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n 20. 2023

습작

백아흔세번째

 “매달 삼천오백 만원이라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넓적한 아랫턱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의 탄성이 신호라도 되는 듯, 줄곧 웅성거렸던 파티장은 이때부터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엄청난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한거지? 거기, 부인도 이리와봐요. 이 청년이 글쎄 한 달에……”

 “네. 들었어요. 일을 크게도 벌였네…….” 삼십대 후반처럼 보이는 부인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잔을 과장스럽게 흔들었다. 흘깃 올려다본 청년의 얼굴에는 갑작스런 관심으로 인한 긴장과 은근한 만족감이 절반씩 섞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부인은 어쩐지 심술기 가득한 투로 “어지간히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겠는데요.” 하고 덧붙였다.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젊은 남자가 어울리지 않게 근엄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모름지기 남자란, 한 번 태어났으면 어떻게든 큰 물에서 놀아보라고 그러셨죠. 저는 그 가르침을 성실하게 수행한 것 뿐입니다.”

 “그게 어디 남자 뿐인가요? 여기 계신 부인도 만만치않아요.”

 “저도 지금 매달 이천은 되는 걸요. 자랑은 아니지만.” 부인은 샴페인 한 잔을 다 비우고 나서, 이번에는 붉은색 와인이 가득찬 잔을 집어 들고 홀짝이기 시작했다. “한때는 미추홀구의 반절은 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럼요. 한때 소문이 자자하셨지요. 일 키우시기로는 어디가도 꿀리지 않는.”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해서 뭘 한대요? 좋은 시절 다 지나갔지, 뭐…… 금리가 그렇게나 오르다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지금 저희가 이렇게 만났는데…….” 청년은 할 수 있는 가장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밀었다. “세상에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있습니까. 아름다운 클래식 연주에, 너나 할 것 없이 대단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런 펜트하우스에서 최고의 파티를 하고 있잖아요.”

 부인은 청년의 손짓에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널찍한 홀처럼 펼쳐진 펜트하우스의 로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은 제각기 멋지고 우아한 차림으로 바닥을 딛고 서있었다. 광택이 나는 갈색 구두, 수백만원은 족히 되어보이는 버건디색 하이힐, 구찌 로고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도드라진 검은색 원피스 따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들은 적게는 두세 명, 많게는 예닐곱 명씩 모여서 무어라 시덥잖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따금 정말 미친듯이, 그저 그들의 대화 주제가 아니라 세상 전체가 우스워 미치겠다는 듯이 크게 과장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어서, 이내 소용돌이처럼 파티장 전체를 휩쓸었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부인은 청년과 건배를 하고, 잔에 남아있던 술을 그대로 마셔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 신사 역시 흡족하다는 듯 홀로 잔을 올려보이고선 술을 홀짝였다.

 “그러고보니 오늘 날씨도 너무 좋네요. 아주 선선한 여름밤입니다…… 미세먼지도 한 점없고, 한강 주위의 야경이 훤히 보여요. 지난 일 년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야경만큼은 한국만한 곳이 많지 않더라 이겁니다. 으레 하는 얘기들이지만은…… 돈만 많으면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돈만 많으면, 돈만 많으면……”

 중년의 신사는 거나하게 취한 걸음걸이로, 용케 넘어지지 않고 테라스 방향으로 걸어갔다. 청년과 부인은 그 모습을 감시하듯이 쳐다보다가, 서로 목덜미를 얼싸안고 입을 맞추며 욕조가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다섯개나 되는 화장실, 욕실, 샤워실 모두가, 모두가 알만한 사정으로 수십분 째 열리지 않고 있었다. 부인은 서두르지 않고 청년의 몸을 더듬었다. 그러잖아도 아쉬울 건 없다는 몸짓으로, 청년이 입고있던 정장 상의를 벗기며 물었다. “이건 어디서 산 거지? 나는 모르는 브랜드인데.”

 “나도 잘 모릅니다.” 청년이 대답했다. “오는 길에,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정장이라서 샀을 뿐이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럼, 그렇지.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지……” 부인은 다시금 청년의 목 뒤로 팔을 두르고, 껴안은 채 몸이 들어올리며 청년에게 키스했다. 파티장에 있는 그 누구도 이들의 애정행각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깊어지면서, 그정도 수준의 접촉은 괜한 체면을 차리는 행동이 됐다. 악기 연주자들은 일당을 받자마자 도망치듯이 파티장을 나갔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장소에서 허락된 모든 쾌락에 전념했다. 

 여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누운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구덩이속 벌레처럼 기고 구르다가 하얀 가루가 보이면 들이마셨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혈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다가도 주사를 놓았다. 준비해두었던 약이 금방 떨어지자, 파티의 주최자는 스무병들이 와인박스를 들여다놓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게 마지막입니다. 세계적인 양조장을 운영하는 제 친구에게 특별히 주문해 만든 와인이죠…… ’모흐 데피니티브’라고 해서, 오직 우리처럼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하루를 만끽하게끔 생산된 포도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셔서 이것들 좀 마셔보십시오. 목에 들이부어도 좋고, 서로의 몸에 붓고 나서 핥아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먹는 방법은 상관없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하던대로 하면 됩니다. 확실한 건 이게 마지막이라는 겁니다. 이 다음은 없다는 겁니다.”

 주최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흐 데피니티브’ 한 병을 빼들더니, 곧장 마개를 딴다음 자신의 얼굴에다가 술을 들이부었다. 검붉은 액체가 그의 입이며 코에, 눈두덩이와 목줄기를 타고 난잡하게 흘러내렸다. 병에 있던 와인이 바닥나기까지는 몇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주최자는 타이머가 다 된 기계장치처럼, 용수철 같이 테라스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지극히 엉성한 폼으로 74층 아래의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주최자의 낙하에 경도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와인 뚜껑을 뜯었다. 더이상 멀쩡한 잔은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정신이 남아있는 사람들조차 병나발을 불며 입가에 술을 질질 흘렸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테라스로 향했다. 약기운과 술기운으로 인해 지연된 두려움. 죽음은 그 시차 속에서 더없이 향긋하고 매력적인 무언가로 다가왔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사람들. 분분한 낙하…… 가야할 때를 알고 있었지만, 결코 아름답지 못한 찌꺼기들이 아스팔트 위에 흩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신고를 듣고, 용산 소재 최고급 펜트하우스의 보안절차를 돌파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마구 어지러져 치울 사람 없는 난장판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이튿날,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어 영끌의 전설이었던 ‘전세왕’, ‘빌라왕’, 그리고 ‘건축왕’들이 모여 한바탕 호화파티를 벌인 뒤 집단 자살한 사건을 짧게 브리핑했다. 

 “세부적인 동기 파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만, 추측컨대 최근 있었던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가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며……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매월 대출이자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상황 속에 전세 수요가 급감한 것이 극단적 선택에 힘을 싣지 않았을까 하는……”

 회견장 바깥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한 중년 여성은 “왜 그런 짓을, 왜 책임도 지지 않을 거면서, 무슨 이유에서 그런 짓을……” 하며 분통을 터트리다가 못내 울었다. 인터뷰는 중단되었다. 그들, 한평생 모아온 보증금을 잃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그들. 카메라는 그들을 뒤로 한채, 다음 보도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차에 탑승했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축제가 극성이었다. 저녁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다.



<확정일자>

2023. 6




<아파트 바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 AI로 작업 (DALL-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