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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28. 2020

습작

백마흔한번째

 “올해는 추석에도 못 내려갈 것 같은데”매대 너머 편의점 카운터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나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올 때,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계산할 때 각각 마주쳤던 여자 알바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자는 백육십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에 두어치수 쯤 커보이는 유니폼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인상으로만 보면 스무 살이나 겨우 될까 싶을 만큼 앳돼 보였는데, 그 나이대의 여학생이 야간편의점 근무를 서는 건 흔치않은 일이었다. 


“거기가 여기서 오죽 머나? 엄마, 서울에서 그쪽 섬동네까지 가는 거 한두 푼 아니데이. 그리고 내는 내 할 일도 바쁘다”


 일부러 전화내용을 엿들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매장 내 음악도 꺼져있었고, 코너 바로 옆면에서의 대화가 들리는 건 나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음악이 없는 편의점이 그토록 조용한 것이며 그 침묵을 움푹 찢고 들어오는 냉장고 소리에 새삼 놀랐다. 편의점들이 하나같이 라디오며 멜론차트에 있는 트랙 리스트 따위를 귀 따갑게 틀어대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방이 어두운 새벽 가운데 아무 소리도 없는 편의점에 몇 시간씩 앉아 버티다가는 누구라도 미쳐버릴 게 분명하니까.


“―아, 그 놈이 왜 내 아빤데? 엄마도 말은 똑바로 해라. 금마가 엄마 남편이지 내 아빠는 아니잖아?”돌연 통화중이던 알바생의 언성이 높아졌다. 외치는 소리가 편의점 벽면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나는 어쩐지 심각한 기분이 돼서, 다 먹은 컵라면 용기와 삼각김밥 포장지를 모아 조심스레 쓰레기통에 넣었다.


 “됐다, 됐다고! 엄마가 한 게 뭐 있는데…… 그때도 뒤에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지. 난 그 새끼도 싫고, 엄마도 싫다. 그러니까 추석에도 안 내려갈 거고, 내년에도 갈 일 없고, 그러니까 느그 남편이랑 알콩달콩 잘 살고 있으라고. 낸 지금 서울에서 잘 먹고 잘 사니까. 알겠나? 끊어라!” 알바생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못내 고함을 치긴 했지만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나는 카운터에서 보이지 않는 냉장고 옆쪽 방향으로 돌아서 가게를 나가려 했는데, 출입문에 다 와갈 즈음에 그 알바생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지레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매대를 훑어보는 척 했다. 결국은 별 쓸데도 없는 물티슈를 하나 더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거, 계산이요” 내가 말했다.


 “아, 아, 네” 알바생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물티슈를 바코드 인식기에 갖다 대는 데만 두 번 헛손질을 했다. “천 원입니다”


 “아, 네. 천 원이면 현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기, 죄송해요. 좀 전에 많이 시끄러웠죠? 저는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알바생이 다소 어눌한 서울말로 사과를 건넸다.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기야 했어도, 나름대로 타지에 적응하고자 노력 중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여기 천 원입니다”


 “네. 그래도 죄송해요, 정말……”


 알바생의 두 번째 사과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엷은 미소와 함께 몸을 돌리면서, 그쪽은 어느 섬에서 오셨나요, 하긴 서울도 알고 보면 섬이랍니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외로운 섬이지요…… 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가게를 빠져나오니 새카맣던 하늘이 제법 연해져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동틀 무렵의 쌀쌀한 공기가 피부 말단까지 냉기를 품고 왔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알바생이 카운터 끝쪽에 구겨진 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가 훌쩍 떠나온 고향섬과, 쓸쓸한 어머니 홀로 누워계실 그 외딴 섬이 꼭 같은 장소일 것만 같아 몹시 슬펐다. 사람들 사이의 섬은 여전히 멀어지기만 했다.     



<돌아갈 수 없는 섬>, 2020. 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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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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