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흔세번째
“내가 바뀌었다고?” 남자는 아연실색하며 되물었다.
“그래” 여자가 말했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의 넌 이렇지 않았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난 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대체 내 어디가 바뀌었다는 거야?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냥 얘기해. 그래야 내가 노력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 이 년 전이랑 내가 뭐가 달라졌는데? 살이 좀 찐 거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거 하고는 완전히 상관없어. 나를 대하는 방식이나 대화할 때 쓰는 말투를 말하는 거지”
“내 말투가 어떤데? 난 원래부터 계속 이렇게 말해왔어. 부모님한테도, 친구들한테도 똑같아. 왜 이제와서 그러는 건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남자는 계속해서 억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아니었어”
“이해가 안 돼. 솔직히 진짜 이해가 안 되거든. 나는 누구한테나 똑같이 이야기해왔으니까. 그런데 니가 원하면 내가 바꿔볼게. 이제부턴 너한테만 다르게 얘기해줄 테니까……”
“아, 방금도 봐!” 마침내 여자가 이골이 난 듯 소리쳤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데? 네가 원하면 다르게 얘기해준다는 게 그렇게 잘못한 말이야? 너한테는 그래?”
“넌 정말 말하는 방식이 다른 걸 못 느끼겠어?”
“어. 모르겠어, 진짜” 남자는 다소 뻐기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원하면 다르게 얘기‘해준다’고 했잖아”
“그게 뭐가 문제인데?”
“니가 말해봐. 해준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데?”여자는 남자의 면전에다 대고 질문했다.
“해주는 게 해주는 거지, 왜 자꾸 말꼬리를 잡고 그러는 건데?”
“뭐가 ‘해주는’ 건데? 말을 다르게 ‘해준다’고? 내가 네 여자친구지 아랫사람이야? 서로 조금씩 배려해주는 걸 넌 왜 선심쓰는 것처럼 말하냐고! 아니면 차라리 니가 날 만나준다고 하지, 어차피 그게 니 본심아냐?”
“아, 왜 그렇게 띠껍게 받아들여? 난 그냥 말한 것뿐인데”
“그럼 그냥 말하지 말았어야지. 말할 때 생각 좀 하고 말하면 안 돼? 네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아! 진짜 못 해먹겠네. 내가 어디까지 맞춰야 되는 건데? 정말 지긋지긋하다 진짜……” 남자는 말을 다 맺기도 전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뭐? 맞춰줘? 니가 나한테 맞춰준다고?” 여자가 피가 거꾸로 솟은 모양새로 따지고 들었다. “니가 나한테 뭘 얼마나 맞춰줬는데? 뭘 얼마나? 니 말대로 맞춰준 게 있다고 쳐, 그럼 나는 안 그랬을 것 같아? 나는 너한테 맞춰주고 있는 게 없는 거 같냐고!”
“솔직히 말해서 너 같은 여자애 처음 봐, 나는. 좋게 말한 것도 몇 번이나 비꼬아서 받아들이질 않나. 대화를 잘 해주려고 해도 네가……”
“방금도! 또 그랬잖아?”
“아, 뭘!” 남자는 덩달아 소리질렀다.
“좀 전에도‘해준다’고 했잖아! 아니야?”
“그럼 해주는 거지 그게, 당연한 거야? 내가 너한테 맞춰주는 게?”
“아니. 아니야. 당연한 건” 여자가 말했다. “당연한 건 니 눈에 비치는 내 존재겠지. 더 이상 애써 소중히 대하지 않아도, 더 아껴주지 않아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암순응>, 202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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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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