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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Nov 30. 2020

습작

백여든네번째

 ‘사람이 하는 어떤 운동이든’ 굳은살이 박이기 전까지는 무척 아프다. 마찰이 없던 부위에 지속적으로, 일정한 강도의 압력이 가해지면 고통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다만 그 일련의 압박을 꾸준하게 받다보면 어느 순간 그 부위에 생기던 물집이 사라지고, 나무껍질같이 단단한 살이 올라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요, 선생님. 제 생각에는 조금 불합리한 거 같아요.”


 “무슨 말씀이시죠?” 트레이너는 별 생뚱맞은 질문을 다 듣는다는 듯 대꾸했다. “아직 한 세트 남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시간 끄시면 오 분 늘려서 할 수밖에 없어요.”


 “아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요. 이 턱걸이도 그렇고”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보조 밴드에 발 한 쪽을 갖다 대보이며 말했다. “처음 운동할 때는, 굳은살이 안 박인 상태로 하면 너무 아프잖아요. 근육에 힘이 풀려서가 아니라 물집 때문에 못할 정도로요.”


 “그런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죠.” 트레이너가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게 다음 세트를 못하는 이유는 아니잖아요.”


 “아, 한다니까요.”


 “그럼 하세요. 1분 지났으니까.”


 “아, 젠장…… 이젠 말도 못하게 해.” 나는 들으란 듯이 투덜거렸다. 트레이너는 전혀 아랑곳 않는 태도로, 기계처럼 내 허리를 잡아 자세를 보조해왔다. 


 “하나, 둘…… 셋…… 좋아, 방금 자세 좋아요. 팔로 당기지 말고. 팔로 하면 더 힘들다니까. 그래요, 등으로 당긴다는 느낌으로. 광배에 이제 힘들어간다. 아, 이제 잘 하시네. 감을 좀 잡으신 것 같은데? ……열넷, 열다섯…… 아! 내려오지말고, 내려오지말고! 여기서 세 개만 더 해보자고요. 할 수 있다니까.”


 “아니…… 원래 열다섯 개…… 끄아악……” 근육이 터질 것 같았다! 손바닥에 있는 물집은 이미 터진 모양이었고, 전완근이 저릿해서 철봉을 붙잡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 상태에서 세 개를 더 하라니. 말도 안 돼. 말도…….


 “자……. 하니까 되잖아요. 그쵸?” 


 “아, 예…….” 나는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말했다. 세 번의 동작을 더 하기야 했지만, 그건 트레이너가 나를 공중으로 밀어 올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해진 동작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까 하려던 말이?”


 “아.” 이마 아래로 구슬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양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가락들과 손바닥이 연결되는 부분에, 새끼손톱 절반만한 물집 몇 개가 터져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상처를 저미고 들자 무척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겨우 할 말을 기억해냈다. “……그러니까. 불합리하다고요. 처음에 하면 뭐든지 고통스러운데, 그게 익숙해지고 덜 아프려면 그 고통스러운 걸 쉬지 않고,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요. 그래야 겨우 버틸만해지고……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근육 키우려고 하는 운동에 효율을 따지는 게 신기하긴 하네요, 저는.” 트레이너는 의아한 투로 말했다.


 “그럼 서킷트레이닝은 시키지 말았어야죠. 지난주에는 한 시간도 너무 짧다 그랬으면서.”


 “아, 그건 다른 얘기죠. 서킷 트레이닝은 매우 좋은 운동 방법입니다. 한 번쯤 경험해두는 게 좋죠.”


 “저도 뇌가 점점 근육이 되가는 걸까요? 선생님처럼 운동을 많이 하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회원님이 방금 말씀하신 거에는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트레이너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제 하고 싶은 얘기만 했다. 나로선 그게 편했다. “굳은살이 생기면 좀 편해지기야 하죠. 그런데 한 번 박인 굳은살도 어느 순간에는 떨어져나가거든요. 처음엔 굳은 곳 한쪽에 작은 균열이 생기다가, 운동을 계속 하다보면 금방 너덜너덜해져서 나가 떨어져요. 단순히 쓰라린 걸로 치면 있던 굳은살이 떨어져나간 직후가 제일 아프죠. 굳은살 밑에 난 새 살에다가 또 다시 압력을 가하는 거니까요.”


 “……그래요? 선생님도 그런가요?” 나는 불현듯 진지한 투로 질문했다. 


 “네. 저도 그래요. 운동한지 십오 년이 넘었지만. 계속 생겼다 떨어졌다 그래요. 하긴 제 피부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나요? 이젠 정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떨어져 나가서 더 아플 때는요.”


 “아, 그거야……” 트레이너는 전에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계속 열심히 운동하는 수밖에 없죠. 언젠가는 안 떨어져나갈 굳은살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아님 어쩔 수 없고. 하하.”


 “와, 그건 너무 대책 없는 방법 아닌가요?”


 “인생이란 게 그렇게 생겨먹은 거죠. 완벽한 대책이 있는 삶이 어딨겠습니까. 운동도 마찬가지에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죠.”


 “물어본 제가 잘못입니다.”


 “자, 갑시다. 이제 허리 운동하고 끝내야죠. 남자는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회원님의 부실한 허리 때문에 여자친구가 떠났을 수도 있는 거니까.”


 “피티 중간에 끊으면 환불 되나요?”


 “아뇨.” 트레이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러게 약관을 잘 읽고 서명을 하셨어야죠.”


 “아, 이런 트레이너인줄 어떻게 알고요?”


 트레이너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걸으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딘가 너무 쓰라려 아프지만, 곧 거기에도 굳은살이 생길지 모를 일이라고.


 언젠가 또 다시 떨어져나가더라도, 죽어라 아파도 살 수 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고. 당장은 물집이 터지고 진물이 흘러나오겠지만…….     


<굳은살>, 2020. 11     




< this is what you get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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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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