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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08. 2021

영원에 관하여, 마일스 데이비스

10. Miles Davis


<So what>, Miles Davis Quintet. 그야 명곡이지만, 일할때는 <Take Five> 같은 걸 듣기로 하자.


    1.  "근데 트럼펫 소리는 다 거기서 거기 같아. 하나같이 너무 시끄럽다니까." 라는 그녀의 말에 조금은 동의했었다. 물론 완전한 동의는 아니었는데, 그건 마일스 데이비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마일스만큼은, 그 어떤 트럼펫 연주가들 사이에서도 명백하게 구분해낼 자신이 있다. 결국에는 똑같은 악기 소리 아니냐고? 그럼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어떤 과학적 근거도, 합당한 논리도 없는데, 그냥 마일스는 구분이 된다. 딱히 다른 음을 내는 건 아닌데도. 그런 감각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실로 난감하다. 하기야 시끄러운 건 매한가지지만.


    2. 내게 있어 트럼펫이란 서양의 태평소 같은 이미지였다. 누가 들어도 나팔소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부는 나팔소리인지는 분간이 어렵다. 떠들썩하고, 붕 떠 있고, 정신없이 신나는 그런 악기. 귀를 찔러대는 소리. 높고 가파른 음역대와 압도적인 존재감. 이런 건 우수에 잠겨있거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을 때는 방해가 된다. 요컨대 트럼펫은 배경음악이 되길 거부하는 악기다. 제대로 각잡고 감상하든가, 아니면 저리 꺼져서 좆같은 엘리베이터 뮤직이나 듣든가, 라는 식이다.


    3. 나는 기본적으로 늘 재즈를 듣고 있다.  집안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거의 하루종일 재즈가 재생되고 있고, 글을 쓸 때에도 그때그때 내키는 장르의 재즈를 듣는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연히 좋아한다. 다큐멘터리고 평전이고 한국어로 번역된 건 죄다 찾아 보았을 정도다. <Kind of Blue>가 인류역사에 남을 명반이라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때 흘러나오는 <So what>만큼 나쁜 트랙도 없다는 것이 나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럭저럭 글을 끼적이다가도, 난데없이 칼춤을 추는 트럼펫 소리가 이어지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 씨바음악 존나 시끄럽네 일을 못하겠잖아 미친" 하고 투덜거리다 음악을 바꾸려고 보면, 여지없이 <So what>이라는 곡명이 등장한다. 재즈 그 자체. 마일스 데이비스의 대표곡. 각성한 존 콜트레인과 체임버스의 베이스라인... 그야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랜덤 재생 목록에서 지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곡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재즈를 좋아한다면서 <So what>만 빼고 듣는다? 그건 명백한 반역이다. 재즈 역사에 대한 반역.


 ……때문에 나는 <So what>이 흘러나올 때마다 간청하듯 말한다. "제발, 마일스. 저 일하는 중이라고요. 마감이 이틀이나 밀렸다니까요."

 그러나 한결같은 마일스의 대답.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다. 나팔 소리는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찰리 파커의 따까리로 뛰던 시절 마일스 데이비스. 이때 하도 굴렀던 나머지 무대매너가 비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4.  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는 트럼펫 연주의 최고 달인이다. 스무살 때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사이드맨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경험과 기술을 갈고 닦았다. 줄리어드 음대 출신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기본기 위에 찰리 파커의 자유분방한 기교가 더해지면서……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는 참으로 이른 나이에 완전체가 된다. 마일스에게 유독 비판적이었던 평론가들조차도 연주실력만큼은 당대 최고의 트럼페터였던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견주었다. 상상이 되는가? 이십대 중후반의 나이에 이미 자기 분야의 최고 실력자가 되버린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보다 더 일찍 완전체가 된 생물체라고는 <드래곤볼>의 셀(이쪽은 여섯살 때 완전체가 되었다) 정도밖에 없다.


