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백아흔여섯번째

by 이묵돌


전세계에 원인 불명의 괴질이 유행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삼년이 지났다. 걸린 사람은 별안간 온 몸이 굳기 시작해서, 서있던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나무가 되어버리는 병. 현대의 의학으로는 막을 수도, 원인을 분석할 수도 없는 재앙이었다.


이 괴질을 두고 누군가는 신의 저주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라고도 한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인류의 환경파괴와 저조한 나무심기 성과에 화가 난 이수만 대표가, 급기야 ‘인간을 나무로 만들어버리는 가스’를 개발해 비밀리에 살포하고 있다는 루머도 돌았다. 이런 말같잖은 루머를 진짜로 믿는 머저리 중에는 우리 엄마도 있다.


“분명 이수만이야…… 틀림없어.” 엄마는 아파트 앞뜰에 솟은 나무를 한 손으로 쓸어만지며 말했다. 여름철을 맞아 파릇파릇하게 잎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 사과나무는 세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빠라는 사람이었다.


“사과 주우러 나와서 또 무슨 헛소리야.” 나는 나무 밑동을 주섬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수만은 그냥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 아니, 대표였던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무슨 수로 사람을 나무로 만들어?”


“너는 이수만이 얼마나 나무심기에 진심인지 몰라서 그래.”


“뭐?”


“옛날에 에스파라는 아이돌 그룹이 있었거든.”


“그건 나도 알아.” 내가 대답했다. “윈터라는 멤버 빼고 전부 나무로 변해서 해체됐다며”


“맞아. 닝닝은 백송으로, 지젤은 벚나무로…… 아, 예전에 카리나였던 버드나무 본적 있니? 나무로 변했는데도 얼마나 예쁘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유튜브에서 봤는데, 그 잘나가던 에스파가 나무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거야. 이게 다 이수만이 노래 가사에 나무심기를 넣으라고 한 걸 거부해서 그렇다는 거지.”


“아니, 뭐 그런 것 가지고 걸그룹을 나무로 만들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수만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왜냐하면……”


“아! 진짜!” 내가 소리쳤다. 이윽고 크고 작은 사과가 들어있던 노란색 바구니가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연두색으로 반질거리는 사과 한 알이 또르르 굴러가 엄마의 신발코에 가볍게 부딪혔다. “왜 사과 주우러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난리야? 담임선생님이 나무가 돼버려서 학교도 못 가는데…… 짜증나 죽겠어, 정말!!”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홧김에 바닥에 굴러다니던 사과 하나를 발로 짓밟았다. 사과의 연두색 표면은 신발굽에 힘없이 으깨지면서 하얀 과즙을 내뿜었다.


“민정아, 아빠한테 그게 무슨 짓이니?”


“아악!”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떨어져 있던 사과 하나를 낚아채듯이 집어들고 아파트 안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과껍질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한 입을 베어물었다. 식감은 나쁘지 않은데 과육이 다소 쓰다. 나는 아빠에게도 화가 났다.


“어제 옆옆집 402호 아저씨도 나무로 변했다더라.”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화면에는 <어제 국내에서 나무로 변한 인구 : 2,104명>, <이수만, 몽골 현지 경찰에게 목격된 후 행방 묘연해져>, <원피스 인기 캐릭터 ‘로쿠규’, 독자 반발로 인해 삭제 처분……> 처럼 특별할 것 없는 뉴스 뿐이었지만.


“그 왜, 안경집 하시던 분 있잖아. 너 예전에 써클렌즈 사러 갔을 때 잠시 뵀었던 안경낀 아저씨. 그 분이 참 신앙심도 좋고 검소하신 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떡갈나무가 됐다는 거 아니니.”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생전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나무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 물론 나처럼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믿지 않을 미신에 불과하지만, 괴질이 유행한지도 삼년이 되다보니 그 이론이라는 것도 제법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예컨대 명랑하고 상큼한 성격을 가졌던 사람은 사과나무로 변하고, 차분하면서 감정에 큰 동요가 없던 사람은 소나무가 되며, 욕심이 없고 검소했던 사람은 떡갈나무, 소심해서 하고 싶은 말을 꽁꽁 숨기던 사람은 밤나무, 인자하고 아량이 넓었던 사람은 느티나무, 머리는 좋은데 게을러 터진 사람은 감나무, 겉은 멀쩡한데 육체관계가 문란했던 사람은 은행나무가 된다는 식이었다. 누가 지어냈는지는 몰라도 정말 말 같잖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사과나무라니. 우리 아빠는 전혀 명랑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았는데.



