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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24. 2021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 (3)

게임을 하는 이유



대체 몇 승이야



우리는 게임을 왜 하는 것일까. 


뻔하고 진부하고 쓸데없지만, 게임을 기획하거나 만드는 입장에선 한 번쯤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는 소재다. 왜인지 이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절대적으로 좋은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것 같으니까.


'당연히 게임은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라는 대답은 대단히 무난하고 일반적인데,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결론은 못된다. 세상에는 뭇 사람들이 '재미없다' '수준낮다'고 치부하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면 게임이 재미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또 재미있는 게임과 재미없는 게임이 따로 있다면, 그 두 종류의 게임을 '게임'으로 정의하게끔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알다시피 이런 질문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통계적 분석도, 학문적 통찰도, 과학적 근거도, 그때그때의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어느 세계적 석학이 게임에 관한 수십 수백 장의 논문을 갈겨놓고 나서, 마지막 장에 '~~기 때문에, 사람들은 게임을 한다. 때문에 ~~해야 좋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쳐도, 그게 게임에 관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확고부동한 사실이라 받아들이긴 어렵다. 아무리 빈틈없는 논거를 준비해오더라도 누군가는 반례를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반례라는 건 길게 말할 필요도 없고, 딱 댓글 한 줄만 달면 완성되는 것이다. '니가 말한 그 게임 나는 재미없던데?'



갓도 하는 갓겜



인간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무언가를 언어화한다는 것, 하나의 개념으로 번역한다는 것에는 늘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개념의 정의, 하나의 단어를 설명하는데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너 힙합 좋아해?'라고 묻는다. 그러자 친구는 '어. 나 힙합 좋아해'라고 대답한다. '오. 힙합 누구 좋아해?'라고 다시 물어보니, '나는 릴보이를 좋아해'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자 질문을 했던 사람이 불쑥 화를 내면서 말하길, '릴보이는 힙합같은 게 아니야'라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친구는 뭐라고 대꾸를 할까? '아, 그렇구나. 나는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앞으로는 그냥 릴보이가 하는 상업음악을 좋아한다고 명확하게 정의하도록 해야겠어' 라고 생각하고 말할까? 아니면, '뭐야 좆밥새끼야 니가 말하는 힙합이란 게 뭔데' 라고 짜증을 낼까? 나는 대부분의 말싸움이 후자의 경우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황폐함의 기준이 뭘까?



게임도 별 다를 건 없다. 누가 어떤 게임을 평가했을 때, '그 게임은 전혀 재미있지 않아' 라는 반론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건 게임조차 아니야. 그냥 게임의 탈을 쓴 영화일 뿐이지'같은 식으로 이죽거리는 사람도 흔하다. 여기에다대고 뭐가 게임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들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게임이고 게임이 아니고 하는 건 중요한 부분도 아니다. 좁혀야하는 차이가 있다면 각자가 콘텐츠로부터 받았던 인상에 있지, 게임이라는 단어의 정의 따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좀 뜬금없는 얘기지만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재즈에는 그 장르적 즉흥성만큼이나 흥미로운 일화가 많이 남겨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흔히 '재즈의 아버지'로 알려진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것인데, 한 번은 누가 루이 암스트롱을 붙잡고 '선생님, 제가 정말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이렇게 여쭙습니다. 재즈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더랬다.


하기야 '재즈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는데 루이 암스트롱 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바흐에게 음악을, 아인슈타인에게 상대성이론을 묻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루이 암스트롱이 허허 웃으며 대답하기를, '그렇게 묻고만 다니면 평생 재즈가 뭔지 모를 겁니다...'라고 했다는 얘기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누가 재즈를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를 짜내 대답할 때도 있지만, 가장 솔직한 대답은 그냥 정신차려보니 재즈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임도 그랬다. 게임을 하는데는 이유가 없다. 성장하는 재미, 멋있는 캐릭터, 목표달성에 대한 보람, 상대적 우월감, 반전있는 서사, 영화 같은 연출... 게임을 즐기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게임을 시작하는 본질적 이유는 아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게임의 그런 부분은 참 좋았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생각해보니 그냥 게임을 꺼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몰입과 비평을 동시에 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의 나는 그랬다. 나는 왜 살까, 왜 게임을 할까,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걸까,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은, 적어도 그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만큼은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게이머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는 그런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게임이 주는 그 메시지라는 것은, 스스로가 게임으로서 몰입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탄생해야하지 않나 싶다. 게임을 만들었는데 메시지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메시지를 만들었는데 그저 매개체가 게임일 뿐이라면 '플레이어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쯤 생각하고보니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데. 지나치게 추상적인 발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왜 시작했던 거지? 왜 이런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든 일을 해야했던 나는, 더 이상 이유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글은 정신차려보면 완성돼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느끼는 것이다. 이유없이 만들어야 이유없이 할 것 아닌가. 나는 돈 때문에 게임 시나리오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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