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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12. 2022

여로에서 (6)

실망해서도 실망시켜서도 안 된다



새벽에 잠깐 깼다. 안드레이가 작은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갔다가, 무심코 아랫쪽 자리가 텅 비어있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잠든 사이 그 아주머니와 아기는 어디론지 내리고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무슨 역이었는지는 몰라도 새벽이었던만큼 엄청나게 추웠을 테다.

 아기도, 엄마도, 부디 건강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며. 옷을 갈아입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못 되는 것 같다.





안드레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노트북을 꺼냈다. 글을 쓰고 있으려니 창가자리가 조금씩 밝아져오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처럼 해가 뜨고 나면 열차칸은 내부등 없이도 환해진다. 광막한 설원이 철길을 둘러싸고, 한여름의 스프링쿨러처럼 사방으로 빛을 내뿜는다. 나는 일곱시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다시 일어났을 땐 열시 반이었다. 안드레이는 아랫쪽 침대에 앉아있었다.

 “좋은 아침” 안드레이가 테이블 위에 있는 조그만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네 아침식사야”

 생각해보니 어제 조식을 시켰었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잠들어있었다. 괜히 밥왔으니 일어나라고 깨우지 않은 안드레이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쯤 빼먹었더라도 용서해줄 요량이었는데, 역시 손댄 티는 일절 없었다.

 “내가 좀 늦었네”

 안드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는 동안 배가 고파졌던 것 같다. 식사는 토마토가 들어간 오믈렛과 짭짤한 맛의 치즈 네 조각. 모닝빵 한 개와 과일주스였다. 딱히 러시아식이라는 느낌은 없는, 아주 전형적인 서양식 브렉퍼스트였다. 다 먹는데 십 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배가 불러서 허리춤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안드레이가 급작스레 ‘푸쉬킨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당연하지.”라고 나는 대답했다.

…근데 러시아에서 ‘아니, 전혀. 나 푸쉬킨 싫어해’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나라로 치면 ‘너 윤동주 좋아하니’ 같은 느낌의 질문이다. 민족적이고 서정적인 시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꽤나 닮았다. 물론 윤동주는 프랑스인과 결투 중에 치명상을 입고 죽진 않았지만.

 알렉산드르 푸쉬킨이라고 할 것 같으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구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소싯적에 투니버스 좀 봤다 싶은 사람은, <검정고무신>의 기철이가 예쁜 문학소녀를 꼬셔보겠다고 시집을 읽는 에피소드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온 시가 바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고, 그걸 쓴 사람이 바로 푸쉬킨이다.

 “혹시 <예브게니 오네긴>은 읽어봤어?” 안드레이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것까진”

 “이런. 그거야말로 푸쉬킨의 최고 걸작인데…” 어쩐지 안드레이는 기세가 등등한 얼굴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읽어볼게”

 “꼭 그래야해. 푸쉬킨은 정말 위대한 작가거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래서 푸쉬킨이 어떻게 죽었는지, 처음 알았을 땐 엄청 놀랐다니까. 여자 때문에 프랑스인이랑 결투를 하다가 죽었다고 들었거든”

 “맞아. 그건 엄청난 비극이었지. 모든 러시아인들이 거기에 대해 슬퍼해”

 “그렇겠지.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 사건 때문에 러시아가 프랑스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았어”

 하하하하하, 하고 우린 웃었다.

 “사실 그렇게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야. 프랑스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선 상당히 미안해하는 것 같더라고”

 “독일은 어때? 러시아 사람들은 독일은 싫어하지 않아? 역사적인 배경도 있고.” 나는 이번엔 좀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정중한 안드레이가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안드레이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럴리가 없잖아” 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독일을 싫어하지 않아. 베를린에도 갔다 왔었어. 내 눈에 독일 사람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지.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인들은 나치와 히틀러를 싫어하는 거야. 독일 전체를 싫어하는 것과는 달라”

 “아하, 그렇구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실로 우문현답이다.

 “그보다 나는 독일 사람들이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 같아”

 “왜?”

 “전쟁에서 우리한테 개쳐발렸으니까”

 하하하하하, 하고 우린 한 번 더 웃었다. 역시 이런 주제는 예민한만큼 흥미롭다. 또 흥미로운만큼 유쾌해질 수 있다.



 횡단열차 안에서는 인터넷이 거의 안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RZD’라는 이름—우리나라로 치면 KORAIL—의 공공와이파이가 검색되기는 하지만, 중간중간 크고 작은 역에 정차했을 때나 큰 도시 주변을 지나갈 때가 아니면 작동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동중에는 인터넷이 필요없는 일들, 이를테면 대화나 독서 또는 미리 저장해둔 영상을 보면서 때우는 사람이 많다. 내 경우는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자거나, 글을 쓰거나, 무언가 읽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영어 실력이 준수한 동시에, 낯선 동양인에게 말을 걸어올만큼 붙임성이 좋은 안드레이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로, 그 덕분에 다소 무료할 뻔했던 기차여행에 생기가 돌았다는 점을 말해둬야겠다.

 가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이런 걸로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는 데 굉장히 지쳐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가족이 없어” 라고 말해버렸다.

 “가족이 없다고?”

 “없어. 아빠는 일찍 죽었고, 엄마랑은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겨서 생사도 몰라. 솔직히 난 관심도 없지만.”

 “형제는?”

 “형제도 없어. 외동아들이거든”

 “그래?” 이 말을 할때, 안드레이는 유독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외동아들인데. 우리는 똑같구나. 악수할래?”

 “좋지.” 나는 안드레이와 악수했다. 조금 차갑지만 크고 듬직한 손이었다. “고마워”

 “음? 뭐가?”

