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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28. 2022

여로에서 (16)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약기운이 만연한데 오한이 느껴졌다. 춥지도 않은데 몸이 벌벌 떨리고, 충분히 덮고 있는 이불을 껴안듯이 파고들고, 땀이 삐질삐질 나서 창문을 살짝 열면 얼어죽을 것 같았다. 온도를 감지하고 유지하는 장치가 고장난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땀을 내는 건 좋은 징조야’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이마가 뜨거운지 확인하려고 손을 갖다댔는데 몸이 바들바들 진동하고 있었다.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항우울제를 먹는데 알약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 때문에 우울해졌다. 항우울제라는 건 병적인 우울함을 덜고자 먹는 약인데. 되려 그게 떨어져서 더 우울해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모르는 사람은 ‘그럼 약을 끊으면 되잖아’ 같은 말을 하겠지만. 난 그런 오지랖이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같은 사람이라도 안경을 잃어버린 사람한테 ‘기왕 이렇게 된거 안경에 의존하는 버릇을 고쳐보는 게 어때?’ 따위의 말은 꺼내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진통제를 두 알 더 삼켰다. 곧장 뭔가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침대에 누웠다가, 멍청하게 누워만 있는 게 싫어서 읽던 책을 펼쳤다. <밤은 부드러워라Tender Is the Night>는 한국에서 가져온 마지막 책이었는데—다른 책들은 짐도 비울겸 다 읽은 장소에 냅두고 오거나 선물로 줘버렸다—마침 읽던 부분이 피츠제럴드가 풀발기해서 묘사를 조지는 대목이어서 좀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분명 피츠제럴드 소설의 그런 면을 좋아하지만. 그곳은 문장 하나하나를 충분하게 씹고 삼킬 에너지가 있는 상태에서 읽어야 제대로된 맛이 나는 대목들이다. 긴장을 풀고 쉬면서 읽기엔 벅찬 단어들의 조합이다. 무엇보다 귀 뒤쪽이 너무 땡기듯이 아팠기 때문에, 나는 책을 내팽개치고 침대 협탁쪽에 눈두덩이를 처박핬다.

 “쿨럭, 쿨럭, 컬럭…”



 누워서 좀 쉴라치면 목 깊은 곳이 간질간질해지고 곧 기침이 나왔다. 콧물 때문에 큰 재채기라도 하면 머리통이 쪼개지듯 아파왔다. 양심적으로 너무 짜증나게 아팠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을 괴롭히다 죽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씨발놈 같아서 존나 패고 싶어졌다. 아마 지금 상태로 싸운다면 백 번 붙어 백 번 다 쳐발리겠지만. 아니, 애초에 이렇게 약해진 것도 너 때문이잖아. 이딴 거 개불공평하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로 숨어가지고서는. 비겁하다.

 상태가 메롱이니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일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 빨리 할 필요도 없고 잘 할 필요도 없는, 소위 무지성으로 할만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나는 속옷과 수건 빨래를 돌리고, 최대한 날이 밝고 따뜻할 때 장을 보고 오기로 했다.

 탈수가 심해 마실 것이 더 필요했다. 이온음료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러시아 슈퍼마켓에는 포카리도 게토레이도 파워에이드도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큰 생수통과 컵라면, 빵과 계란과 방울토마토를 사서 돌아왔다.

 평소라면 그리 많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짐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 사이 눈이 쌓여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가하면, 얼음을 잘못 밟아 크게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라도 한 명 있었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래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타지에서 혼자 이 고생을 하고 있으려니까 별의 별 푸념을 다 하게 된다. 너무 아파. 열도 나고 몸이 벌벌 떨려. 음식도 볼일도 전부 혼자서 해결해야해. 해야할 일도 쌓여있어. 맘놓고 쉬기도 힘들어. 슬퍼서 울컥울컥해도 아파트가 건조해서 눈물이 안 나와. 솔직히 이렇게 무모하게 떠난 게 후회되기도 해… 가장 슬픈 건 이 모든 걸 맘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이런 시기에 덜 외로울 수 있는’ 보험같은 거라면, 나는 실비보험없이 뼈가 부러진 수전노가 된다. 그런 곳에 아까운 돈과 시간을 쓰다니. 다들 정말 바보들이라니까. 바보, 바보들… 아야! 악! 아악! 젠장! 나도 하나쯤 있었음 좋았을 텐데!

 …하기는 그런 보험이 내게 제대로 주어진 적이나 있었나? 나는 ‘귀하는 가입조건이  된다 말만 줄기차게 들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치유된 흉터를 피부에 생기는 병에 느슨하게 비유하지만, 개인에 삶에 그런 것은 없다. 열린 상처가 있을 뿐이다. 때로는 바늘로 찌른 점 크기로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처다. 그 고통의 자국은 손가락이나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것에 비유하는 편이 더 적당하다. 일 년에 일 분조차 아쉬워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막상 아쉬워하게 될 경우에는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Tender Is the Night>,  F. Scott Fitzgerald


글쓰기밖에 없었다. 이럴 때의 나는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가장 초라한 모습의 내가, 가장 의미없는 고통으로 골머리를 앓고 몸서리를 칠 때. 결국 나는 일이 아니었더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조차 하지 않았다가는 온 몸이 터져 죽을 테니까. 이럴 때 글쓰기 밖에 할 수 없는 게 너무 슬프다, 라는 내용도 글로는 쓸 수 있다. 내게 어떤 식으로 되돌아오는 게 있다면 전부 글을 통해서였다.

 ‘그런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에요’ ‘작가님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고 저는 그게 부러워요…’

 재능! 그놈의 재능… 내가 부럽다고! 천만의 말씀. 이렇게 터무니없는 외로움도 재능이라고 한다면, 그야 나도 재능이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내게는 세련된 문구를 줄줄이 쏟아내거나, 별 노력없이 대단한 글을 펑펑 써내는 그런 재능은… 나한테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 섣부른 겸양이나 기만이 아닌, 명백하게 객관적인 결론이다…!

 ‘비참하군. 정말 비참해’

 꼴사나운 자기연민. 메타인지의 역설적 자기파멸성.

 이케아 작업책상에 고개를 처박으면, 이마에 닿은 곳이 후끈후끈 달아서 다시금 땀이 흘렀다. 나는 잠들기 전까지 평소 작업하던 양의 세 배를 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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