    5. 그런데 어떤 분야의 최고, 최강이 된다는 것은, 정작 이뤄지고나면 따분하게 여겨진다. 우주 최강이라는 설정의  <원펀맨> 주인공도 그렇잖은가.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한들 맞수가 없으면 의욕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주위사람들의 열성적인 관심과 찬양에도 무감각해지고…… 경쟁자라곤 과거의 나 자신밖에 없는, 권태로 가득찬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이런 삶은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민해야할 것에 가깝다. 권태란―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직접적인 고통만큼이나 불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Walkin'>, 1966년 라이브. 마흔에 접어든 나이에도 엄청난 수준의 '워킹'을 뽐내는 마일스. 



    6. 그래서일까, 한 번 정점을 찍은 예술가들은 크게 두 가지 말로를 겪는다. 삶에서의 공허함이며 권태로움을 견디다 못해 쾌락에 빠지는 경우가 첫 번째. 전설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지만, 마흔이 안 된 나이에 술과 마약, 섹스에 빠져 죽은 찰리 파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경우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거나 나름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다면 사후에 칭송받을 여지가 있으나,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고 추하게 늙어 죽는다. 사람들은 그런 예술가들을 쉽게 잊는다. 그 사람, 한 때는 잘 나갔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 죽었다고? 저런.


    7. 그 케이스가 되기 싫어 발버둥치는, 어떻게든 새로운 과제를 찾아 자기혁신을 멈추지 않는 족속들이 두 번째. 마일스는 정확히 그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가 동경해 따라다녔던 천재 중의 천재, 그 위대한 재능을 가진 찰리 파커가 그토록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마일스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이자 경쟁자를 찾았다. 마일스는 트럼펫이라는 악기와 싸웠고, 재즈라는 장르와 경쟁했으며, 음악이라는 개념 자체에 도전했다. 일찌감치 회화에 통달한 피카소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Blue in Green>, 재즈 역사 최고의 명반, <Kind of Blue> 에 수록된 곡이다. 피아노는 빌 에반스.


    8. 나는 앞선 문단에서, 트럼펫이 '배경음악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악기'라고 썼다. 그렇다고 마일스가 얌전히 배경음악이 되는 길을 선택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일스의 카리스마는 날이 갈수록 강력해졌으며, 연주에는 점점 더 깊은 자아가 담겼다. 단지 그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기교'를 발휘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 생각에 '실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안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일이다. 가령 마티스나 피카소의 그림을 두고 "에이,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네"하며 비아냥대기는 쉽다. 그러나 그만한 재능과 실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밖에 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르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레벨 99의 압도적 장비가 있는데도 맨몸으로 싸우는 셈이니까. 하여간 마일스의 용기는 요란한 트럼펫에 소음기를 달게 했고, 자유분방한 연주대신 제한된 몇 가지의 음을 입체적으로 내는데 집중하게끔 했다. 마일스는 최고의 트럼페터, 위대한 재즈 뮤지션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마일스가 남긴 음악과 삶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나 역시도 그렇다.  루이 암스트롱도, 디지 길레스피도, 클리퍼드 브라운도 리모건도 좋지만, 기왕 트럼펫을 분다면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되고 싶다.


    9. 예술, 창작에 절대적인 기준을 부여하려는 시도들은 계속해서 있어왔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지 모른다. 나는 창작자와 대중, 그리고 평론가 집단이 겪는 갈등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 여기지만, 그런 갈등의 기준이 그저 기술적인 완성도나 직관적인 요소에 국한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러지말란 법은 없어도. 아마도 나는 슬플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 어떤 예술의 위대함이라는 것이, 그저 유튜브 조회수와 팔로워 숫자로 판단될 뿐이라면. 헤밍웨이의 위대함이 노벨상 수상과 여섯개의 단어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면.


    10. 나는 "트럼펫 소리는 모두 똑같다"는 말에 저항할 수 없다. 음악은 소리의 진동, 마일스의 '도' 역시 여타 트럼펫의 '도'와 똑같은 파장이라는 말에, 이렇다할 근거를 들며 도연히 반박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껏해야 그녀에게 헤드셋을 씌워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한 번 들어봐. 누군가 나팔로 음표를 도려내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야……."




  <It never entered my mind>,  Miles Davis Quin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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