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an 30. 2019

습작

아홉번째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하겠네요”
 

택시기사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긴장한 통에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차창밖으로 바다가 바쁘게 교차했다. 계기판에 표시된 시속은 백오십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내비게이션 화면의 도착 예정시간은 열 시 정각으로 당겨져 있었다. 탑승수속 마감시간까지는 간신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기사님 덕분이에요. 하마터면 첫 해외여행부터…” 여자가 말했다.


“뭘요, 택시 몰다보면 이런 경우가 꽤 있어요. 시험장에 간다느니, 면접에 늦게 생겼다느니, 손님들이 사색이 다 돼가지고 부탁을 그렇게 하시는데. 기사 된 입장에서 빨리 안 갈 수가 있겠어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대로 공항버스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분명히 늦었을 거에요” 남자가 대답했다.


“하하, 괜찮다니까요. 여행이나 즐겁게 잘 다녀오세요. 어디 간다고 하셨었죠?”


“프랑스에 가요. 일단은”


“아하, 프랑스… 좋은 곳 가시네요. 저는 뭐, 이 나이 먹도록 물 건너로는 가본 적이 없어요. 비행기도 안 타봤고. 아들놈이 제주도로 효도여행 보내준다고 하는 것도 안 갔거든요…”


“왜 안 가셨어요, 제주도 엄청 좋은데” 여자가 물었다. 관심이 있다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말투에는 최대한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제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한 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아이, 이 나이에 여행은 무슨 여행이에요. 비행기는 안 타봤고 배는 몇 번 타봤는데, 저는 그것도 속이 막 울렁거려가지고, 못 타겠더라구요? 그런데 그 날개 달린 고철덩어리가 어떻게 하늘을 나나, 거기에 어떻게 내 몸을 싣고 저렇게 날아가나 싶고… 그런 거 해줄 돈으로 손주딸 옷이나 좋은 거 해 입히라 그랬어요. 고것도 조막만 했을 때가 어제 같은데, 올해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간다지 뭡니까. 회사 나와서 개인택시 하고서부턴 유치원까지 몇 번 태워다 주고 그랬는데. 아, 자녀 계획은 없어요? 결혼을 하실 건지부터 여쭤봐야 하나…”


택시기사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노골적으로 찡그리고 있었다. 


“아, 결혼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돈도 없고…” 남자가 황급히 대응했다. 진땀에 젖은 목소리였다.
 

“결혼을 뭘, 돈 보고 하나요? 저도 결혼한 지 벌써 사십 년이 다 돼가는데… 아니다, 사십일  년이었나? 아무튼 그때 결혼할 때도 돈 한 푼 없이 결혼했어요. 지금도 뭐 마찬가지 지지만은, 처가에서 얼마나 날 싫어했던지… 그래도 여태껏 운전대 잡으면서 자식 놈 장가도 보내고, 손주도 보고, 어떻게든 되더라구요. 그냥 서로 좋으면 결혼하는 거지 뭘. 안 그래요? 하하하…”


“네, 에… 생각은 다들 다른 거니까요…”


남자는 여자 쪽을 향해 쳐다보면서,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왼손으로 턱을 괴곤 차창 바깥쪽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켰다. 현 위치를 표시해주는 빨간 점은 인천대교를 거의 다 지나 영종도에 진입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즈음 택시도 섬 내부와 여객터미널로 향하는 교차로로 접어들었다. 십오 분이 넘게 울리던 과속 경고음이 마침내 멎었다. 계기판의 바늘은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 떨어지더니, 삼십, 이십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아이보리색의 교량 너머로는 서해가 뻗어 있었는데, 어느덧 병 모가지에 몰린 물처럼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의 행렬로 시야가 가로막혔다. 승용차들은 이십 킬로 넘게 탁 트여있던 교량 끝머리에 다다라 속도를 늦췄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택시기사가 몸을 싣고 있었던 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비게이션 좌측 하단에 표시된 숫자가 영으로 수렴하던 그 순간이었다. 택시 앞 좌석 쪽에서 어, 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차체가 작게 충격을 입었고, 급브레이크와 함께 성인 세 명의 몸이 살짝 들렸다. 빠앙- 하는 크낙션 소리가 이어지는 시간에 따라붙었다.
 

