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Caravaggio
1. 누가 그림그리는 양반들 아니랄까봐, 미술사에는 유독 기이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 많다. 그 면면들을 한데 모아 기인열전을 만든다고 해보자. 이름 좀 떨쳤다는 화가들은 죄다 후보로 이름을 올려두겠지만, 부득이하게 몇 명밖에 추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차라리 고흐는 빠져도 된다. 가난과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고흐의 삶 자체는 오히려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으니까(이건 사후에 너무 유명해져서 하나의 스탠다드가 된 점도 있다). 그러나 카라바조만큼은 최우선순위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카라바조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기나긴 예술사, 그 수많은 예술가 양반들 중에서도 기행으로서는 탑 오브 탑이기 때문이다.
2. 엄밀히 말해 카라바조라는 이름 자체는 이름이 아니다. 풀네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인데, 여기서 '다 카라바조'는 카라바조라는 동네 출신이라는 뜻이다(비슷한 예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라는 의미다). 지금으로 치면 이세돌을 그냥 '비금도'라고만 부르는 셈인데…… 나라면 좀 기분이 나쁠 것 같다. 뭐, 별명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게 생겨나는 것들이지만. 한편 미켈란젤로라는 본명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가 베를린 미술관에 걸려있던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역시 미켈란젤로는 최고라니까ㅋㅋ" 하고 감탄했다는 것.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헷갈렸던 것이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야 그럴 수 있다쳐도…… 과연 입시에 실패했을 법 하다.
3. 그 시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카라바조의 성격은 유달리 지랄맞았던 것처럼 보인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욕을 했으며, 길에서 시비가 붙은 행인을 줘패고 다녔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분노조절장애인가 싶기도 하다. 웃긴 건 그런 와중에도 본인은 무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 성장환경도 평탄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화방의 견습화가로서 오랜 시간을 버텼다.
4. 그러다 이십 대가 되자마자 도망치듯 로마로 떠난다. 여기서 '도망치듯'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싸움질하다가 경찰한테 쳐맞고 진짜 도망친 것이다... 그렇게 다짜고짜 로마에 오긴 왔는데 대책은 없다. 집도 없는데 헐벗고 굶주리고 수입도 없다. 그렇지만 그림에 대한 재능 하나는 진퉁이었기 때문에, 종교화 그리는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5. 당시 로마 가톨릭은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에 맞서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또 기존 신자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런저런 개혁을 시도했다.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위대하고 웅장한 예술만 할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게끔 실감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카라바조가 나타난 것이다. 밀라노의 가난한 촌구석에서 태어나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살아남으려고 죽어라 그림을 그려왔는데 천부적인 재능까지 가졌다. 카라바조가 로마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6. 한편 카라바조는 어둡고 깜깜한 배경 속에서, 제한된 빛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도 불리는 이 혁신적 기법은 훗날 루벤스와 렘브란트 같은 바로크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지나치게 자연적인 묘사를 추구하다보니 '그림이 너무 천박하고 신성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빠꾸를 먹기도 한다. 진짜 겁나 잘 그리기는 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의뢰한 입장에서도 참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7. 하여간 그렇게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한 카라바조. 그러나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듯 시비 걸고 사람 패고 다니는 기질은 여전했다. 1606년에는 기어이 사고를 친다. 내기로 테니스 치다가 빡쳐서 사람을 찔러죽인 것이다. 그동안은 교회쪽에서 어렵사리 수습을 해줬다지만. 이렇게 명백한 살인을 저지르면 제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 해도 도리가 없다. 결국 카라바조는 로마를 떠나 방방곡곡에서 망명생활을 한다. 그와중에도 사고는 계속 치고, 체포도 당하고 추방도 당한다. 나폴리에서는 얼굴에 큰 상처까지 입는다.
8. 상황이 이렇게 되자 떠돌이 생활도 지쳤던 걸까. 이제 카라바조는 로마로 돌아가고 싶었고,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마 '이렇게까지 그렸는데 날 그냥 죽게 내버려두진 않겠지?'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그림이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이다. 이 그림에서 승리해 기뻐해야할 다윗은 뭔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골리앗의 얼굴은 다름아닌 카라바조 본인의 얼굴이다. 어쩌면 그는 '나는 과거의 나를 죽였다. 이제는 개과천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9. 그러나 카라바조는 로마에 돌아갈 수 없었다. 밀항하려던 배가 먼저 출발하는 바람에, 해변을 따라 죽어라 뛰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배는 떠났다. 카라바조는 그 자리에서 열병이 도져 죽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초라한 죽음. 이렇듯 카라바조의 인생에는 까마득한 암흑과 찬란한 빛이, 순수함과 추악함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이 그림으로 완성되어야 마땅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