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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Dec 22. 2021

습작

백여든일곱번째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척추사진을 지켜보던 의사선생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머리여서 쓸어 넘길 머리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그 동작은 마른세수 비스무리한 것이 되었다. 


 난 왠지 그 행동에 위협을 느껴 말했다.


 “역시 뭔가 잘못된 거죠? 척추측만증이라든가, 디스크라든가…… 아니면 척추에 난 염증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나머지 더는 앉아있는 자세를 취할 수 없다든가…… 저는 문과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겠죠?”


 “에, 척추측……?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설마, 아, 암…… 그런 건가요? 그러고 보니 척추에도 암 같은 게 생길 수 있는 거죠? 요즘 암세포는 전립선에도 자라고 불알에도 자라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조금 진정하세요.”


 의사는 의사답지 않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도 불안해져서 한층 더 격앙된 투로 이야기했다. 


 “으으, 저는 열심히 일한 잘못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런 나이에 벌써 허리가 불타는 듯이 아프다니. 일년 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는데. 회사놈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다고요. 저한테 계속, 계속해서 일을 시켰어요. 제가 제 동기 중에서 일을 제일 잘 한다면서. ‘자네가 우리 회사의 허리 같은 존재야. 정말 든든하네.’ 같은 소리를 하면서 저를 부추겼죠…… 그래서 저는 이 귀한 청춘을 그 좁아터진 의자에 앉아서 제 허리를 혹사시킨 거에요. 겨우 월 이백밖에 안되는 박봉을 받으면서!! 아직 결혼은커녕 여자친구도 한 번 못 사귀어봤는데…… 벌써부터 허리가 아작나다니. 어떡하죠, 어떡하죠? 선생님!”


 “그, 글쎄요. 허리가 잘못됐다고 여자친구를 못 만나는 건 아니죠……. 뭔가 문제가 다른 데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만큼 적극적인 분을 만나는 방법도 있을 테고…….”


 의사는 이런 유의 격려를 건네는 데 서투른 모양이었다. 여하튼 감정이 복받친 나는 진료실에서 펑펑 울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저, 환자분.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으세요.”


 “죄송, 죄송해, 여…… 도저히 진정이……. 허리가…… 허리가……. 으으흐으흐흑.”


 “아니. 허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괜찮다니까요.” 


 “에, 으흐…… 허리에는…… 네?” 


 “일단 사진 상으로 봤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고요. MRI 같은 걸 찍어보면 또 모르겠지만.” 의사는 금테 안경을 재차 올려 썼다. 한 쌍의 안경알 그리고 대머리의 두피에 형광등 불빛이 감응해 눈이 다소 부셨다. “사실 엑스레이에서도 아무 것도 안 보였어서…… 그냥 미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환자님이 하도 아프다고 하셔서 CT촬영을 제안드린 거였거든요. 근데 이게, 솔직히 저도 뭐 전문의가 된지 오 년 밖에 안 돼서 이런 말 드리기가 참 희한하지만. 환자분은 제가 진료한 환자 중에서도 가장 예쁜 척추를 갖고 계십니다.”


 “예, 에, 으흐…… 네?? 예쁘다는 게……?”


 아주 잠깐 동안, 나는 의사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바로 진료실을 뛰쳐나가서 비상계단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의사는―정말 놀랍게도―예쁜 부인과 세 살난 딸이 있는 멀쩡한 가장이었다. 책상 위에 단란히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더 의외였던 것은 그 다음에 의사가 꺼낸 말이었다.


 “진짜 놀랐습니다. 세계에 ‘아름다운 척추 경진대회’ 같은 게 있으면 최소 금상은 받을 법한 셰이프Shape에요. 사진을 몇 번이나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특히 요즘같이 책상에 앉아서 일을 보시는 분이 많은 시대에는 보기 드물만큼 정상적인 모양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환자님 척추는 뽑아다가 실험실 모형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에요.”