“민정아!” 세은이는 일주일만에 학교에 온 나를 발견하자마자 냅다 달려왔다. 그리고는 스파이가 적국의 동향을 묻기라도 하듯 은밀하게, 주위의 시선을 쓱 훑어본 다음 귓속말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우리반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


“뭐가?”


“은행나무라며? 너희 반 담임선생님…….”


금시초문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열흘전 나무가 된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약간 마른 체형에, 침착하고 얌전한 성격의 신사같은 분이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로도 활동하셨던 선생님은 교정에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의 이름까지 줄줄 외울 정도로 섬세하고 멋진 분이었는데.


“역시 겉으로 봤을 때는 모른다니까. 남자라는 것들은.”


“아, 시끄러!” 나는 세은이가 나를 약올릴 작정으로 하는 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외쳤다. “그런 거 전부 거짓말이라니까!”



그날 오후.


“우리 6학년 2반 친구들, 오늘 하루도 수업듣느라 고생많았어요. 세달만에 담임이 바뀌어서 많이 혼란스러웠을텐데…… 내가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새로 온 담임선생님은 종례시간에 말이 많은 타입인 것 같았다. 나무가 되는 병으로 담임이 바뀌는 건 이제와 드문 일도 아닌데, 자기 반 학생들이 시름에 잠긴 줄이나 알고 퍽 긴 종례사를 늘어놓았다. “얼마전 괴질에 대한 논문을 하나 읽었어요. 여전히 밝혀진 것은 많지 않지만, 꽤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이거예요. 우리는 그 병에 걸리면 사람이 나무가 되어서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인간이었던 것이 나무가 되어서 살아갈 뿐, 삶은 그대로 이어진다는 거예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새로 온 담임선생님은 잠깐의 소란을 허락하듯 내버려두다가,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긴 다음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요. 한때 소중한 사람이었던 나무 앞에 가서, 그 나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거죠. 그 사람이 생전에 좋아했던 말들, 궁금해할만한 소식들도 이야기해주고, 꼭 껴안아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다른 방법으로 삶을 받아들인다는 거였어요. 물론 그런다고 해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변한 모습과 거기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일 거예요.”


그 무렵 몇몇 여학생들이 볼품없이 눈물을 터트렸다.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도맡아했던 채민이는 아주 펑펑 울었고, 수업이 없을 때마다 교무실에 찾아가 사탕이며 과자를 가져다 바치던 민서는 소리를 죽여 눈가를 훔쳤다. 나 역시 금방이라도 뭐가 떨어질 것처럼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당장은 꾹 참고 새 담임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기로 했다.


“그러니까, 여러분 중에 학교 마치고 시간이 된다 싶은 분들은, 이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한 마디씩 말을 걸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고,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한다고요. 전 담임선생님은 학교 뒷뜰에 자라계세요. 으슥한 곳 수풀 사이에 뿌리박은 은행나무가 바로 여러분의 전 담임선생님이시니까, 그냥 가서 아무 말이나 해드리는 거예요. 아, 그거 아시나요?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나무도 나무만의 언어가 있는데, 나무들끼리는 서로 그걸……”


나는 거기까지 듣고 더는 듣지 않았다. 들을 수 없었다. 눈물과 콧물로 얼굴에 있는 온 구멍이 턱하고 막혀서, 그걸 뿜어내고 닦아내는 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아빠를 생각했다. 평소에는 늘 과묵하고 무표정했던 아빠. 그래서 성격으로만 보면 소나무가 되어야 마땅했던 우리 아빠는, 엄마가 별 웃기지도 않는 아재개그나 헛소리밖에 적어놓지 않은 인터넷 뉴스를 읽어줄 때마다 소녀처럼 웃어댔었다.


“저게 니 아빠 원래 성격이라니까. 평소에는 참고 있는 거라고ㅋㅋ”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어쩌면 사과나무가 된 아빠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는 지도 몰랐다. 그래서 사과를 주우러 갈 때마다 헛소리에, 농담에, 말같잖은 루머를 줄줄 늘어놓고 천연덕스럽게 굴었는 지도 몰랐다. 젠장, 그런 거였으면 좀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나 혼자만 아빠를 사랑했던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머잖아 잰걸음으로 하교길을 재촉하고 있던 그 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받자마자 “어머, 우리 딸!” 하고 엄마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학교 끝났지? 집에 오는 중이야?”


