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an 11. 2019

습작

일곱 번째

 그해 동아리의 홈커밍 데이는 상당히 큰 규모의 행사였다. 회장을 위시한 금학기 임원진들은 전화, 이메일, 소셜미디어 메시지까지 동원해가며 끈질기게 연락을 취했고, 그 결과 나는 스무 학번 넘게 차이가 나는 선배와 마주 앉아 멘토링이니 뭐니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는 사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였다. 짧게 친 머리가 듬성듬성 하얗게 샜지만 동그란 뿔테 안경을 코에 걸치는가 하면 검은색 폴라티와 청바지를 입었고, 발에는 진갈색 워커를 신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무척 비싸 보였다. 전체적으로 패셔너블한 중년 남성의 인상으로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을 먼저 꺼내놓지 않았다면 독립영화감독으로나 알아봤을 것이다.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지큐나 아레나,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를 어떤 사람이 읽겠는가 늘 의문이 있었는데, 딱 이런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아무튼 이렇게, 한 때 즐겁게 지냈던 동아리 후배에게 연락이 와서…… 아주 좋네요. 덕분에 모교 구경도 하고요”


 선배가 말했다. 무척 부드러운 말투였다. 다만 조금 과한 면도 없잖아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인 느낌도 들었다.


“네. 저희도 이렇게, 이미 사회에서 잘 자리 잡은 선배님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즈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주 그럴듯하게 할 수 있게 됐다. 누구든지 대학 졸업을 일이 년 앞둔 사람이라면 으레 얻게 되는 재주였다.


“흠, 그래, 그럼 학생……  아, 이름이 뭐라고 했죠? 이거 미안하네요. 제가 이름을 유난히 기억을 못 해서……  가끔은 우리 와이프 이름도 잊어버리곤 한다니까, 하하”


“아, 저는 민아라고 합니다. 성은 박 씨고요…… “


“아아 그래, 민아, 민아였죠. 내 정신이 참, 저녁이 되니까 기력이 달려가지고”


“뭘요, 몇 번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워낙 흔한 이름이기도 하고요”


그전까지 나는 선배와의 대화에서 내 이름을 세 번 소개했다. 그때는 네 번째였다. 


“그래, 우리 민아 양은 꿈이 뭔가요?”


“꿈이요? 어떤…… “ 내가 되물었다.


“아이고 이런, 꿈이 꿈이죠. 무슨 꿈이겠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거 말이에요. 꿈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니까요”


“아아……  꿈…… “


“요즘 젊은 세대, 아니, 젊은 분들은 꿈이라는 단어에 스트레스가 많나 봐요. 듣자마자 팍 얼어버리잖아요. 저는 ‘꿈이 뭐에요’ 하면, 자다가도 대답을 할 수 있었는데…… ”


 선배가 말 끝을 흐리면서 아주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난 그저, 꿈이라는 단어가 몹시 모호해서 고민을 했을 뿐이다. 꿈에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가? 어젯밤 꿨던 꿈일 수도 있고, 당장 꿈처럼 아른거리는 새 휴대폰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인생을 통틀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일 수도 있고,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꿈이 있는가 하면, 아버지가 허락할만한 꿈 그리고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한 꿈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꼭 싸우자는 듯한 말이 될 것 같았다.


“저, 저는…… “


“아니, 아니, 정말 부담 없이 말해봐요. 이루고 싶은 꿈 말이에요. 주저하지 말고…… “


“개인적으로는 창업을 하고 싶지만요…… “


“오호라! 창업! 창업 좋죠, 어떤 아이템인데요?”


“어……  아이템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이디어 단계인데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


“괜찮아, 괜찮아요. 아직 학생인데 아이디어 이상의 뭔가 있으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제가 그냥 들어줄게요. 싫은 소리 안 할 테니까, 얼른”


“음……  그런데 이게 정말 돈이 되기 힘든 일이라…… “


“아니, 지금 돈이 무슨 문제에요? 돈만 좇으면서 하는 사업이 망하기 딱 좋죠. 제가 봤을 땐 돈보다는 비전이에요.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고”