 “결국 척추를 뽑아야하는 건가요?”


 “아,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의사가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전 어떻게 하면 되죠? 제가 느끼는 통증은 가짜인 건가요? 역시 이런데 말고 건너길에 있는 ‘참편한 연세 통증의학과’로 갔어야 했던 걸까요?”


 “글쎄요. 그건 환자님 자유이지만. 거기가도 똑같은 얘기 할거에요. 환자님의 척추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아픈 건가요?”


 “뭐 스트레스 성일 수도 있고…….”


 나왔다, 스트레스. 만병의 근원. ‘의사들이 할 말 없으면 꺼내는 단어’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그 어휘. 


 “으흐…… 그런 거 말고 진짜…… 진실을 이야기 해주세요. 뭐가 됐든 받아들일 자신이 있으니까…….”


 “그럼. 제 말을 들으세요. 환자님.”


 “네.”


 “여기서 수납을 하고 문을 나가시면 엘리베이터가 보일거에요.”


 “네. 올라올 때도 타고 올라왔어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네?”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으로 두 층을 올라가세요.” 의사는 친절하게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럼 거기에 헬스장이 있어요. 이 동네에서는 꽤 오래된 헬스장인데. 시설도 괜찮고 층도 넓게 써서 운동하기가 아주 쾌적해요. 거기 등록을 하세요. 그리고 허리 위주로 운동을 하시면 될 겁니다. 데드리프트나 스쿼트가 좋은데. 자세를 모르겠으면 유튜브에 검색하거나, 돈 여유가 있으면 PT를 하는 게 좋겠지만 이쪽은 좀 비싸서요. 그냥 스미스머신 근처에서서, 중량을 존나 올리고 괴성을 지르면서 바벨을 드는 시늉을 해보세요. 그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트레이너가 달려와서 정확한 자세가 무엇인지 공짜로 가르쳐줄 겁니다.”


 “운동 부족이라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아무 것도 없어요. 운동을 안 하셔서 그렇습니다.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을 오르세요. 차를 타지 말고 걸어 다니세요.”


 “그래도 너무 아파서 생활이 안 되면요?”


 “음. 진통제나 근육이완제를 드시거나…… 근데 이런 건 처방전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결론적으로는 뼈나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다. 이건 어떤 병원에 가도 똑같이 진단할 거에요.”


 “아, 네…… 그럼 집에 돌아가면 되는 건가요?” 


 “예. 뭐, 그렇습니다. 조심히 ‘걸어서’ 돌아가세요.”


 “……네.”


 “되도록이면 엘리베이터 타지 마시고요.”


 나는 심술이 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삼 년 만에 병가라는 것을 내고, 병원을 세 군데나 찾아갔는데 다들 하는 말이 ‘척추가 아름답다’ ‘허리가 참 예쁘다’ ‘모형으로 삼고싶다’ 같은 것들뿐이고, 제대로된 처방은 해주지 않는다. 


 ‘결국, 나의 아픔 같은 건 아무도 이해해줄 생각이 없는 거야…….’


 실의에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 없이 늘 지나치던 건물을 올려다봤더니 3층에 한의원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 계단을 걸어 올라간 나는 진료대기실을 가득 채운 그윽한 한약 냄새에 한 번, 내가 허리통증으로 인해 겪었을 고통과 설움에 오열까지 하는 한의사의 진심에 두 번, 도수치료와 한 시간 동안의 온찜질로 한결 나아진 허리 상태에 세 번 감동하게 되었다. 약으로 받아온 녹용이 아직은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지만.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라고 했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열은 받는군. 내 잘못도 아닌 걸 가지고 왜 이런 고생을 해야하는 거야.’


 나는 보약을 먹고 휴대용 온열팩을 허리에 붙인 뒤에 드러누웠다. 어쨌든 이 화의 근원을 없애지 않으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본질적인 문제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부장을 죽여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꼭 죽이고 말겠어…….     




「이열치열」

202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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