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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21. 2019

습작

여덟번째


가로등 불빛은 낡은 베란다 창문을 통과해 십자 모양이 됐다. 나는 교과서나 도서관의 책 같은 곳에서 봤던 핼리혜성이나 알파센타우리 같은 별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옆에 누운 엄마는 아주 피곤한 목소리로,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언젠가 갈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흐린 아침이었다. 엄마는 아직 자고 있었고,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학교로 향했다.


그날 저녁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다. 엄마는 밤늦게 돌아와서, 불 꺼진 방과 이불에 파묻혀 잠든척하는 내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구부렁거리는 목소리로, 세상에 별이 무어야, 그냥 저건 우리 인생에 쳐진 꼽표야, 우리가 하는 일에는 모두 꼽표가 쳐질 거야, 너는 알는지 모르겠다, 서는 척하다 고꾸라지는 거야, 맞는 줄 착각하고 살다가 틀린 걸 깨닫는 거야……


그날 밤으로부터 나는 별 대신 매일 거대한 꼽표를 보며 잠들었다. 그 모양이 지겨워 멀리 떠나온 서울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단칸방 창문에는 아직도 그 꼽표가 어려있고, 원래 틀려먹은 삶은 이제 맞으려는 안간힘도 놓아 휘청거렸다. 별 헤아리는 마음도 다 잊은 채 내내 휘청거렸다. 주황색 가로등은 새벽 지나 먼 동이 다 터올 때까지 켜져 있었다.


<주황글씨>, 20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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