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12월 3일.
잠에서 깨 이불에서 기어 나오는 시간이 싫다. 전날 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현실을 기억해낸다. 굳이 만지지 않아도,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두 동강나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수도꼭지를 돌려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잠깐 동안 그대로 둔다. 잠겨죽기엔 인생에 구멍이 너무 많다. 눈물은 빈 공간으로 틈입하고, 질질 새나감으로써 죽음을 방해한다. 그래서 영혼은 익사하지 않는다. 울다가 죽는 사람보다 울만한 일이 하나도 없어 죽는 사람이 더 많은 건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해본 게 언제였을까? 하릴없이 휴대폰 화면이나 쳐다보다가, 선물함에 있는 외식상품권을 찾았다. 사용가능한 매장은 뷔페식당이었다. 뷔페라면 적게 먹어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역 근처에 있었다. 혼자 가기가 무안해 아는 사람 한 명과 함께 가서 식사하기로 했다.
요즘 식당이 으레 그렇듯 생각 이상으로 한산했다. 빈 접시를 들고 걷다가 잡채를 봤다. 양이 거의 줄지 않은 걸 보니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달 전 서연이도 내게 잡채를 해줬다. 잡채라고는 해도 파프리카와 당면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잡채가 집에서도 조리할 수 있는 요리라는 것에, 내가 생각보다 잡채를 좋아한다는 것에 놀랐다.
지난 이 년 내내 그랬다. 난 내가 이유 없이 싫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았다. 음식을 조금씩 덜어 자리로 돌아갔다. 맛이 없지는 않았는데. 잡채가 내가 아는 그 잡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 뒤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꽤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차로 응암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밤이 한참 깊었다.
서연이로부터 받은 답신을 한 차례 더 확인했다. 하루 만에 후딱 다녀왔다는 말밖엔 없었다.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더 묻지 않았다. 별로 말하고 싶은 눈치도 아니었고. 나도 더 이상은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목을 조르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는 것은 힘들다.
그 뒤로는, 그냥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잠들었다. 정말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잠들 당시에 수면제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떠오르질 않는다. 아마도 먹지 않았을까. 내가 믿는 건 스스로의 나약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