“아이고! 이게 뭐야?” 


택시기사가 단말마처럼 소리쳤다. 그리고, 자, 잠시만 기다려봐요, 금방 올게요, 하곤 택시 앞쪽 문을 열어젖히고 나갔다. 택시 전면 유리의 바깥쪽으로 말쑥한 정장 차림의 기사가 걸어 나가는 모습, 그 앞으로 납작하고 날카로운 차체의 스포츠카의 뒷면이 살짝 찌그러진 채 안광을 번쩍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택시 안에서 오 분쯤 기다리다 함께 나왔다. 그동안 택시 뒤쪽으로 쇄도하던 차량들은 급히 차선을 바꾸곤 공항 쪽으로 향했는데, 그중 몇 대는 경적을 몇 번씩 울리고 지나갔다. 


인천대교는 이제 막 중천에 오르려는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그동안 공항으로 향하던 길목이 뚫렸는지, 차들은 이제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교차로를 뚫고 나갔다. 하얗고 빨간 차량 표면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빛을 반사해댔다. 오직 택시와 접촉사고가 벌어진 스포츠카만이 검은 무광 색 도료로 덮여 쏟아지는 빛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래서 저 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당장 드릴 수 있는 말은 다 드렸어요, 저는”
 

스포츠카의 운전석 방향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왼편으로 깔끔한 검은색 티셔츠와 면바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굽의 구두를 신은 장신의 남자 한 명이 팔짱을 끼고 선채 말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 보세요. 제가 일부러 부딪힌 것도 아니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려다가……”
 

“일부러 사고를 내는 사람은 없죠, 기사님, 그냥 보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가만히 있는데 부딪히셨잖아요? 제 과실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이건 좀 곤란해요”


옆머리를 깔끔하게 치고 나머지 머리는 정갈하게 뒤로 넘긴 차주는 아주 신사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키가 백육십 남짓한 노령의 택시기사는 그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구부렁거리면서, 있는 힘껏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가 하면 마주 서있는 남자를 가해자처럼 보이도록 했다. 여자의 손을 잡고 택시에서 내린 남자는 스포츠가 후면에 박힌 로고를 바라봤다. 방패모양의 문양 안에서 소인지 말인지 모를 네발짐승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무척 고가의 자동차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아니 글쎄… 사고를 낸 것은 내가, 아니, 제가 미안해요. 응? 그런데 저 택시에 손님들… 아! 저기 나오셨네. 저분들은 지금 공항에 가야 된다고요. 빨리 데려다 드리고 이리로 돌아올 테니까……”
 

“아, 몇 번을 말씀드려요? 보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구요. 사고를 내셨으면 거기에 책임을 지셔야 할 것 아닙니까? 돌아오실지 안 돌아오실지 제가 어떻게 알고 보내드려요? 번호도 따로 없으시다면서요”
 

“아이, 그, 여기 봐요. 내가 십오 년 동안 무사고야…… 내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오. 좀 보내주실 수 없어요? 내 이렇게 부탁해요……”


“안 된다니까요? 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요? 저도 머리가 복잡하다구요. 여기 부품은 국내에 없어서 해외에 새로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시간이 몇 주가 걸려요. 비용은 둘 째치고 그동안 저는 차가 뭉개진 채로 있어야한다구요. 제가 작정하고 따지면 기사님은 뼈도 못 추린다구요…… 저는 최대한 신사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어요. 엄청 짜증이 나는데도. 아무튼, 제 인내심을 테스트하지 마시고, 그냥 보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시겠어요? 비용 문제야 택시 회사 소속이시면 거기서 뭘 얘기해보시든가요. 제가 피해자인데 왜 사정을 봐드려야 합니까. 기사님도 나이를 드실 만큼 드셨는데, 본인이 한 일에 책임 정도는 지실 줄 알아야죠”


