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든다섯번째
“그래, 이제 뭔가 보여요?” 남자는 외투 양쪽을 싸매고 움츠려 앉았다. 어두컴컴한 산마루 주위로 이따금 벌레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무슨 별인지 알 것 같아요?”
“잘 보여요. 다는 모르겠지만 몇 개는 충분히 알아보겠는데요. 한 번 보실래요?” 여자는 천체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남자를 바라봤다.
“아, 좋아요. 저는 뭐가 무슨 별인지 잘 모르지만.”
“몇 개는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그대로 눈을 가져다대보실래요?”
여자의 제안에 따라, 남자는 처음으로 망원경 내부로 초점을 맞춰보았다. 육안으로 볼 땐 캄캄해 보이지 않던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보인다. 보여요!”
“그렇죠, 신기하죠?” 여자는 남자의 야단법석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가장 중간에, 눈에 띄게 제일 밝은 별 보이죠? 그게 시리우스에요.”
“시리우스.”
“네. 시리우스.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고, 태양을 제외하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이에요.”
“태양을 제외하면?”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으면서도, 시선은 그대로 망원경 안쪽에 두고 있었다. “달이나 태양계에 있는 다른 별들은요? 시리우스보다 덜 밝은 건가요?”
“아, 말씀하신 것들은 엄밀히 말해 ‘별’이 아니에요. 우리말로는 밤하늘에서 빛나는 천체들을 싸잡아 별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스스로 빛을 내는 친구들만 항성, 즉 영어로 ‘스타’라고 지칭하거든요. 우리가 사는 지구나 목성, 금성 같은 별들은 태양 같은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이구요. 달처럼 그 행성들을 공전하는 별들은 위성인거죠. 간단하게 말하면 그래요.”
“아하, 그럼 시리우스는”
“태양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항성인거죠.”
“그럼 지구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우리 입장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것과 실제 지구와의 거리는 좀 다르거든요. 더 멀어도 더 밝게 보일 수 있고, 더 가까워도 잘 안 보일 수도 있고요. 태양이 달보다 밝지만 훨씬 멀리에 있는 거랑 똑같아요.”
“역시 설명을 잘 하시네요. 단번에 이해했어요.”
“저야 이런 걸 가르치는 사람이니까요. 하하…… 그래도 뭐, 시리우스 정도면 아주 가까이에 있는 별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죠.” 여자는 차 트렁크에 벗어놓았던 외투를 집어 몸에 걸쳤다. 밤바람이 싸늘했다.
“지구랑 어느 정도 떨어져있는데요?”
“팔 광년 정도에요”
“……팔 년을 가야 닿을 수 있다는 거네요.”
“네. 그것도 빛의 속도로.” 여자가 억양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남자는 여전히 렌즈에 눈을 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빛도 팔 년 전에 시리우스에서 출발한 거죠.”
“그런데 그게 그나마 가까운 별이라니.”
“재밌죠?”
“물론 재밌기도 한데.” 남자는 마침내 천체망원경에서 시선을 떼고,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쓸쓸하네요. 저는.”
“왜요?”
“이 넓은 우주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지구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야 지금은 그렇죠.”
“아직 다른 별에서 문명의 흔적을 찾지도 못했고요.”
“네. 그것도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니 인간이 참 외로운 존재다 싶어서요. 이 좁아터진 지구에서도 고독하게 사는데, 저 넓은 우주에서조차 혼자라니…….”
“…….”
“죄송해요. 모처럼 별보러 왔는데 이런 얘기나 해서.”
“아, 아니에요.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 수도 있죠. 저도 별 보는 건 좋아하지만, 가끔 그런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거든요. 충분히 이해해요. 이 드넓은 우주에 철저히 혼자된 기분이죠. 나도 혼자, 인류도 혼자.”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다행입니다.” 남자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심지어 교수님들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주를 연구하면 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 든다고요. 우리가 집착하며 사는 것들이 우주적 관점에선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인식하게 되니까.”
“충분히 그럴 만 한 것 같아요. 오늘 처음 본 저도 그러니까…… 아, 혹시 실례가 아니면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그럼요.”
“학창시절 원래 장래희망이 과학자였다면서요.”
“네. 정확히는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죠. 칼 세이건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여자는 어쩐지 생각에 잠긴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갑자기 과학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어요? 아니면 그냥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는지…….”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천체물리학자가 돈을 잘 버는 건 아니지만, 교사라고 돈이 잘 벌리는 직업이라곤 할 수 없으니까요. 조금 더 안정적이라고는 볼 수 있겠지만요. 제 입장에선 별 차이가 없었어요.”
“그럼, 다른 이유가?”
