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n 29. 2020

습작

백예순일곱번째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별안간 몇 분 간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고요해졌다. 사회자는 한층 차분해진 청중들을 쓱 훑어보고, 왼손의 마이크를 들어 말을 이었다. “드디어! 이곳을 찾은 모든 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서…… 곧 시작하도록 할 텐데요……”


 경매는 서울 소재의 모 호텔 세미나실에서 매달 적당한 날짜를 골라 진행됐다. 명목상 출품기준은 따로 없었지만 대개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고가의 예술품만을 등록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뭐 다 떠나서 이 사설경매에 무언가 상품을 올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물품을 등록하는 것부터가 기존 관계자들의 소개와 추천으로만 가능하게 돼있었다. 신청을 한 뒤에도 약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뒀다가, 준비가 되는대로 예술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받은 뒤 해당 물품의 최근 동선을 파악해 장물여부까지 파악한 다음에야 본 경매에 출품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다보니 어떤 물건이든 그 경매에 무사히 출품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프리미엄을 보장받는 셈이었다. 여태껏 가장 저렴한 가격에 낙찰된 것조차 천만 원대를 훌쩍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 덕에 대중적인 인지도는 거의 없다시피 한 행사였으며, 청담에서 논현에 이르는 부촌의 졸부들이나 책 좀 읽고 문화적 교양도 제법 있노라고 자부하는 양반들 정도가 꾸준히 찾아올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번에는 정말로 많은 분들이 경매에 참여해주셨는데요. 저도 이 행사에서 사회를 이 년 넘게 봐온 입장이지만 참 진풍경입니다. 그만큼 오늘 등장하는 작품이 해당 경매, 아니…… 대한민국 미술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을 만큼 놀라운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닐까요? ……자, 이제 그 작품이 저 뒤쪽에서 여러분들을 만날 준비를 끝마친 상태인데요. 출품자인 김여욱씨의 요청에 따라 촬영을 엄금하오니 좌석 뒤쪽에 계신 기자분들께선 전부 카메라를 꺼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만약 퇴장 시에 불법 촬영된 사례가 적발될 시에는 주최 측에서 법적책임을 묻게 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아! 저기 나옵니다!”


 사회자가 손날을 뻗어 단상의 왼쪽을 가리켰다. 일순간 경매장이 긴장감에 휩싸였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몰려들었다. 일동의 눈빛들이 얼마나 따갑고 의미심장했는지, 단상이 나무로 돼있었다면 금방 발화점을 넘겨 불길이 치솟을지도 몰랐다.


 이윽고 양복차림의 남자 두 명이 베일에 싸인 중간크기의 액자를 들고 나왔다. 단상 중앙으로 향하는 그 몇 초간의 몸짓이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그새 카메라를 내려놓은 몇몇 기자들에게는 무척 우스운 장면처럼 비쳐졌다. 하긴 끽해야 삼십 인치쯤 되는 직사각형 물체를 커다란 장정 둘이서, 예식용 흰 장갑까지 끼고 나르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우스꽝스러움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경매참가자들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들이 들고 나온 물건, 즉 군청색 천으로 가려진 삼십 인치 짜리 액자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액자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단상 중앙에 배치됐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작품들, 그야말로 억소리나는 예술품들을 소개해왔지만, 이만큼이나 많은 시선과 관심, 긴장감,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천조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가 시시각각으로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몇 마디 재치있는 멘트로 청중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켜야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눈 앞에 놓인 진정한 예술, 인류문화의 찬란한 소산이, 지금 당장 베일을 벗겨 모습을 드러내게끔 충동질했던 것이다.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사회자는 체념하듯이 말하고 나서,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액자위에 늘어져있던 천을 젖혀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 놀라운 작품을,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마주해버리고 말았다.


 “와……!” 어느 사이비단체의 집회에서나 나올법한 환호성이었다. 그 중 몇 명은 자신이 이미 기절한 것과 다름없다는 듯, 그 황홀한 미술적 감동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이상야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 세상에!”


 “자, 이것이 스페인의 위대한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의 역작입니다. 이 경매에 출품되기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오랫동안 그 정체를 감추고 있었던 보물이, 지금 이 순간에야 여러분들 앞에 그 아름다움을 드러냈습니다……” 사회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것처럼 서 있다가, 그림에서 관객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겨우 진행을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그’ 피카소입니다. 그림에 대해 일절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름은 알고 있는, 인류가 낳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피카소는 살아생전 전쟁의 참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걸 계기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걸작을 남겼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경매는 언제 시작합니까?” 사회자의 말이 길어지자, 경매참가자들이 앉아있는 대기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렇죠.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연합군 관계자와 만나 그림 한 점을 기증했다는 사실은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관계된 사람들 이외의 모두가 몰랐던 부분입니다만……” 사회자는 청중의 불만에도 아랑곳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때 그 연합군 관계자가 한 미군 장교에게 그림을 보관하게 했는데, 그 장교는 중공군의 역습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자 그 걸작품을 보호하고자 한 가지 꾀를 냈던 것입니다. 북한군에게 부모를 모두 잃고 미군 주둔지에서 보호받고 있던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어요. 한국 나이로 열두 살밖에 안된 천진난만한 아이였죠. 그게 바로 이 그림의 출품자인 김여욱씨였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그 미국인 장교는 적군의 공세에 대비해 캠프를 철수시키면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하네요. ‘헤이, 리를 걸, 여욱. 유 머스트 고 투 더 부산 앤 킵 디스 페인팅…… 잇 이즈 아티스틱 트레져 페인티드 바이 피카소, 유노? 이프 유 세잎리 어라이브드 앳 부산 앤 캔트 파인드 미 커즈 암 올 레디 데드, 디스 트레져 윌 비 유어스 오케이? 쏘 유 햅 투……’”


 “아! 나 먼저 할게요! 더는 못 참겠습니다!” 그즈음 객석에선 불만을 넘어 주체적으로 경매를 속행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미 경매에 참여하기로 돼있던 사람들 중 사회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제각기 그 역사적 그림을 자신의 애장품으로 삼거나 지나치게 세련된 탈세 루트로 활용할 생각으로 혈안이 돼있었다. “5번! 오백억!”


