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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13. 2020

습작

백일흔세번째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런 거죠. 프로생활 십 년 동안 매년 30개  씩의 홈런을 꼬박꼬박 친 A 선수가 있다고 치자고요. 이건 대단한 거에요. 역사적으로도 300홈런을 넘게 친 사람은 스무 명도 채 안 되니까요” 남자는 말하는 중에도 틈틈이 껌을 씹고 있었다. 이따금 상담실 공기에 껌 씹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그렇습니까? 저는 야구는 잘 몰라서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앉아 대답했다. 


 “잘 몰라도 상관없어요. 야구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문제는 그 선수와 같은 해 데뷔한 B 선수가 있었던 거죠. 이 선수는 첫 해에 홈런을 13개밖에 치지 못했어요. 타율도 낮았고. 두 번째 해는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뭐, 사실 드래프트 동기라는 점만 빼면 A선수와 B선수는 비교할 깜냥도 안 되는 거에요. A는 데뷔 첫해부터 올스타에 선발됐는데, B선수는 세 번째 시즌이 돼서야 겨우 올스타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드라마틱해요”


 “어떤 식으로요?”


 “그러니까, 세 번째 시즌을 앞두고 B선수가 엄청나게 칼을 갈았나 봐요. 그 결과, 시즌 중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40개나 되는 홈런을 쳤죠. 대단한 기록이었습니다. 생애 첫 올스타선발은 물론이고…… 정규시즌 MVP도 노릴 수 있을법했죠.”


 “그런데, 잘 안 됐나보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네” 남자는 공연히 바지 주머니를 뒤지면서 말을 이었다. “올스타전이 끝나자마자 교통사고로 죽었거든요”


 “네?” 나는 아연실색했다.


 “상대 화물차 기사가 졸음운전을 했다던가, 전날 숙취가 가시질 않았다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죠. 이제 막 초일류선수로 발돋움하려던, 먼 훗날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으니까. 어떤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통할만한 재능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었고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족들한테는 더더욱 그랬겠구요”


 “그럼요. 그렇지만 정말 웃긴 건, A선수와 A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그랬다는 거에요” 문득 남자의 억양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사석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왔던 그 이야기가, 거듭 생각해볼수록 재미있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A선수는 통산 300홈런을 친 대타자입니다. 반면 B선수는, 통산 홈런이 50개를 겨우 넘고요”


 “그거야, A선수가 프로생활 자체를 오래 했으니까……”


 “그러니까요!” 남자가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웃긴 겁니다. 사람들은 A선수가 더 좋은 기록을 세운 것이 ‘그저 더 오래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B선수가 살아만 있었다면 지금쯤 홈런을 500개는 쳤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렇게 될 확률도 굉장히 낮았을 텐데도 불구하고요. 한 시즌동안 MVP급 활약을 펼치고 은퇴한 선수는 찾아보면 많이 있어요. A선수처럼 10년 내내 꾸준한 활약을 하는 선수는 훨씬 드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몸관리를 철저히 하는 건, 단순히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B선수는 A선수보다 더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받아요. 그저 전성기에 접어들기 시작할 당시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서……” 


 “그건 불공평하네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존 레논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죽지 않았다면, 결코 폴 매커트니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요. 물론 그런 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거죠. 사람들은 유독 살아있는 대상을 평가절하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거나,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죠. 예술은 더 심합니다. 윤동주의 시, 반 고흐의 그림. 둘 다 죽고 난 다음에 신화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어요. 마치 예술가의 죽음 자체가 그들 커리어를 영원히 완성시켜버린 것처럼요” 남자는 품속에서 껌 하나를 더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건가요? 선생님의 말씀은” 나는 정중히 사양하는 체 하며 나직이 물었다. 남자는 내가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이, 그대로 자기 입안에 껌을 던져 넣었다. 


 “이것 보세요. 죽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압니다. 이건 좀 불쾌한 얘기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주 냉철하고 합리적, 아니……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너무 감상적이고 멍청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사람들은 4차원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평가할 때는 2차원적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해요. 그래놓고 그걸 합리적이라고 착각합니다. A선수는 지난 10년간 꼬박꼬박 홈런 30개만 쳐왔으니 내년에도 30개쯤 치겠지, 하면서. B선수는 시즌 절반 만에 40개를 쳐냈으니까, 살아만 있었으면 매년 적어도 6,70개는 때렸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요컨대 그 상황에서의 등락, 가속도, 미분된 값만을 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단정 내려 버리는 거죠. 사람은 원래 그렇게 단순한 동물입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결국 그런 게 사람이니까요. 아득바득 억지로 합리적인 체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자극에 마음을 줍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래요?” 나는 그때서야 겨우 질문할 틈을 찾아내 물었다. “그럼 본인의 감정은 지금 어떻습니까? 어떤 기분이시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남자는 전에 없이 단호한 말투였다. 


 “그렇게라는 건”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고통 받으면서, 더 낮은 존재가치를 향해 가는 거요. 매일 같이 자기 증명에 대한 고통에 시달리며 사느니, 시원하게 뒈져서 전설이 되는 쪽이 훨씬 이득이니까요. 커트 코베인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말이에요”


 “그래요. 말씀하시는 것에 일리가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자수하는 범죄자 같았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그런데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순간 내담자로서 내 앞에 마주앉은 그 남자에게 원인모를 악의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가 우리들 인생이 가진 태생적 공허함이며 부조리함 따위를 상기시키면서, 대부분 애써 무시하기 바쁜 사실을 그만큼이나 적나라하게 꺼내놓는 것이 아주 경멸스럽기까지 했다. “당신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케이스들은, 일단 죽기 전에 대단한 작업물을 내놓기는 했습니다. 비극적으로 죽어서 그게 고평가 받았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겠지만요. 형편없는 작품이 ‘그저 죽었다고 해서’ 위대해지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그런 질문을 기다린 사람처럼, 지그시 웃으며 대답해왔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듣는 말이죠. 저는 그게 괴롭습니다” 


 머잖아 상담시간이 끝났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고, 다시는 내게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     


 남자의 부고가 전해진 건 일 년 뒤 온라인 뉴스를 통해서였다. 홍대에 홀로 거주하던 청년 음악가가, 첫 정규앨범을 출시한 다음날 지하철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일주일 쯤 더 지나자 그의 첫 앨범 수록곡 전부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라갔으며, 나는 한 언론사의 등쌀에 못 이겨 짧은 인터뷰를 했다. 


 “제 생각에는, 그 분은 굉장히 실의에 빠져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고요……”


 나의 코멘트는 <어느 천재 음악가의 요절>이라 이름 붙은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 짧게 인용됐다.


 반 년 뒤에는 그의 이름 석 자를 딴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대형 경기장을 빌려 진행되는 그 공연에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탑급 연예인들이 대거 출석했으며, 콘서트 말미에는 그 노래 잘 부르기로 소문난 가수들 몇 명이 모여 그의 앨범 수록곡을 커버하는 것으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나는 그 화려하고 위대한 피날레를 유튜브 라이브로 지켜보면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푸념하곤 했던, 어느 날에는 중소 기획사 사장으로부터 ‘음악은 때려치우고 막노동이라도 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술주정처럼 이야기하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라 아른거렸다.           

    

<풍선껌>, 2020. 8     





<풍선껌>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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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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