차주는 조곤조곤하면서도 힘 있는 말투로, 논리 정연하게 의사를 표명했다. 반면 택시기사는 중언부언, 말의 앞뒤가 뒤엉킨 채 생떼를 쓰고 있는 판이었다. 인천대교 위로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때문에 그 가운데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은 택시기사 한 명뿐이었다. 남자가 다리 너머 영종도, 더 너머에 뚜껑처럼 비쳐 보이는 인천공항의 첫 번째 여객터미널과, 그 위로 동경이며 상해나 엘에이 그리고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순서대로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여자는 남자의 손을 놓곤 택시기사와 차주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기요, 말하시는 중에 죄송한데요, 저희가 이십 분 뒤에 탑승수속이 마감이라서요……”
 

“아, 그러세요. 것참 안됐네요. 기사분이 사고만 안 내셨어도 아슬아슬하게 타셨을 텐데”


차주는 여자의 말에 표독스럽게 대꾸했다. 여자는 몇 초동안 표정이 굳었다. 그와 별개로, 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가누느라 손은 멈추지 않았다.
 

“저희가 해외여행이 처음이라서요……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보내주실 수는 없을까요?” 여자가 감정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며 가까스로 말했다. 차주는 말이 끝나자마자 허, 하고 숨을 탁 뱉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딴 쪽으로 돌렸다. 같잖다는 제스처였다. 여자는 말없이 안색만 붉으락푸르락했다.
 

“안 돼요. 안 된다니까요. 기사님은 여기서 저랑 보험사 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실 거에요. 비행기 삯이 한두 푼은 아니시겠지만, 제 차 수리 값도 만만찮아서요”


“보험사가 오는 데는 얼마나 걸리는데요?”
 

“글쎄요, 여기가 교통이 썩 좋지는 않아서…… 최소한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요?”
 

“……뭐라구요? 삼십 분, 아, 한 시간 동안 여기 서서 계속 이러고 있으라구요?”
 

“아뇨, 기사님만 여기 계시면 돼요. 여러분은 가셔도 되는데…… 위치가 위치라 택시도 뭣도 안 잡히겠네요. 공항까지 걸어갈 거리도 아니고요”
 

차주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삽시간에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됐다. 그러나 미처 차주와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대신 머리가 희뿌연 택시기사만 말없이 쏘아보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도로 위에 주저앉았다. 차주는 쯧, 하고 들릴 듯 말 듯 하게 혀를 차더니 운전석으로 도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첫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여자의 옷차림은 프랑스행 비행기의 이륙시간이 다가올수록 비참해져 갔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서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여자는 택시 옆에 서서, 연신 택시 호출 앱을 켜놓고 있었던 남자에게 윽박질렀다. 그리고 가만히 서있을 수 없다는 듯이 갓길 끝까지 걸어가선, 지나가는 차들 앞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을 펴서 흔들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들 가운데 멈춰서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고, 남자의 휴대폰 화면에는 호출 가능한 택시가 없다는 말만 끝없이 되풀이됐다. 보험사 차량이 도착할 즈음 해는 중천에 올랐다. 사고 시간으로부터 사십 분 뒤에 도착한 보험사 직원은 십 분 남짓한 시간에 서류작성을 끝냈고, 택시 옆에 서있던 일행에게 ‘여기서는 따로 나갈 방도가 없을 테니 버스정류장까진 태워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내내 씩씩대다가 이젠 펑펑 울고 있는 여자를 이끌고 보험사 차량에 몸을 실었다. 영종도를 등진 채 육지와 가까워가는 차는 유독 느렸고, 창밖으로는 남자 그리고 여자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야 했을 프랑스행 비행기 같은 것들이 몇 대나 날아오르고 있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이었다. 


 

<공리주의>, 2019. 1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