“아, 네……  그렇군요. 그럼. 잠깐 말씀드리자면…… “


나는 삼 분 정도 이야기했다. 선배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 팔짱을 끼고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려 턱을 매만지는 자세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선배는 혼자 일이 선 상태로 날 내려다보더니, 별안간 내 양쪽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 민아, 민아 양 맞죠? 민아 양. 저는 사업은 잘 모르지만, 주위에 창업을 한 친구들이 많아서 대강적인 것들은 알고 있어요. 물론 민아 양이 방금 말한 것이 시장에서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민아 양은 아직 스물넷이잖아요? 정말 꽃다운 나이, 아, 이거 꽃이라고 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겠군. 파릇파릇한 나이로 합시다. 하여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상태라구요. 저는 부양할 와이프도, 딸도 있어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만……  물론 돈은 많이 줘요. 그건 좋죠. 그렇지만 제가 민아 양의 나이였다면,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을 했을 거에요. 솔직히 대학 졸업장, 그거 다 쓸모없어요. 대학에서 배운 걸 써먹은 경험도 없고요. 정말 쓸모없습니다. 정말로. 정말 민아 양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세요. 돈이 안 되면 뭐 어때요?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올 텐데. 어떻게든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절대 후회 없을 거에요”


“아……  네…… “ 나는 쥐어짜 내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다른 대답을 바라는 듯한 말투도 아니었다.


“젊음의 특권을 누려야죠. 저는 학점에 목매고, 그 젊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이나 취준에 시간을 허비하는 청년들이 아주 부러우면서도 속이 타요. 왜 젊음을 저렇게 쓸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만약 저한테 십 년만 떼준다면, 저는 지금 갖고 있는 돈을 다 내놔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죠.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아요. 사회는 도전에 더 관대한 사회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열정 페이라는 말 많이 쓰지만, 저는 정말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돼도 창업하겠어요. 매일매일, 주말도 저녁도 없이 하루 종일 내가 원하는 일에만 몰두하겠죠. 그럼 안 될 일이 뭐가 있겠어요? …… 예산 문제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 있잖아요? 은행. 요즘 창업 관련해서 엄청나게 돈을 쏟고 있어요. 과거와는 다르게, 패기와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회를 준단 말이에요. 아, 저는 정말 부러워요.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 정말로 부러워요. 진심으로 부러워요.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매일 한 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꼭, 꼭 해야 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거듭 말하지만. 꼭 해요. 알았죠?”


선배는 말을 마치고, 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서야 도로 자리에 앉았다.


“제가 말이 많았죠? 그렇지만 저는 진심이에요. 민아 양의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불타는, 이글거리면서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니까, 저도 잃어버렸던 열정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한 겁니다. 이런 건 꼰대 짓은 아니죠? 어디 가서 제가 꼰대처럼 굴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하…… ”


“아, 아니에요. 정말 좋은 말씀 해주셨고…… “


“그래요. 그런데 어디……  아, 아! 이런,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었네요. 이거 참, 오늘 저녁에 행사가 있다고 말을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빨리 들어오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거거든요. 민아 양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만 가봐야 되겠어요. 제 코트가 거기 걸려있는데, 좀 갖다 주시겠어요?”


 선배는 내 뒤쪽 테이블 너머 벽면에 붙은 옷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옷걸이 쪽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도저히 손이 닿지 않을 거리라는 걸 깨닫고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를 걷었다. 코트를 건네려 하자, 선배는 이미 일어나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던 금속제 시계와 가죽 지갑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선배의 정리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코트를 들고 있었다. 선배는 정리가 끝나자마자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잠시만요, 하고는 가죽으로 된 스마트폰 케이스를 열어젖히곤 와이프인지 누구인지에게 열심히 문자를 했다. 문자는 이 분쯤 이어졌고, 선배는 어우, 미안합니다, 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내 손에 들린 코트를 집어 걸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미나실을 빠져나갔다.


 이때의 일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결국 학기가 끝나자마자 휴학 신청서를 접수하고 창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나는 한 달에 걸쳐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벤처캐피탈이며 투자기관에 방문했으나 끝내 외면당했으며, 정부사업에도 철저한 사전조사와 서류 검토를 거쳐 지원했지만 낙제했다. 마지막으로 은행을 찾아가 창업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정기적인 수입이나 경력이 없고, 담보 잡을 부동산도 없으며, 학자금 대출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다. 


 별 수 없이 나는 무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삼 년이라는 시간 끝에 처참히 실패했다. 내게 남은 건 친구와 가족에게 진 크고 작은 빚, 지나가버린 시간, 사람과 돈에 대해 갖게 된 깊은 환멸이었다. 일 년이 더 지났을 즈음 나는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에는 내가 기획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서비스가 유명 투자사로부터 수십 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에는 피투자사 대표의 인터뷰가 짤막하게 실려있었다. 사내벤처로 시작한 이 회사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결국 후회하고 말았다.


<욜로>, 2019. 1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