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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09. 2020

습작

백마흔두번째

 “며칠 전부터 온 몸에 열이 났어요. 수시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팔다리가 떨렸고요. 기침도 계속 나오고……” 여학생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의사가 멸균 처리된 소도구로 그녀의 목구멍을 열어젖히고 말했다. 


 “……일단 목이 붓지는 않았는데요”


 “아. 아닌데…… 그건 오기 전에 감기약을 하나 먹어서 그럴 거에요” 여학생의 대꾸에 당황한 기색이 물씬했다.“아까까지만 해도 계속 부어있었는데 좀 전에 살짝 가라앉았나 봐요. 아무튼 확진은 맞죠?”


 “그래요? 무슨 감기약이었어요? 이름이 기억나나요?” 의사는 양손을 내린 다음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그냥 집에 있는 거 집어먹은 거라……”


 “기억이 나면 좋을텐데요”


 “그건 왜요?”


 “아시다시피 아직 백신이 개발이 안 됐거든요. 몇 군데에서 되긴 했다는데 임상실험이 끝나려면 꽤 걸리니까, 기성제품 중에 효과가 검증되는 게 있다면 하루빨리 써먹어봐야 하니까요”


 “아, 그렇구나…… 죄송해요” 여학생은 부쩍 기가 죽은 모양이었다. “제가 그럼 일단은 집에 갔다가…… 엄마한테 무슨 약이었는지 여쭤보고 올게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다녀오세요” 의사가 말했다. 여학생이 대답을 듣기 무섭게 선별진료소를 뛰쳐나갔다. 꼭 무시무시한 존재에게 쫓겨 달아나는 것 같았다. 얼마지 않아 진료소 내부로 건너온 간호사가 사전진료에 필요한 의료기구들이며 소모품들을 점검하면서 말했다. 


 “그 여자애, 오늘도 왔나요?”


 “어. 아까 걔였던 거 같은데…… 듣기만 몇 번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더라고” 의사가 대답했다.

 “근처에 사는 고등학생이라던데…… 어지간히 민폐네요. 부모님은 대체 뭘 하고 있나 모르겠어요. 전염병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간호사는 이골이 났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걔 입장에서는 장난이 아닐 수도 있어”


 “하긴 애라서 그렇겠죠?”


 “애라서 그렇다기보다는, 누구나 저럴 때가 있잖아. 왜, 젊을 때 저런 적 없었나? 저 나이 때 좋아하는 오빠가 병원에 혼자 격리돼있다고 했어봐.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걸”


 “사람 목숨이 오가는 마당에 무슨…… 저는 그래도 사리분별정도는 했을 걸요. 아무리 어렸든 간에”


 “그러니까. 참 병이라는 게 무서워” 의사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건 유독 그렇죠.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세요” 간호사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폐렴 말고. 그런 건 약이라도 있지”


 “글쎄, 그것도 일 년은 있어야 써먹는다지 않았어요?”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거지. 저런 건 예방도 못해. 약이라고 할 게 경험밖에 없잖아”


 “그건 맞아요” 간호사가 말했다. “직접 겪어봐야 죽어라 아프다는 걸 아니까요”


 의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앞 광장에는 여전히 인적이 없어 한산했다. 해가 저물어갔다.


           

<열병>, 2020. 2




<붉은 온도>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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