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prologue
'영원'은 영감의 원천을 두 글자로 줄인 것이고, 뭇 수완없는 예술가들의 명목상 통장잔고이며, 그 대가로 말미암은 창작의 수명이다. 불어로는 La vie est courte, l'art est long 이라고 쓴다. (좀 재수가 없어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잘 모르는 불어 회화를 남발하는 것은 삼류 작가들의 오래된 전통이다.)
나는 지난 몇 년동안 책 몇 권을 내고, 꾸준히 글을 올렸다. 그러다보니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평소에 글 쓰실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라는 질문을 질리도록 받았다. 이건 나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린 창작자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문제다. 뭐랄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창작활동을 일반적인 노동과 다른 차원의 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크게 차이도 없지만.
아무튼 그럴 때는 상황에 따라 둘러대거나, 조금 이골이 난다 싶을 땐 "아, 어떻게 영감을 받을 때만 글을 쓰나요? 없어도 쥐어 짜내야 밥벌이를 하죠" 같은 대답을 내놓곤 했었다. 매번 진심이 아닌 건 아니었는데... 역시 성의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말하는 사람도 그런데 듣는 사람은 오죽했겠나 싶다.
나는 영감(그러니까, Inspiration 말이다)에 대해 다소 추상적이고,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우 적대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무슨 특별한 경험이나 착상 때문에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란 담배를 피거나 불알을 긁는 것만큼―이건 일이 쉽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게감에 대한 것이다―단순무식한 작업이다. 그러니까 "글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라는 질문이, 나로선 "당최 무슨 이유로 담배를 피세요?" "어째서 불알을 긁는 거죠? 더럽게..." 라는 질문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참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나역시 일체의 인풋없이 글을 두다다 갈길 수 있는 천재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영감'의 개념이며 내게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책을 읽든, 그림을 보든, 음악을 듣든. 그런 건 내게 어디까지나 독립된 시간이며 활동이다.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나 소재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릿속에 쌓인 기억이며 경험 따위는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작업에 반영된다. 어쩌면 나한테는 이런 것들이 영감인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최근에 들어서야 하게 됐다.
어떤 그림이나 영화를 본 직후 "오 난 영감을 받았어" 하고 몇 초만에 글을 쓰러가는, 그런 극적인 상황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정말 좋은 작품을 봤다'고 생각이 되면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내가 받은 감상을 곰곰이 떠올리고 정리하는 편이다. 내게 있어 영감이란 번개처럼 꽈광하고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것이 아니다(상상을 해보면 좀 아프다). 그보다는 스웨터를 입고 벗을 때 나오는 전기 따위로 전지를 충전하는 일에 가깝다. 언젠가 하루키가 언급했듯이 '서랍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받은 영감이 어떤 글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 지는, 그 시점에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짧게는 몇 주나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러고 보니 그 땐 그랬군...' 하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류의 영감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느낀 영감 비스무리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놓는 것이 꽤 재미있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뭣보다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애매하게 알고 있는 개념에도 깊이가 생기고, 좀 더 입체적인 공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다. 몇 년 째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을 하고는 있지만, 광고 때문이 아니라 유튜브 뮤직을 쓰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가장 불편한 점은 댓글이다. 댓글은 참 재미있는 문화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며 여유를 뺏는 요소이기도 하다. 온라인 기사든 동영상이든. 인기 댓글들 몇 개를 읽고나면 '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과 최대한 비슷한 방식, 동일한 스탠스로 콘텐츠를 이해하게 된다. 그게 뭐 나쁘다거나 힙하지 않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뺏기는 기분이 별로일 뿐이다.
고전문학이나 해설없는 그림, 재즈 같이 고리타분한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아주 고상하고 세련된 인간이라서가 아니고, 단순히 댓글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져보면 이런 데에는 댓글이 아닌 '글'이 있다. '글'을 쓰려면 스스로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의 생각을 대신하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유의 문화가 나는 좋다. 좋은 콘텐츠를 찾기 위해선 발품을 팔아야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감상을 정리하는 것. 번거롭고 까다로우며, 아무도 '이건 이거야' '간단히 말해 저건 저거라고 보면 돼'라고 설명해주지 않는 것.
이렇게 써놓고보니 무지하게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것들 뿐이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보람이 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똑같은 고양이 사료라도 자율급식으로 먹을 때와, 먹이트랩으로 고생해서 먹을 때는 감회부터가 남다른 것이다. 전자는 그저 배를 채울 뿐인데 반해, 후자는 '내가 해냈어' '내가 찾아낸 거야' 하는 기쁨과 소중함이 덩달아 온다. 먹이트랩을 쓰는 고양이가 자율급식을 하는 고양이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고양이를 부탁해》애청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머리말은 길게 쓸 수록 멋이 없는데. 나는 가면 갈수록 멋이 없어지는 것 같다. 하여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보고 기억하는 것들, 더 잘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기록해놓을 작정이다. 지금부터 내가 꾸준히 쓸 수 있기를, 또 그 결과물들이 즐겁게 읽힐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려둔다.
2021년 3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