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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26. 2020

습작

백예순여섯번째

 “봐봐. 네가 두 달 전에 마감했던 소설이 어제 출간됐는데, 사람들이 아주 난리야 난리. 호평도 그냥 호평이 아니라니까. 여기서 몇 개 읽어줄까?” 촘촘한 쇠창살 너머에서 여자의 실루엣이 일렁거렸다. 호들갑떠는 목소리. 예나 지금이나 얄밉기로선 더할 나위 없었다. 


 “됐어” 나는 잠긴 문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황당하고 절망적인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년쯤 지나고 나니 그런 노력에 조차 이골이 났다. “이 상황에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보람 정도는 있지 않아? 누군가는 네가 쓰는 글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어. 너를 존경한다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고”


 “존경해? 나를?”


 “그럼”


 “하하, 완전히 돌았구만” 난 진심으로 헛웃음을 쳤다. 그렇게라도 웃는 것이 얼마만인가. 아마 한 달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왜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부정하려고 해? 넌 대단한 글을 써냈다니까. 정말이야. 내가 여기 관리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녀는 진정 날 치켜세우려는 투였다. 나로선 그런 그녀의 진심이 불쾌하고, 증오스럽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그래서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날 존경한다는 애들이 알기는 해? 그게 작가를 양계장 같은 곳에 감금해서 반강제적으로 싸지른 결과물이라는 걸”


 “감금이라니? 세상에 어떤 감옥이 그래? 호텔처럼 푹신푹신한 소파 침대에 매일 세 끼니도 꼬박꼬박 챙겨주잖아. 그러면서 월세도 관리비도 안 받는 나한테 감금이라니. 여긴 감옥이 아니야. 그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뿐이지”


 “네가 언어능력이 딸려서 잘 모르나본데. 원래부터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을 감옥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여긴 감옥인 거고”


 “아. 왜 항상 화가 나있는 거야?” 그녀가 투덜거리듯이 대꾸했다. 


 “화라니? 난 전혀 화나지 않았어. 그건 갇힌 지 한두 달까지나 그랬지. 지금은 그냥 체념했어. 난 스스로를 글 쓰는 기계 그 이상이나 이하로 보고 있지 않아. 이게 너희들이 원하던 거 아니야?”


 “기계라니, 그런 비인간적인 말이 어딨어? 우리는 그저 창작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애쓸 뿐이지. 거의 자선사업이라니까”


 “그따위 이유로 합리화하지 마. 아무 죄 짓지 않은 사람을 가두는 건 명백한 범죄행위야. 만에 하나 내가 나가면 너희들은 싹 다 고발돼서 감옥신세를 질 테니까…… 그 땐 감옥이 정확히 뭔지 알게 되겠지?”


 “그렇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글을 쓰고 싶어진다면, 그렇게 해. 나 하나 희생해서 위대한 저작이 나온다면야!” 여자의 목소리는 실선에서 점선으로 점차 옅어지다가 이내 자취를 감췄다.     


-     


 우리는 위대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가 돌연 동기를 잃고 방황하거나, 경제적 압박에 굴복해 세속적인 작업에 몰두하는가하면 술과 마약에 빠져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도덕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인생을 살고 간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도박빚에 쫓길 때쯤에야 부리나케 소설을 써냈고, 피츠제럴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인기를 떨친 뒤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기야 누구나 그런 과정으로부터 <죄와 벌>이나 <위대한 개츠비>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한때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들이 창작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내려버린다면 그야말로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을 떠올려보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도 하다. 만일 그들이 잠시나마 오염된 삶에 노출되지 않고, 타고난 재능을 온전히 인류문화의 진일보에 헌신할 수 있게끔 상황이 잘 굴러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 말마따나 ‘당신의 글이 너무 좋아서 방에 가둬놓고 평생 글만 쓰게끔 만들고 싶다’는 것은 실없는 농담인 동시에 개인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심이며 애정이기도 한 셈이다. 나는 그만큼의 위대함을 논할 처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안타까움이며 조바심을 십분 이해하는 입장에 있다고 느꼈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백컨대 나는 이 년이 넘어가도록 그 단단한 철문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했다. 열 평 남짓한 방이 절대적으로 좁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내내 지나 보내며 타자기를 두들기기에는, 여기가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생활하는데 부족한 것은 딱히 없다. 식사는 매일 아침 일곱 시, 정오, 그리고 저녁 여섯 시 정각에 맞춰 나오는데 무슨 영양사가 담당하고 있는 건지 두뇌회전에 좋다는 것들로만 식단이 구성돼 있다. 필요하다면 원하는 간식이나 읽을거리를 가져다주기도 하며, 내부에 설치된 TV를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럴듯한 저작 하나 써내지 못한다면, 재능과 의욕의 부족 이외의 어떤 변명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자극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잖아. 글을 쓰는 인간이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어. 다들 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머릿속에 글감을 쌓아나가는 거라고”


 “그럼 바깥에 있을 때 열심히 쓰지 그랬어” 그녀는 거의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출판사는 너한테 시간을 많이 줬어. 기회도 여러 번 줬지. 갖은 인내심을 동원해서 늦게나마 완성될 원고를 기다렸어.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그랬다니까. 그런데 불시에 찾아간 집에서 넌 뭘 하고 있었지?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서 게임이나 하고 있었잖아. 니가 아무리 궁시렁대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렇다고 쳐” 내가 말했다. 조금 비굴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그게 팩트라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몰상식한 방법을 쓰는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란 말이야. 내게 좀 게을렀던 건 사실이고, 한 반 년쯤은 출판사랑 계약을 해놨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건 잘못이지. 프로답지 못 했어…… 그렇지만 그건 적어도 범죄는 아니었어. 너네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일과는 달라. 난 한심했을 뿐이지 사악하지는 않았으니까. 세상의 그 누구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타인의 자유를 뺏을 권리는 없지. 심지어 그 이유가 언뜻 보편타당한 것으로 비쳐지더라도 그래”


 “자유는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거야. 넌 아니지. 갇힌 지 한두 달쯤 지나선 탈출도 완전히 포기해버렸잖아” 그녀가 말했다. 자못 경계하는 듯하면서, 금속성의 문을 쓰다듬는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백 번 두드려 열릴 문을 아흔아홉 번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니까. 탈출하려면 아예 못할 것도 아니었는데……”


 “아. 나는 똑같은 문을 아흔아홉번까지 두들기지 않아. 그딴 건 바보들이나 하는 거지” 내가 여자의 말허리를 자르며 끼어들었다.“나는 안 된다 싶으면 한두 번에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야. 시간이 아깝고 에너지가 아까우니까”


 “뭐가 그렇게 아까운데?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디다 시간을 쓰려고?”


 “뭘 하긴? 글이나…… 글……”


 “글이나 쓴다고?”


 “……그래. 그것밖엔 할 게 없네”


 “좋아. 그럼 이제 됐어” 여자는 말을 끝맺으면서 철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이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이 너무도 순식간에, 무척 돌발적으로 벌어진 탓에 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문 바깥에는 침침한 조명이 많아야 하나 켜져 있었고, 나와 키가 비슷한 여자 하나가 어안이 벙벙한 내 표정을 아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 섰다. “여기서 나가든, 계속 있든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들어온 지 세 달쯤부터는 잠가두지도 않았어”


 “오, 젠장” 나는 마침내 입을 떼고 말했다. “눈부시니까 문 좀 닫아줄래? 지금 당장……”         


 

<완전한 사육>, 2020. 6     




< 지사생활자의 수기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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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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