 “아!” 말문이 막힌 사회자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20번! 칠백억!” 사회자가 수습할 틈조차 없이, 다음 낙찰자들이 줄을 이었다. “33번! 구백억!”


 “61번! 천억!” 어느덧 상황은 통제 불가능한 시점으로 접어들었다. 어쩜 사회자는 ‘놀랍게도 시작부터 기존 최고 낙찰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라고 말할 타이밍을 완벽하게 놓쳐버렸고, 그래서 그 정신 나간 레이스를 관리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상실하고 만 것이었다.


 참가자들의 주도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경매가 마무리됐다. 노련한 기자들에게 그 정도 상황쯤이야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사의 취재기자들이 호텔 메인 로비며 주차장까지 진을 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다만 최종 낙찰가가 무려 이천 억에 달했다는 것이나, 그 그림을 낙찰 받은 중년 남성이 그저 낙찰자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며, 누구에게도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정말이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


 몇몇 기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대리인이라던 그 남자를 쫓아다녔지만 허탕을 쳤고, 억만장자들의 비상식적인 소비행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대중들 역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 희대의 경매와 피카소의 그림, 거기에 붙은 이천 억의 가격표와 익명의 낙찰자가 잊히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와 모바일 뉴스로 이 사건을 목격했던 모두는 꼬박 한 해가 지나갈 무렵에야 기억을 떠올렸더랬다. 물론 그 이유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피카소가 한국에 남기고 갔다던 그 그림이, 알고 보니 교묘하게 꾸며진 가품이었다는 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해당 작품이 명백한 피카소의 저작이라며, 거짓으로 증언한 혐의를 받고 있는 돈후앙(48)씨는 스페인 말라가에 위치한 한 사설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었으며, 예술품 브로커들로부터 청탁을 받고 보증서를 작성해줬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편 모 대학 서양화과 전임교수로 알려진 A씨를 비롯해 당시 경매에서 그림을 감정했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감정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축했으며, 감정결과를 믿고 그림을 구매했던 낙찰자 B씨 내외는 경매 주최측 그리고 감정단에게 수백억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B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칭 전문가라는 족속들이 해외에서 찍힌 보증서만 보고 진품 판정을 내린 것은 국제적 망신이며, 외부의 권위에 의지해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예술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맹렬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아이고, 꼴값을 떤다, 꼴값을 떨어. 그러게 별 같잖지도 않은 그림으로 그 호들갑을 떨어대더니만” 대합실 구석에 앉아 뉴스를 보던 중년여성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아유! 나는 저놈의 그림이 무슨 이천 억씩이나 한다고, 참. 이해가 하나도 안 가던데. 저 때 건넛집 아줌마가 얼마나 날 창피주든지. 저 걸 갖고 뭐라고 했더라? 어떻게 저런 걸작품을 보고도 아무 느낌이 안 들 수 있냐고, 참 못 배웠다 쳐도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살자고 씨부려댔다니깐, 글쎄”


 “아, 엄마 친구 그분? 작년에 아들 미대 보냈다던?” 바로 곁에 앉아있던 딸이 물었다.


 “그래, 그 아줌마. 똑같이 못 배워 놓고서는, 미술관 몇 번 다녀왔다고 그렇게 거들먹거리길래 난 또 뭐가 있는 줄 알았지. 참, 예술은 개똥이 예술이야. 내가 발로 그려도 저것들보단 잘 그리겠다……”


 “그럼, 엄마 정도면 괜찮지. 내가 볼 땐 요즘 현대미술이라는 게 그냥 다 이름값 같아. 그, 나는 잘 모르는데, 앤디 워홀? 이라는 사람이 그랬대.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나”


 “저런 걸 보면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나저나 저 그림 산 양반은 얼마나 속이 쓰릴까? 이천 억이 누구 집 개이름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휴지쪼가리가 돼버렸으니” 


 “뭐, 그래도 아직 돈은 많을 걸? 우리가 걱정할 팔자는……” 


 “하긴 그렇다, 야. 너는 언제 철들어서 취직할래?” 


 “아,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데?”


 모녀는 몇 분쯤 실랑이를 주고받다가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뉴스에 나왔던 그 가짜가 기행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며, 고의로 피카소를 따라 그린 것이란 보도는 세달 뒤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교양학 개론>, 2020. 6     




< 경매장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아래 링크에서 이 글과 그림을 구매하거나, 혹은 다음의 작업물을 미리 예약함으로써 이 활동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랫동안 쓰고 그릴 수 있게끔 작업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자 분께는 오직 하나 뿐인 글과 그림을 보내 드립니다. 


이 글과 그림 구매하기 





+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