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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7. 2020

습작

백쉰네번째



 노인은 태어나 오늘로 백 번째 생일을 맞았다. 백 년이란 어떤 시간인가? 여느 달력에서 한 세기를 구분하는 기준이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담을 때 쓰는 검정 비닐봉투가 땅 속에서 썩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누군가는 백 년이 아니라 이백 년, 더 나아가 오백 년이 넘게 걸린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으레 그렇듯이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 살치곤 무척 정정한 편이었던 노인으로서도 이런 소재에 대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노인이 태어날 당시의 한국에는 검정 비닐 같은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인은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영원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타인과의 관계, 사랑, 행복과 불행, 국가와 이념, 전통과 권위, 철근과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건물들까지―이  덧없이 사라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하물며 기다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오래되면 썩고, 한 번 썩으면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지금껏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그 원형을 유지해온 것 역시 기다림이었다. 전쟁통에 생이별했던 어머니나 아내, 그 아내의 배에서 두 달 뒤면 나올 예정이었던 아이. 그 모든 기다림들을 휴전선 이남에 떠나보내고 수십 년을 살아 버텼다.


 그 수십 년 동안, 노인은 가족이 있는 남녘으로 넘어가고자 열두 번도 넘는 시도를 감행했었다. 지금처럼 노인이 되기 전은 물론이고, 환갑을 넘어 뛰기는커녕 남처럼 오래 걷기도 힘들어졌을 때까지 월남에 공을 들였으나 번번이 실패를 겪었다. 어떤 실패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 적잖은 나이에 십 년 넘는 옥살이를 하느라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그렇게 썩어빠진 기다림을 껴안고, 고독한 죽음에 매일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끝났지만 영 끝나지 않았던 전쟁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끝났다. 정권이 바뀌고, 인적이 없던 곳에 도로가 놓이는가 하면, 철조망이 걷힌 자리에 반백년 넘게 끊어져있던 철길이 새로 놓였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그 일을 더러 통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국교정상화 정도로 치부해야할지는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노인으로선 어느 쪽이든 간에 골치가 아팠다. 솔직한 심정으론 기쁘긴 커녕 어이가 없었다. 한 민족이라는 놈들이 하루아침에 반으로 갈라져 수십 년을 따로 지내놓고선, 또 하루아침에 도로며 길을 이어서 예전처럼 잘 지내보자는 식이었다. 희망이란 꼭 그렇게 바라고 열망하던 때에는 이뤄지지 않다가 그런 바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질 즈음해서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런 삶에 넌더리가 나서 스스로 끊어버리려고도 했는데, 그러기에는 남쪽이 너무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버렸다. 읍내 전철역에서 기차표 하나만 끊으면 만 하루도 안 돼 고향에 갈 수 있었다. 또 노인은 야속할 정도로 거동이 멀쩡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여유로운 것이 시간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멀리 떠날 채비를 하고 역으로 향했다.      


 노인이 올라탄 열차는 신의주에서 평양, 개성을 거쳐 서울에 잠시 정차했다가, 대전 혹은 오산을 거쳐 한강 이남으로 쭉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열차 내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남한말과 북한말로 각각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노인은 그 두 가지 말 중에 어느 쪽이 더 그립게 느껴지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금방 머리가 지끈해 그만뒀다. 그러는 동안 허름한 중절모 아래로 투명한 창밖이, 대동강 줄기를 따라 수놓인 논밭과 도로, 회색 도시의 경관들과 산등성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열차는 곧 서울역에 도착했다. 조용하던 객실에는 인기척이 잠시 일더니 열댓 명 쯤 되는 사람들이 일어나 하차했고, 플랫폼에서 정확히 그 두 배 되는 승객들이 올라타 북적거렸다. 


 “와! 한강이다. 엄마! 저거봐, 한강이야!” 맞은편에 앉은 여자아이였다. “정말 크다. 강이 아니고 바다 같애”


 “지유야, 조용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 안 그럼 할아버지가 이놈 하신다” 곁에 앉아있던 엄마가 손으로 아이를 제지했다. 


