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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2. 2020

습작

백쉰세번째

 이별을 준비하려는 사람은 미련하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이 미처 준비할 수 없었던 상황에나 이별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모르긴 몰라도 나는 있다. 그러니까, 먼 훗날 내가 죽음을 맞이할 그 마지막 몇 분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이 몇 번 있다. 장소는 서울 외곽에 있는 중간크기의 병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나는 일인실 침대위에 기대 누워, 나와의 헤어짐을 슬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마지막을 앞둔 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렸을 때의 추억, 성장기에 겪었던 시련과 아픔, 부단했던 노력, 첫 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간관계들이 차츰 멀어져갔던 일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방황했던 나날들이며 자신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몰두했던 시간이 몽타주처럼 스쳐지나간다. 그것이 흔히들 얘기하는 주마등이다. 


 그렇게 회상이 끝나고 나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래, 이쯤이면 꽤 훌륭한 인생이었어……’ 하고 속으로 되뇌다가 삶을 끝맺는 것. 그런 가운데 병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발과 새 울음소리들이 하얗게 샌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데…… 하기야 죽음에 대해 이만큼 전형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봤을 땐 그렇다. 애초에 이상적인 끝맺음이라는 것은 흔치도 않거니와 세상에 산재한 모든 ‘마지막’들의 수효에 비하면 턱없이 희미한 비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는 인류가 병원에서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죽기 시작한 것조차 그 역사가 짧고, 전 세계의 병원과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 역시 모든 인간의 죽음을 관리해줄 만큼 한가한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준비된 끝맺음’이란 어떤 일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쪽이나 누릴 수 있는 예외적 특권의 행사이지, 누구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통속적 개념이 아니다. 알고 보면 마지막이란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우리가 보기엔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전쟁터에 달려들기도 전에 등 뒤에 있던 아군의 총알에 맞아 즉사하는 경우나, 황량한 대지위에 볼품없는 양철 표지판 한 개로 표시돼있을 뿐인 국경 따위를 상상해보라. 우리가 경험할 마지막들은 십중팔구가 그런 것들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날, 역 근처 맥도날드의 구석진 자리에서 쓸쓸히 앉아있던 그 청년의 모습에서도 마지막이 보였다. 예상도 준비도 못했을 뿐 아니라, 로맨스와는 일억 광년쯤 먼 거리에 있는,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마지막 말이다. 


 홀에는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이 있었다. 벌써부터 지친 알바생들은 대기번호 몇 십 번 손님을 불러 호명했으며, 보충수업이 끝난 근처 고등학생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와 아기 울음소리가 제멋대로 뒤섞여 들렸다. 콜라를 쏟아 너저분한 바닥에서 비릿한 단내가 올라왔고, 근처 테이블로부터는 시큰한 케찹 냄새가 풍겨왔다.


 그런 곳에서 한 줄짜리 카톡으로 끝장나버리는 사랑이라니. 우두커니 앉아 한참동안이나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던 그 청년은 처량함을 넘어 초라했고, 아예 남루해보이기까지 했다. 자기연민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이별의 순간 위엔 낭만 없는 풍경들이 빛을 타고 번져 흘렀다. 


 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당신이 유독 갑작스럽고 경우 없이 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어 고통스러운 것이야말로 이별의 엄연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별해왔고 이별했으며 또 이별해가는 모든 것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글을 전한다. 세상엔 이별할 것이 없어 슬퍼할 수도 없는 바보들도 있다. 그런 바보들이 매일같이 미움에 공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나, 그래서 귀중한 젊음이며 마음 같은 것들을 허비해간다는 건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별들에게>, 2020. 4          



<창너머의 삶>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존'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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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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