 사람들이 하나같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길을 걷고, 버스를 기다리고, 밥을 먹고, 드러누워 서서히 잠들어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지만, 휴대폰 화면을 볼 때만큼은 마치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불 꺼진 방. 적막한 침묵이 이어졌다. 캄캄한 천장과 가구의 윤곽들이 드러나 보였다. 지독한 외로움이 이어졌다. 방문 밖으로 엄마가 챙겨보는 TV프로그램 소리가 뒤따라왔다. 틈틈이 활기찬 음악과 재미있는 효과음이 들렸고, 이따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어쩜 우리의 매일매일이 그렇게 특별할거라는 듯이.


 엄마. 나는 무서워요. 이제는 무서워서 방문은커녕 이불 밖으로도 나갈 자신이 없어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덜컥 내일이 찾아오는 게 두려워요. 다시 또 펼쳐질 별 볼 일 없는 하루와, 꼭 그만큼 더 잃어가는 젊음을 마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잠을 못 자나봅니다. 오늘만큼은 내일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패배할 일도, 잃어갈 것도 내겐 없다고 믿고 싶어서요……          



<백일몽>, 2020. 1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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