“으음…….” 여자는 적당한 대답을 꺼내놓기 여간 어렵지 않다는 듯 가볍게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남자는 여자가 있는 위치로부터 일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서 마주보고 있었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이었기 때문에 표정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아, 혹시 허블 망원경이라고 아세요?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망원경인데.”
“아, 그, 우주가 배경인 영화에 몇 번 나오지 않았나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제가 영화를 잘 안 봐서……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고.”
“네. 전혀 중요하지 않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거들었다.
“허블 망원경은 인류가 가장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눈과 같아요. 구십년 대에 쏘아올린 허블 망원경이 지금껏 천문학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많은지, 하나하나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중요한 건 그거죠. 좀 전에 시리우스 이야기할 때, 우리가 보고 있는 빛이 팔 년 전에 나온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지구에서 팔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니까요.”
“네.”
“그럼 있죠. 백억 광년 떨어진 별을 우리가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야 백억 년 전에 방출된 빛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
“네. 맞아요. 하지만 동시에…….” 여자는 부드럽게 허리를 숙여 천체망원경을 어루만졌다. 금속성의 표면이 몹시 차가워 손이 시렸다. “우주의 나이가 적어도 백 억년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당연한 얘기죠. 빅뱅 이전에는 빛도 별도 없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니까 그렇겠네요.”
“지금 우리 인류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백삼십팔억 광년 쯤 떨어져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관측 가능한 우주’의 나이는 백삼십팔억 살인 거죠.”
“그건 정말 상상이 안 되는데요. 백삼십팔억 년이라니. 굳이 따지면 지구 나이의 세 배 쯤 되는 거네요.”
“그런데 이건 몇 년 안으로 더 늘어날 거에요. 우주의 나이도, 관측 가능한 우주의 넓이도.”
“어떻게요?” 남자는 여자가 망원경 렌즈에 가까이 갈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물었다.
“내년 초쯤에 새로운 우주 망원경을 쏘아 올리거든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라고. 사실 허블 망원경만 해도 삼십 년이나 된 기술을 그대로 쓰고 있는 셈인데, 그보다 훨씬 발전한 지금의 기술력으로 우주 망원경을 궤도에 올린다면…… 두말할 것 없이 놀라운 발견들이 이어지겠죠. 백오십억 년 훨씬 전의 천체들을 볼 수도 있을 거고, 더 나아가선 빅뱅의 비밀을 풀 수도 있을지 몰라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우주란 훨씬 더 넓은 곳이 될 거고.”
“인간은 한층 더 작은 존재가 되겠네요. 그렇게 되면요.”
“맞아요. 결국 더 멀리, 더 오래전의 시간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런 거죠. 외로운 인간을 더 외롭고 초라한 존재로 만드는…… 영원히 닿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어딘가를 더 자세히 알게 되잖아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물론 전 시리우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요.” 여자는 다시금 웅크려 앉았다. 그러고 나서 한 쪽 눈을 렌즈에 들이민 다음, 망원경 이곳저곳을 한 손으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런 거에요. 저는 더 멀리, 더더욱 멀리 바라보면서, 갈수록 고독해지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이 재미있는 걸 더 많은 친구들이 알아나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교사가 되기로 한 거죠. 굳이 말하자면 그래요. 근데 아직 미련은 남아서…… 가끔씩 이렇게 별 보러 오는 걸로 달래는 거겠죠.”
“……듣고 있자니 뭔가 멋진데요? 어린 나이에 자기 진로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게.”
“호호, 그런가요?” 여자는 너스레를 떨며 대꾸했다.
“그럼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건가요? 아니면 교사 말고 과학자가 되는 게 좋았을 텐데, 같은 생각을 했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전 과학자들을 존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학교사도 중요한 존재들이라 생각하거든요. 비록 과학자들처럼 더 멀리 보지는 않고, 고작해야 같은 별에 사는 다음 세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뿐이지만. 제 생각에는……” 이내 여자가 설치된 망원경을 정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거들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더 멀리 볼수록 우리의 가까움을 실감하게 돼요.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곁에 있는지, 그러면서도 어찌나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우주가 얼마나 드넓고 광활한 곳인지도 알려주어야겠지만, 동시에 이토록 가까이 있는 서로가 얼마만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지도 말해줘야 해요.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건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교사가 해야 할 일에 가까우니까요.”
“……그렇군요. 이해가 돼요.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전부 이해해야할 필요도 없죠.”
“맞아요. 갑자기 엄청 추워졌네요. 슬슬 돌아갈 거죠?”
“네, 그런데.” 여자는 분리된 천체망원경을 케이스에 정돈해 넣고, 착 소리가 나게 닫아 잠근 다음 말했다. “혹시 괜찮으면 컵라면 먹고 갈래요? 트렁크에 몇 개 사뒀는데…….”
“아, 그거 좋죠.” 남자가 대답했다.
<천체, 물리학의 이해>,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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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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