 “아하,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꾸벅하고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아이에게, 노인은 아주 오래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강이 반가운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정말 죄송해요. 애가 아직 여섯 살 밖에 안 돼놔서……”


 “아, 일 없습네다” 노인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 하도 조용해서, 나도 심심하던 차였소”


 “엄마, 근데 나 여섯 살 아니고 일곱 살이잖아”


 “그건 생일이 지나야 일곱 살이지. 넌 아직 여섯 살이야” 엄마가 아이의 옷을 툭툭 털어주며 말했다.  


 “아, 그런 게 어딨어? 내 친구들은 다 일곱 살인데, 왜 나만 여섯 살이냐고”


 “걔들이 거짓말 한 거겠지. 잘못 알았거나”


 “아” 아이는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음…… 그럼.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야, 할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니오. 일 없소” 노인이 한 쪽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응?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아이가 거듭해서 노인에게 물었다. 빨갛게 물든 보조개 위로 투명한 눈망울이 쌍으로 빛났다. 


 “나?”


 “네. 할아버지”


 “나야 먹을 만큼 먹었지”


 “먹을 만큼?”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따라 말했다. “먹을 만큼이 뭐에요? 그게 몇 살인데요?”


 “몇 살이든 상관없어. 누구나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 먹을 만큼 먹은 게지” 노인이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부터였는데요?”


 “글쎄. 한 삼십 년은 됐을 걸”


 “우와. 할아버지는 그럼 삼십 살?”


 “하하, 그것 보단 많이 먹었지”


 “저, 어르신. 실례가 아니라면”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던 엄마가 끼어들었다.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보아도 괜찮을까요? 말투가 특이하셔서”


 “이북에서 왔소”


 “역시 그러셨군요.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저희 어머니도 똑같은 말씨를 쓰셔서, 그쪽 사투리가 좀 익숙하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럴 수도 있지” 노인은 대답과 함께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했나, 하는 멋쩍은 기분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기도 외곽으로 향하던 열차가 부쩍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노인과 마주 앉아있던 아이는 삼십 분 가까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대전역을 지나칠 무렵에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엄마도 그런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 까무룩 잠들었다. 


 노인은 뒤따라 잠들기에 너무 오랫동안 깨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모녀를 빤히 응시했다가, 열차가 터널을 통과해 나오면 창밖을 쳐다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풍경은 역 근처에 가까워갈 때마다 크고 작은 콘크리트 빌딩으로 메워졌다.      


 “정말, 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르신” 아이의 엄마가 벗어놓은 외투를 도로 걸치며 인사치레를 했다. “어르신 아니었으면 이대로 부산까지 갈 뻔 했겠어요”


 “경주에서 부산이 뭐가 멀다고”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어르신한테는 아니어도 저희한테는 멀죠, 하하하…… 지유야. 할아버지한테 감사합니다, 해야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배꼽인사를 했다.


 “빨리 가지”


 “예. 이제 문이 열리면 가야죠. 어르신은 어디서 내리시나요?”


 “나?”


 “네, 어르신” 엄마가 재차 물었다.


 “아, 나야 뭐” 노인은 애써 눈길을 피하며 말하고 있었다. “가는 곳 까지 가는 거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 가는 거야”


 “……그래도요. 어디서든 어르신이 오길 기다리는 분들도 있으실텐데”


 “없어, 그런 거”


 “가족이 없으신가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원래부터 있었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구먼. 시간이 좀 지났어야 말이지”


 “너무 그렇게만 생각지 마시고요”


 “자. 이제 가야겠구만. 문이 열렸네” 노인이 열차 칸 끝자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젊은 사람들은 갈 길 가셔야……”


 “……네, 그럼”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노인이 지켜보는 차창 너머에 서늘한 바람이, 그리고 그 사이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휙 비집어 떠나는 모녀의 뒷모습이 반사돼왔다. 노인은 이제야 비로소 돌아갈 곳이 없음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백 년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열차가 출발했다.          


 

 <남행렬차>, 2020. 4          



<님은 먼 곳에>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댕걸이'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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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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