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an 23. 2022

영원에 관하여, 도스토옙스키

14. Fyodor Dostoevsky



잠시만요. 자세 좀 고쳐앉, 벌써 다 했냐?



1. 도스토옙스키는 누구인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에겐 토스트와 혼동될만큼 생소한 이름이기도 한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스토옙스키를 모르는 게 말이 돼?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뭐야 씨발 난 몰랐는데’ 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하다시피 써놓을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의 무지함에 소름이 돋아서, 부랴부랴 검색창에 ‘도스토옙스키 누구’를 입력한 다음 『죄와 벌』 같은 대표작들의 제목이나 줄거리 5분 요약 영상을 숙지하려고 인터넷을 뒤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2. 그러나 걱정하지마라.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사람이고, 우리는 책 말고 다른 훌륭한 콘텐츠가 넘쳐 흐르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과 이리나 샤크 정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공식 트위터도 인스타 계정도 없는 도스토뭐시기 따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려 괴상한 것이다. 대략적인 지식을 꿰고 있다고 한들, 그것은 순수한 문학적 관심사로부터 나왔다기보단 어디가서 유식한 척이나 좀 해보려는 중2병 힙스터의 발상으로 공부하고 암기한 내용에 가까울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어디가서 안 읽었다고 하면 부끄러울 것 같으니까, 또 모르는 사람들한테 젠체하기 좋을 것 같으니까 읽기 시작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 귀중한 청춘을 그 단조롭고 침울한 표지 디자인에 어디서 흉기로 쓸 수 있을만큼 두꺼운 러시아 소설을 읽는데 낭비했겠는가. 이런 사실을 담백하게 고민하는 나같은 인간, 이런 친절한 글을 읽는 여러분은 실로 축복받은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웃음)     



1863년의 모습. 머리 다 벗겨졌음 레닌이랑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3. 요러저러한 사정으로 도스토옙스키를, 또 읽다보니 관성이 생겨서 계속 읽게된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그가 저명한 만큼이나 널리 잘 읽히는 작가인지는 솔직히 의문스럽다. 까놓아서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스토옙스키가 쓴 소설들은 하나같이 조온-나게 길기 때문이다. 당장에 가장 유명한 작품인 『죄와 벌』만 해도 천 페이지가 넘고, 『백치』는 꼭 그만한 분량인데다 『악령』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것들은 분량이 더 많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어떻냐고? 그런 걸 사람들이 알기나 하나?


4.  거 읽기 좋게 적당히 좀 쓰지 왜 이렇게 왕창 갈겨놓았느냐?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그 시기 러시아 소설은 단어 개수에 따라 원고료를 책정했고, 도스토옙스키는 허구한 날 도박빚에 쫓겨가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출판사놈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글의 가치를 매기는데서 유독 원시적인 구석이 있다. 사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진짜 많이 쓰긴 했다. 근데 돈도 많은 톨스토이는 왜 그렇게 길게 썼나



5. 이렇다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다보면, 때때로 지나치게 길고, 지엽적인 내용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하기야 길게 쓰겠다고 작정하고 쓴 소설이니까. 요즘으로 치면 웹소설 작가들이 매일 오천자씩(연재 때문이라고는 해도 상당한 분량이다) 써낸 것을 나중에 묶어놓고 보니 책 몇 권이 거뜬히 나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떻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최신 장르소설과 비교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실례를 범할 수 있느냐? 그렇지만 실제로 같은 러시아 작가인 나보코프도, 『절망』이라는 소설에서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같은 위대한 탐정소설 작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사실은 이 책 전체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반항이다. 대놓고 놀리고, 문체까지 따라했다. 정성가득한 안티). 도스토옙스키의 투머치라이팅은 오래전부터 비판받아온 요소였다.


6. 그렇게 의미없이 분량만 늘려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국에다 물타고 밥에다 모래 채워넣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필요에 따라 호흡을 늘리고 줄여서 마감을 맞추는 것 역시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내용물에다 괜히 물을 타는 게 단순히 양이 많아 보이려는 기만행위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메리카노가 되기도 하고, 온더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총살 직전에 사면받고 살아남은 적이 있다. 꽤 알려진 사실.



7. 가타부타 말을 갖다붙여봤자 도스토옙스키의 글이 매우 길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읽는 속도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다만 업으로서나 취미로서나 책읽을 시간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편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읽은 작가인데, 그럼에도 나 역시 그의 작품을 전부 읽진 못했다. 하물며 이걸 업으로 삼는 문학평론가나 번역가 내지 관련전공자가 아닌 이상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취미로 하는 가벼운 독서’로 소화하기란 매우 까다로운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어서, 남에게 ‘이건 명작이니까 억지로 시간 내서라도 읽어’ 하고 무작정 추천하기도 마뜩잖다.      


8. 한편 인터넷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여러차례 독파한지 오래라는 듯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죄와 벌』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조차 마주치기 어려운데…… 우연히도 그렇게 교양있는 양반들만 댓글을 단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대인들이란 한가롭게 도스또예쁘쓰끼를 펼쳐놓고 벽난로 냄새나 맡는 부류와 거리가 멀다. 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 자체가 남다른 허영심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왜냐? 왜냐니, 그야 알만한 작가들이 역대최고를 논할 때는 늘 도스토옙스키를 빼놓지 않으니까. 심지어 러시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까지 지어져 있으니까.           



모스크바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거리. 이오니아식 주두가 인상적이다. (웃음)



9. 어떻게보면 도스토옙스키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대문호다. 좀 과장해서 문학계의 패리스 힐튼이다. 이미 너무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남득하고 있지만. 정작 정확히 뭘 하고 살았고, 삶에서 어떤 것들을 남겼는지 주의깊게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백년전엔 국립도서관과 극장이 차지하고 있던 것을, 지금은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옛날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슬플 사람들은 계속해서 슬플 것이고, 글 쓸 사람은 계속해서 쓸 것이며,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죽음마저 원망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This is my last message to you: in sorrow, seek happiness. "
― Fyodor Dostoyevsky, The Brothers Karamazov     









매거진의 이전글 영원에 관하여, 스탠리 큐브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