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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24. 2021

영원에 관하여, 쳇 베이커

8. Chet Baker

'I fall in love too easily', Chet Baker (Trumpet, Vocal)


1. 개인적인 소견으로, 쳇 베이커(Chesney Henry "Chet" Baker Jr., 1929~1988)는 요즈음 세대 가장 잘 알려진 재즈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이다. 이유야 뭐든 갖다붙일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딘을 연상케하는 젊은 시절의 외모, 우수에 가득차 있으면서도 낭만적인 보컬, 에단 호크가 열연한「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의 개봉과, 힙하고 개성적이면서도 있어보이는 음악을 향유하려는 젊은 층들의 욕구, 그리고 그런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 등등. (특히 위의 'I fall in love too easily'와 'Time After Time'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노출 알고리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마약남용으로 폭삭 늙고 난 뒤의 쳇(오른쪽). 왼쪽의 색소포니스트는 스탄 게츠다.


2. 그러나―눈치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을지 모르겠지만―나는 왠지 좀 배배꼬인 기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쳇 베이커라는 인물이나, 그를 '듣기좋은 쿨재즈의 상징'으로 여기는 풍조에 대해, 왜인지 빈정거리는 뉘앙스를 지울 수 없다. 오해는 하지 말았음 한다. 나도 쳇 베이커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의 앨범 전체를 수록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따로 있을 정도다. 



젊고 잘생긴 쳇은 매일 밤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술에 취한 여자와 마약상들이 그를 가만둘리 없었다.


3. 내가 아니꼬운 것은 사람들이 쳇 베이커라는 재즈 뮤지션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방식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쳇을 더러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 목소리'를 지닌…… 좀 희한한 컨셉의 '가수'쯤으로나 알기도 한다. 분명 그 불안불안한 보컬에는 왠지 모를 마력이 깃들어 있다. 그 목소리 덕택에 쳇 베이커의 디스코그래피는 한층 풍부한 색채를 띠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쳇 베이커는 원래 가수(보컬)가 아닌 트럼펫 주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보컬이 아닌 적은 있었어도 트럼페터가 아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Baby breeze', Chet baker (Trumpet).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럼펫 솔로이다.


4. 1954년, 쳇 베이커에게 부와 명성을 동시에 안겨다준 앨범 <Chet Baker Sings> 가 출시될 때만 해도, 쳇 베이커의 보컬은 음악적 도박 혹은 일탈에 가까운 시도였다. 정작 쳇 베이커는 자신을 트럼페터라고 생각했고, 왜 노래 같은 걸 불러야하는지도 몰랐다. 연인이었던 루스 영의 말을 빌리자면, '그 노래들은 쳇 베이커에게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든 걸 그저 음악으로만 받아들였고, 노랫말도 단지 음표에 불과했다'. 


'My funny Valentine', Chet Baker가 작곡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평생 밥줄이 되어준 곡이다.


5. 맨처음 그가 노래를 부르고 녹음하게 된 것은 레코드사와 프로듀서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사업적인 면으로 봤을 때, 쳇 베이커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스타성이 있었다. 흑인 문화였던 재즈, 그 재즈의 불모지였던 서부에서, 이 여리여리하고 곱상한 백인 청년을 연예인으로 만드는 일? 정말 간단했다. 앨범 대부분의 트랙은 'I fall in love too easily',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My funny Valentine' 같은 대중적 발라드로 채워졌다. 이 곡들은 그만이 가진 '불안하고' '양성적인' 보컬로 수십번 다시 녹음됐고, 그 결과물은 여성들의 모성애와 동성애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떠오르는 신성, 슈퍼루키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이 성공은 그의 인생에 있어 행운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했다.


베이커Baker는 '빵굽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양식 성에는 직업적인 요소가 들어가있는 경우가 많다. 


6. 베이커Baker라는 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쳇은 전형적인 미국의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설적 색소포니스트였던 찰리 파커Charlie Parker를 동경해 재즈에 발을 들였다. 실제로 쳇은 파커의 사이드맨으로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했는데―훗날에는 그의 자유분방한 연주 뿐 아니라 마약과 여성편력까지 닮고 만다―이름을 알린 방식은 완전히 달랐으며, 그 차이는 평생에 걸친 컴플렉스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최민식과 로버트 드 니로를 꿈꾸며 배우수업을 하던 친구가, 주위 사람들의 말에 떠밀려 잠깐 인터넷 방송을 했는데 그게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유명해진 셈이다. 이 청년은 원래 자신이 꿈꾸던 세계로돌아갈 수 없다. 그런 유명세를 잠깐 제쳐놓고서, 인기없는 독립영화 몇 편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일탈이 너무 많은 사랑을 받는 바람에. 그가 꿈꾸던 배우로서의 길은 완전히 막혀버리다시피 한다. 자신은 어딜 가도 반반한 인방 BJ, 또는 인기 유튜버일 뿐이며, 어디서도 진지한 배우로서 대우받을 수 없다. 꿈은 변치 않았어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너무 쉽게 알아버리고 말았다. 현실적인 성공과, 그런 성공이 거듭될수록 요원해지는 꿈…… 이 사이의 공백을 마약과 여자로 메우며 삶을 망가트린 인물. 내게 쳇 베이커는 그런 이미지이다.


유럽에 체류하며 연주하던 말년의 쳇 베이커. 


7. 쳇이 약을 얼마나 많이 빨았고, 얼마나 자주 감옥을 드나들었나? 얼마나 많은 아내와 사생아가 있었으며, 또 얼마나 무책임하고 몹쓸 행동을 했나? 심지어 쳇 베이커의 전기에는 그가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서, 자신을 숭배하다시피 하던 연인으로 하여금 정신과 의사와 관계를 맺도록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려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는 농담으로라도 말하기 어렵다. 난 그를 두둔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지않다. 쳇은 한 명의 인간으로 봤을 땐 무책임한 씨발놈이었지만, 좌우지간 죽을 때까지 트럼펫을 불긴 했다. 먹고 살기 위해, 마약을 사기위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떤 이유에서든 계속해서 음악을 하다 죽었다. 씨발놈은 씨발놈인데 적어도 음악에 진심이긴 했던 씨발놈이다. 씨발놈이기 때문에 좋은 음악이 아니라거나, 좋은 음악을 했기 때문에 씨발놈이 아니라는 서술은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1988년. 연주를 앞둔 날 밤, 쳇 베이커는 발코니 난간 너머로 몸을 던져 죽었다. (여전히 자살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다) 


8. 다시 말해두지만, 이 글에는 쳇 베이커라는 사람을 두둔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어떤 속셈도 없다. 난 그저 그가 받은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그리고――이 두 바늘귀를 훌륭하게 관통해나가는―찬양과 무관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놀라울 정도로 슬프고, 슬플 정도로 놀랍다. 몇몇 사람들이 태어나기에, 지구는 너무 파랗고 냉정한 행성일는지도 모르겠다.








'Born to Be Blue', Chet Baker (Trumpet, V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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