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백아흔다섯번째

by 이묵돌

유년시절의 나는 유달리 겁이 많은 아이였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롤 보고 나면, 일주일 동안은 머리를 감을 때 눈을 감지 못하는 그런 소녀가 바로 나였다. 샴푸 섞인 물이 들어가 눈이 벌겋게 충혈되더라도, 귀신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그야 두 눈을 바루 뜨고 있기만 하면 귀신에게도 대적할 도리가 생기느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로부터 이십년이 지나 어엿한 어른이자 평범한 직장인이 된 나는, 여느 어른들처럼 눈을 감은채 능숙하게 머리를 감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그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옆에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어, 정말 대단한데” 하고 말해주지 않는다. 어른이란 그런 것이다.


평소보다 늦은 퇴근이었다. 며칠전에 하지가 지나 해가 길었는데도 밖이 캄캄했다. 그래도 방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밤은 어두운 게 좋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베란다로 이어지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사람 세 명이 겨우 줄지어 서있을만한 크기의 베란다다.


나는 난간에 기대 담배 두 개비를 피웠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거나 속상한 일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나는 이 날 맡은 업무를 깔끔하고 상쾌하게 처리하고 나온 참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퇴근이 조금 늦어지면, 담배 한 개비로는 뭔가 부족한듯한 기분이 든다. 그건 스트레스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마치 가려울리 없는 신체 부위가 가려워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담배는 바로 그런 부위를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


주의해야할 점은 내가 고작 2층 높이의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없이 담뱃재를 난간 바깥으로 털어냈다가는—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우아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걸어가던 행인이나 관리사무소와의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낭만을 포기하고, 녹슨 금속 재떨이에다 조심스레 재를 떨어넣는다. 밤바람이 선선하므로 창문은 좀 더 열어놓기로 한다. 방충망만 쳐둔다.


슬슬 머리를 감아야겠다,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원룸의 화장실은 비좁다. 천장도 낮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불편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사람 한 명 드러눕기에도 좁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아야한다는 것. 가뜩이나 여자로 태어나 밤마다 머리를 감는 것은 번거로운 일인데.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 구겨진듯한 자세로 서서 모발을 치대고 있자면 못내 서럽기까지 하다. 허나 어쩌겠는가. 넓은 화장실 대신 낮은 임대료를 선택한 것도 나의 업보인 것을.


수십가닥의 물줄기가 정수리를 강타하고, 나는 눈을 감은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샴푸를 북북 눌러짠다. 은은한 장미향이 나는 그 샴푸는 두 달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놔두고 간 것이다. 형편없는 취향이지만 거품이 무지 잘 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건 내가 써본 샴푸 가운데 가장 거품이 잘 나오는 제품이었다. 머리를 다 감고나면 벽타일에 비눗방울이 잔뜩 붙어있을 정도다. 거품이 많이 난다고 해서 머리가 더 잘 감기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기분은 확실하게 든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은 기분의 동물인 것이다.


평소처럼 연방 거품을 내가며 머리카락을 주무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반쯤 닫아놓은 화장실문 너머로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귀에서 나는 소리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자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이번에는 더 길고 가깝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바람이 부는 소음과는 달랐다. 그건 샷시에 무언가가 닿는 소리였다.


누군가 방충망을 열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신경이 과민해진거야, 되뇌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소리가 났다. 방충망을 살짝 닫는 소리… 그 소리는 늦은 시간 담배를 피우고 방충망을 닫을 때마다 나던 것이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그라인더 소리에, 항공승무원이 띵 하는 기내알림음에 익숙해있듯이. 그 소리는 내 몸에, 청각에 각인되어있다시피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익숙한 소리가 내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부터 발생한 데에 불쑥 소름이 끼쳤다.


샴푸로 생긴 거품이 눈가로 흘러들었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붙듯이 멈췄다. 인기척을 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샴푸를 씻어내고 눈을 뜨겠답시고 샤워기를 틀었다가는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몰랐다. 내가 화장실 안에 있다는 걸 모르고 가주면 좋으련만. 적당히 귀중품 몇 개나 속옷 정도만 챙겨서 돌아가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내 방에 귀중품이랄 것이 있기는 한가?


이어서 발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조용한 날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발소리였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 소리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대체 왜? 심장이 두방망이질쳤다. 발소리는 점차 방 안쪽에 있는 화장실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시간에 나를, 그것도 열려있는 빌라 베란다를 통해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발소리는 화장실 문 앞에서 우뚝 멈췄다. 조금 전까지 미칠듯이 쿵쾅대던 심장이 이제는 돌연 멎을 것처럼 아팠다.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놈은 문앞에 서있다. 협소한 화장실에 허리를 숙이고 서있는 나를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이제 샴푸 거품이 안구에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않고, 고개를 발칵 쳐들며 소리쳤다.


“너 누구야!!”


그는 한참동안 그대로 서있다가, 입을 열었다.




image.png?type=w800 <담배를 태우는 해골>, 빈센트 반 고흐. 1885년.





“그랬더니 갑자기 이 인간이 나한테” 나는 식탁에서 집은 우엉조림을 입안에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누나, 나야, 이러는 거야.”


“……뭐라고?” 엄마는 아연실색해서 되물었다.


“그때 돼서 알았지. 아, 내 남동생이구나……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 아빠는 말없이 물을 마셨다.


“아니, 진짜 내가 황당해서…… 머리 마저 다 감고나서 몇 마디 했지. 그러니까 근처 온 김에 들렀는데, 하도 오랜만에 와서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겠더라 이거야. 불도 꺼져있고 해서 창문으로 몰래 들어왔는데 화장실에 있어서 자기도 놀랐다…… 뭐 그랬다고.”


엄마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얼마나 빤히 보는지 이마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아, 왜 그러는데?” 나는 참다못해 한소리 했다.


“……그래서 걔한테 어떻게 했는데?”


“어쩌기는! 그냥 밥이나, 라면이나 끓여서 같이 먹고. 옆에 이불 깔아서 하룻밤 재운다음에 보내줬지. 다음날 보니까 없더라고 애가.”


“아, 아. 아……”


아빠는 컵을 내려놓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저 말없이 식탁에서 일어나 나를 껴안았다. 그도 그녀도 남동생의 방이 십 년 째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별안간 눈이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샴푸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2024. 6.

<환상통>






쓴 지 좀 된 단편들을 브런치에 아카이빙 하고 있다.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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