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n 14. 2021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 (4)

버리는 게임



미야모토 시게루. CC BY-NC, ORAZ Studio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겉멋으로 사회학 서적을 마구 읽어대던 시기가 있었는데(대체 그게 왜 멋있다고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한 번은 도서관에서 닌텐도와 나이키를 비교대조한 마케팅 서적을 읽었다. 나는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이름을 거기서 처음 보았다.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 기획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이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슈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동키콩' 처럼 비디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디자인했으며, 백년 전 화투나 팔면서 시작했던 닌텐도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한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읽던 그 책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와서 일 개잘하는 애' 정도로 다뤄졌기 때문에 분량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나랑 생일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이지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모토로 하는 닌텐도. 그 닌텐도의 핵심인물인 미야모토는 게임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단 게임 산업에만 적용될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다보니, 지금도 미야모토 시게루의 어록을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쏟아져 나올 정도다. 


 미야모토는 한창 열심히 만들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수백억의 예산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통째로 엎어버린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출시일자가 미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내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뭐 본인 철학이 분명한 건 좋지만, 확실히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점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말을 털어 놓았다. 그게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는 해도, 본인으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투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때 미야모토가 한 말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당연히 엎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엎어버리면 그저 완성할 때까지의 시간이 더 걸리는 것뿐이지만, 그냥저냥 해서 출시해버리면 그 게임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아버리니까요……"



<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끔은 싫은 일을 해야할 때도 있다. > 



 한동안은 게임 시나리오에 손도 대지 못했다. 내가 게을러터져서가 아니고, 2년반동안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이사갈 집은 보증금이 높지만 정부지원을 받아 전세나 다름없는 월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 넓진 않지만 집 군데군데에 크고 작은 창문이 많아 햇볕이 잘 들었고, 꽤 넓은 야외베란다도 딸려 있어서 무척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내게 그만한 목돈이 있을리가 있나? 애초에 금전적 여유가 충분했다면 꼭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러 수시로 은행에 들렀다. 이사예정일과 보증금 반환 시기 문제로 집주인과도 수차례 다퉈야 했다. 주거래 은행에 신용대출을 문의하러 갔더니, 이미 보증한도가 넘어가서 추가대출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래저래 일이 꼬이기만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주변인들 몇 명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이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게임 시나리오 일을 받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작 시나리오 작업은 반쯤에서 멈춰버린 상황이었는데. 나는 돈을 받았으면서도 시나리오와는 전혀 관계없는 생활적 업무에 몰두해야 했다. 미리 양해를 구했고, 달리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자책감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사에는 뭘 해도 돈이 들었다. 더구나 기존에 살던 집과 달리 기본 옵션이랄 게 없는 집이어서, 작은 크기의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기본가전을 마련하는 데에도 적잖은 비용을 치렀다. 나는 이사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답시고 가지고 있던 물건 중 절반 이상을 버렸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사는 일만큼이나 만만찮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내게 이런 물건이 있었나? 싶은 것들, 전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과 편지들, 유효기간이 지난 서류들을 전부 내다버렸다. 이미 읽었지만 두 번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도 중고서점에 가져다 팔았다. 옷도 자주 입어버릇하던 것들만 빼놓고 대부분 헌옷수거함에 넣었다. 


 그러고나니 내 짐은 정말 몇 개 남지 않았다. 서울에서 몇 년을 혼자 살았는데, 1톤짜리 탑차에 거의 모든 짐이 들어갔다. 결국 내가 새 집에 가져온 것이라고는 한두개씩 사모은 수백권의 책들,  오랫동안 써온 가구와 가전용품 몇 개, 업무용 컴퓨터, 박스 몇 개에 다 들어가는 잡동사니들이 고작이었다. 이삿날은 무척 더웠다. 나는 늦은 밤까지 혼자 짐을 정리하면서, 겨우 이따위 것들 때문에 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데 화가 치밀었다. 분리돼있던 컴퓨터를 정리해 자리를 맞춰놓았다. 진이 다 빠졌지만 조금이라도 일을 하다가 잠들고 싶었다. 좋아, 빨리 복귀해서 내 일을 제대로 처리해놓아야지.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잖아……  



< 짤곧내 >



 그런 나의 의도나 바람과는 다르게, 시나리오 작업은 이사 후 보름이 넘도록 이렇다할 진척이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던 시나리오가 몰라볼 정도로 위태로워보였다. 애초의 기획의도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것들은 선택지 한 번에 경우의 수가 너무 다양해지는 바람에, 말미에는 수습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개연성이라는 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긴 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싶은 대목까지 왔다.  