 “나랑 똑같다고 말해줘서”

 내가 말했다.



 나는 한참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창백하게 흰 평원. 위로 가느다랗고 높은 숲이 하염없이 이어진다. 같은 풍경이 몇 분이나 이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어느덧 정지된 화면이나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기차는 시속 백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안드레이에게는 즐겁게 대화한 것 말고도 신세를 많이 졌다. 승무원과의 대화를 통역해주기도 하고, 갑자기 컵라면과 홍차를 사와서 내게 먹이기도 했다. 딱히 대가를 바라는 것 같진 않은데. 돈도 시간도 아끼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내게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어쩌면 안드레이도 적적하고 외로웠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도 나와 똑같다고 말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나는 안드레이가 아니니까.

 이날 저녁, 안드레이와 나는 식당칸에 함께 가서 맥주를 두 병씩 마셨다. 얻어먹은 것도 돌려줄겸 술값은 다 내가 내려고 했는데, 안드레이는 기어이 자기 돈으로 술을 더 사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뭔가 우울해보이는데, 루크.” 하고 묻는다.



 “네 말이 맞아. 사실은 우울해”

 “러시아에 온 걸 후회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극구 부인하며 말했다. “그보다는 마감이 밀린 게 있어서 그래. 내일이 마감일인데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어. 썼던 것도 백업이 안 돼서 다시 써야하고. 사실 좀 막막해”

 “어떻게 되는데? 마감을 못 지키면?”

 “글쎄. 일단은 내담당 편집자가 화를 내겠지?”

 “그것 뿐이야?”

 “그것 뿐이라니. 작가가 신뢰는 거의 전부나 다름없어.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전혀 신뢰받지 못하는 작가라면, 아무리 도스토옙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고 해도 책을 낼 수 없을 걸”

 “그건 맞는 말이야. 나도 동의해” 안드레이는 일어선 상태로 병뚜껑을 따고, 내 잔과 자기 잔을 차례로 채워넣곤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루크, 그건 알고 있어? 도스토옙스키도 항상 빚쟁이들에게 쫓겨서 글을 썼지”

 “나도 알아” 내가 말했다. 안다 뿐이랴, 나는 그 내용에 대해 꽤 긴 분량의 수필까지 썼다.

 “도스토얩스키 소설을 많이 읽었어?”

 “자주 읽긴 했지. 왜?”

 “네가 읽어본 것중에, 도스토옙스키의 최고작품은 뭐라고 생각해?”

 “도스도옙스키의 작품 중에서라고?” 내가 되물었다.

 “그래. 그가 쓴 단편이든 연작이든 장편이든 전부 포함해서 가장…”

 “말할 것도 없어. 무조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지”

 “오, 루크… 루크!” 안드레이는 가슴팍이 뭉클해졌다는 식으로 말했다. “정말, 도스토옙스키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거지, 이런 건. 무조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꼽을 수밖에 없다니까. 넌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아있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라면 훌륭한 장면이 많지. 나는 알료샤의 스승이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종교적 스승이 애제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하잖아. ‘너는 부디 슬품속에서 행복을 찾아라. 이것이 내 마지막 메시지다…’”

 “아. 그 장면. 좋지. 또 다른 건?”

 “또 다른거? 다른 거, 다른 거,… 그래. 둘째 이반이 법정에 서서 발언을 시작하는데, 그간 통제해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웅변을 하게 되잖아”

 “맞아. 그것도 정말 대단했었어.”

 “알료사가 마지막에 다른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들도… 그 대목을 읽을 때 나는 거의 울었지. 나는 알료샤야말로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사랑한 작중인물이 아니었나 싶어. 의심하고 고뇌하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믿지. 바보처럼 굴때가 많지만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 넌 네가 알료샤와 닮았다고 생각해?”

 “아니. 난 알료샤가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라스콜니코프야”

 “흥미로운 답변인데”

 “너 <백치> 읽어봤어?”

 “오, 루크” 안드레이는 몸을 뒤로 빼고 눈까지 돌리며 변명할 구도를 만들었다. “내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다른 건 다 읽었는데…”

 “<백치>만큼은 못 읽었다?”

 “그래. 그렇지만 언젠가 읽을 생각이었어”

  나는 자비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일본 영화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지. 난 그걸 얼마전에 봤어”

 “어땠는데?”

 “그건 아직 <백치>를 읽지 않은 안드레이와 할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걸”

 “젠장” 안드레이는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분해보이는 표정으로, “공책에 써놨으니까 꼭 읽을거야”하고 자기 다짐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런 안드레이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취침 전에는 비틀즈 얘기를 했다. 레논이냐 매커트니냐 하는 주제로 몇 가지 의견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에는 <Don’t Let me down>을 크게 틀어놓고 목청껏 따라불렀다.

 “Don’t~ let me down~~~”

 “Don’t~ let me down~~~”

 ‘돈!! 렛! 미! 다운!!”

 “우우~~~~~”



 그쭘하니 객실문 너머 복도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와 안드레이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노래를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웃음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승무원이 충분히 멀어진 뒤에야 우리는 잠자리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굿나잇”

 “안드레이. 너도”

 “아, 근데 루크. 내일은…”

 “나도 알아. 오전 일찍 내린다는 거지? 최대한 시간 맞춰 일어나볼게”

 “좋아”  안드레이는 마음이 놓였다는 듯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참 어떤 식으로든 신뢰를 주기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 얼굴에 가짜수염이라도 붙이고 다니는 게 좋을까? 좀 더 어른스럽게 하고 다니다보면, 사람들도 한결 걱정을 덜 할는지 모른다… 약 기운에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이제 시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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