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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r 09. 2020

습작

백마흔여섯번째


 동네에는 한동안 고양이가 병을 옮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렇다 할 근거는 없었지만, 출처모를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겐 어떻게든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새끼를 잃은 어미 고양이가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 독을 풀었단 얘기를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믿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고양이들이 일부러 갖다 놓았다는 쥐 시체를 찾겠다며 수도시설을 까뒤집을 일도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쥐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수도시설에서 나오지 않자 아파트 단지에 있는 물탱크까지 몽땅 열어 뒤졌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우리 동네에 썩어가는 쥐 시체더미 같은 건 없었고, ‘언제 어디선가 그런 걸 봤다’는 얘길 어디선가 주워들은 사람만 잔뜩 있었던 것이다. 


 행동이 앞선 어른들은 열이 바짝 올랐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이 곧잘 살거나 지나다니는 길목에다 약 탄 먹이를 잔뜩 놓아두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추측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것이나, 어쩜 근거 없는 소문에 휩쓸렸을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대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쥐 시체 같은 건 지금껏 나오지 않았고, 누가 먹는 데에다 독을 넣어 푼 쪽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때 고양이들을 미워한 것이나 떼로 약을 먹여 죽인 것을 반성하는 어른은 없었다. 무언가 반성하는 것 자체가 어른의 일이 아니라는 듯이. 도리어 뒤늦게 실수를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은 어린애들이나 할 일이라는 듯이.      


-     


 내가 살던 시골에는 오래전부터 말 잘 듣는 개를 키우는 가구가 많았다. 또 그런가하면 충성심도 의리도 없는 고양이에게는 멸치 한 마리 내주는 것도 아깝다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당장 집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그랬다. 자기네 자식이며 귀한 손주딸에겐 한없이 자비롭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마당으로 치고 들어와 자고 있던 개밥그릇을 뺏어먹는 한편 닭장을 습격해 소란을 피운 뒤 홀연히 떠나는 고양이에게는 대놓고 역정을 내시곤 했다. 


“민지야,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한테 먹이는 주지 말아라. 고것들이 얼마나 꾀가 많은지 너는 몰라. 네가 굳이 챙겨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훔쳐 먹는단다”할머니는 고양이를 쫓아내는데 쓴 빗자루로 마당을 휙 훑었다. 


 “그래도 귀엽단 말이에요” 나는 어린 마음에 대꾸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 먹이를 챙겨준 것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건 네가 철이 없어서 그렇지” 할머니의 말버릇이었다. “하루 종일 도둑질이나 하는 놈들이 귀엽기는…… 개뿔이 다 귀엽다고 해라”


 “고양이네도 살려고 훔치는 거잖아요. 자기 새끼도 먹이고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건데”내가 말했다. 


 “아이고. 도둑질 안 하고도 앞가림 하는 사람들 천지다. 없는 사람들은 다 훔쳐갖고 먹는 줄 아니?”


 “그건 동네 사람들이 고양이만 못 살게 구니까 그런 거잖아요? 누가 한 명이라도 챙겨주면 훔칠 필요도 없을 텐데”


 “사람이건 동물이건 밥값을 해야 밥을 먹는 게지…… 우리 복실이 좀 봐라. 말도 잘 듣고 집도 잘 지키고 그러니까 밥도 얻어먹고 그러는 거야. 너도 이제 들어가자. 밥 먹고 일찍 자야지. 내일 아침에 엄마랑 같이 가려면”


 별 일 안 하고 밥 얻어먹는 건 저도 똑같잖아요, 라는 말이 그 때는 머릿속에만 맴돌고 말았다. 하기야 그 뒤로도 입 밖으로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그 때 사람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움에는 항상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고, 그래서 나만큼은 언제까지고 미움 받지 않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런 일련의 믿음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또 얼마나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깨달았다. 


 몇 년 뒤 그 전염병의 원인이 한 제약회사의 불법적인 화학물질 방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야 했다. 다만 지나간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몇 없었으며, 대부분의 관심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노후 아파트단지 재개발 이슈에 몰려있었다.


 그 이후 공사장이 된 부지에는 다시 길고양이들이 자리를 잡아 살기 시작했다. 새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뒤에도 근린공원이며 상가 뒷골목 쪽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또 한 번 전염병이 돌고 고양이들이 병을 옮긴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을 때는 할 말이 없었다. 수풀 속에 숨은 채 빤히 쳐다보는, 어느 새끼 고양이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이제와 보니 우리는 침묵하며 고독해지는 법밖에 몰랐다.        

   

<확신자들>,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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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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