 정말 이걸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이라면 이 게임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난 대체 뭘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가운데 서류상 필요한 작업들, 몇 달 전 마감해놓았던 책이 출판되는 등의 일들이 겹치면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면증은 여전했고 식욕은 없었다. 어느 날부터는 하루에 한 번꼴로 공황발작을 했다. 불꺼진 거실마루에 혼자 쓰러진 채 헐떡거리다가, 그대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글을 쓰러갔다. 젖먹던 힘까지 꺼내 일을 했는데, 늦은 시간을 만회할만큼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몸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혼자 필요한 가구를 조립하고 옮기고를 반복하다보니 근육통이 가실 날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나둘 해결하고 나니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 그렇게 시체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보았자 볼품없는 글 몇 줄 쓰는 게 고작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받는 진료에서, 정신과 선생님은 지난 몇 년 동안 본 것중에 제일 위태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항우울제며 수면제 같은 처방약을 한 달치 들고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 다시 책상앞에 앉았을 뿐이다. 내가 쓰는 게임 시나리오와 달리 내게는 이렇다할 선택지랄 것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는 내 신세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내게는 부모님도, 형제도, 친척도 없다. 어디 요양이라도 다녀오라는 주위의 말에, 나는 나 대신 나를 먹여살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보호자도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최악은 크게 다쳐서 응급실에 갔을 때였다. 접수원은 이렇다할 보호자가 없으면 접수가 어렵다고 했다. 누구든 의지할만한 친구나 지인의 연락처를 적어두라기에, 나는 최근연락목록 맨 위에 있던 출판사 편집자의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쯤되니 다친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처부위 지혈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는데, 나는 속으로 이런 이야기를 게임 시나리오에는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지금껏 써온 시나리오에서, 나는 미디어에서 으레 다뤄지는 우리 세대들의 아련한 유년시절과 헌신적인 부모님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나로선 그것이 게임의 타겟을 명확하게 할 뿐 아니라, 얼마쯤 공감대를 형성하고 게임에 이입하기 쉽게끔 만들어주리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정작 그걸 쓰는 나는 그런 이야기에 전혀 이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제와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 속 주인공에게 누구보다도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게임 속의 '나'에겐 늘 돌아갈 집이 있었고, 공부를 할지 말지 선택할 시간이 있었으며, 학원과 피시방을 원하는만큼 드나들 수 있었다. 적당히 사교성있는 성격에 크게 모나지 않은 인간관계를 갖추고 있다. 노력하면 금방 능력치가 올랐고,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나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은가? 나는 나 아닌 '일반적인 20대'들의 성장기를 있는대로 상상해가며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게임, 이 시나리오, 이 이야기의 결론이 뭔데?


 '환장하겠네…… 이제와서 이게 무슨 짓이지?' 보름이나 미뤄진 마감일을 앞두고, 나는 눈을 질끈감았다. '……지금 계속 쓰면, 내일까지 그럭저럭 진전이 있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몰라. 분량도 꽤 되고. 아무튼 일 안 하고 놀았다는 오해는 사지 않겠지. 재미는 없더라도,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점만큼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시나리오를 주고, 게임이 나오면'


 그 게임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는다, 이런 씨발…….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아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며 각자 처해있는 입장이란 것도 하늘과 땅 차이다. 미야모토는 스토리 작가가 아닌 디자이너이고, 수중에 있는 직원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기업인이자 위대한 혁신가이다. 반면 나는 마감에 쫓기고 있는 외주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것에 무슨 고상한 철학이 있지도 않다. 기왕 돈받고 하는 일 제대로 잘 해서,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텍스트 로그라이크 게임'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입장에서 이 글은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만약 사람들이 이따위 걸 읽고(혹은 플레이하고) 좋아한다면, 그 플레이어라는 이들을 혐오하지 않을 자신이 내게 있을까? 그정도 신념이나 용기를 상상해 본적이나 있나?



< 죄송한 표정이 아닌데 >



  '아니. 전혀 없지' 


 나는 여태껏 쓰고 있었던 문서를 통째로 삭제한 다음 휴지통을 비웠다. 그리고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다시 쓸 시나리오의 개요와 프롤로그를 써내려갔다. 


 그것은 제대로 인생을 조진 삼십대 남자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깊은 자괴감과 후회에 빠져들어있던 와중에, 알 수 없는 조화로 인해 막 스무살이 된 시절로 돌아간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지간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해보인다. 


 그렇게 수 차례, 혹은 수십차례 씩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자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시간을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세상에 쉬운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주위의 그 누구도 일방적이거나 맹목적인 도움을 건네지 않는다. 게임속의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동요하며 고뇌할 뿐아니라, 누가봐도 찌질한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려다 되려 낭패를 본다. 


 '이제 좀 나랑 비슷하네.' 나는 다시 쓴 프롤로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꽤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이 끌리는 걸 넘어 이젠 제법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전 시나리오에서 바뀐 점들을 하나둘 추려 문서로 정리했다. 스무살 이전의 유년시절은 전부 빼버렸고(어차피 성장배경은 다 다른 법이니까), 부모는 아예 등장하지 않도록 했다. 내 시나리오 속의 게임은 우리들 젊은 세대에게 묘한 아련함과 감동, 따뜻한 메시지를 불러 일으키려던 게임에서,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어느 청년이, 수없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의 게임으로 이제 막 탈바꿈했다.


 이정도면 하루에 열네시간도 거뜬히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버리는 데에는 들이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다행히도 나는 그 사실을 얼마전에 배울 수 있었다. 생각난김에 포토샵으로 간단한 목업mockup까지 만들어 보았다. 그렇게 해놓고 보자니 괜히 뿌듯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지. 이건 충분히 게임으로 만들 수 있겠어. 심지어 재밌을 지도 몰라.


 다음 날, 나는 작가님께 연락해 마감이 열흘정도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물론 이것은 돈이 아닌 신뢰의 문제다. 묵묵히 내가 결과물을 내놓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겐, 어쨌거나 실망스러운 얘기일수밖에 없다. 당연히 욕도 먹고 잔소리도 몇 마디 들었다. 그래도 내게는 묘한 확신이 있다. 매 순간 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일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대충 그렇게 할 것이라는. 아주 이상한 믿음이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