“으으응, 무슨 일이야?” 나는 수화기 너머로 내가 우는 것을 들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민정, 엄마가 지금 두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정말 심각하게 안 좋은 소식이랑, 그냥 안 좋은 소식중에 뭘 먼저 들을래?”


“아.” 엄마는 항상 이런식이다. 곧이 곧대로, 솔직하게 전부 말해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한다. 엄마가 미처 말하지 못한 비밀을 하나 깨달아버렸으니까. “그럼 정말 심각하게 안 좋은 소식부터.”


“그래? 정말이야?” 엄마는 새삼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응, 뭔데 그래?”


“이수만이 잡혔어. 몽골에서…… 밤늦게 나무 백그루를 몰래 심다가 체포당했대.”


“뭐? 그럼 좋은 일 아니야? 엄마한테는.”


“아니, 근데…… 경찰 조사에 의하면 이수만씨는 정말 아무 혐의도 없다는 거야, 글쎄. 무슨 가스를 제조하거나 살포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으하, 으하하하!!”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마주 오던 아이 몇 명이 내가 웃는 걸 희한하다는 듯이 힐긋 거리며 지나쳤다. “하하하! 엄마, 내가 말했잖아. 이수만 씨는 그냥 나무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아직, 아직은 모르는 거야.”


“뭐가 아직 몰라?”


“이수만이 아니면, 역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겠지.” 엄마는 한껏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내가 비웃는 것에 빈정이 좀 상한 모양이었다. “그 양반도 자연사랑 했을 땐 둘째가면 서러운 양반이니까…….”


“하하하! 그만 좀 웃겨, 엄마. 그래서 그냥 안 좋은 소식은 뭔데?”


“그냥 안 좋은 소식?”


“안 좋은 소식이 두 개라며.”


“아. 다른 건 아니고, 엄마가 지금 나무가 되고 있어.”


“……뭐?”


“지금 아빠 옆에 있는데 말이야. 사과 몇 개 주우러 왔다가 발이 안떨어지더라구. 이제 허리까지 빳빳하게 굳었어.”


“엄마? 지금 진심이야? 농담하는 거 아니지?”


“얘 좀 봐, 이런 걸로 농담을 왜 하니?”









chestnut-trees-louveciennes-spring-1870.jpg?type=w800 <밤나무들>, 카미유 피사로. 1970년.


“엄마!!”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빨간 신호등도 무시하고 마구 뛰었다. 옆구리를 향해 돌진하던 차들이 클랙슨을 길게 울리며 멈췄다. “엄마, 엄마, 죽지마. 가지마.”


“가기는 어딜 가, 나는 아빠 옆에, 민정이 옆에 있을 거야.”


“하지만……”


“나무들끼리는 말이 통한다는 얘기 들어봤니?” 엄마는 자못 놀라울 정도로, 나로서는 바짝 약이 오를 정도로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나무가 되기를 기다려온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야 너희 아빠랑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이제야.”


“엄마. 나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기다려.”


“아! 이제 목 아래까지 왔어. 나, 엄마가 민정이한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이래 가지고는……”


“엄마!!”


나는 사과나무가, 아빠가 있는 아파트 뒤뜰로 미친 사람처럼 뛰어갔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는데, 산허리로 노을이 살짝 물들어올 뿐인데, 엄마는 전화를 끊지도 않고 아무 말이 없다. 키가 높은 사과나무 옆에, 금방 심긴듯한 밤나무 한 그루가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서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는 밤나무가 된 엄마를 껴안았다가, 딱딱한 나무껍질이며 가지에 얼굴을 비벼보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나도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이 메이는 것도, 눈물이 나오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이 몸이 나무가 되어오는 것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발이 움직이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과 넓적다리가 굳어오고, 손끝과 허리가 변한 뒤에는 금방 나무가 되어버린다. 줄기와 가지, 잎과 열매, 때때로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그런 나무가.


신기한 것은 나무가 되었음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되려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야트막한 나무가 되어버린 내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민정아. 설마……” 울음이 터질 정도로 그리운 목소리. 그럼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더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이기 때문에. “엄마랑 그렇게 성격이 비슷하더니.”


“그러네, 너도……” 곁에 있던 엄마가 중얼거렸다.




2024. 8.

<너도밤나무>






쓴 지 좀 된 단편들을 브런치에 아카이빙 하고 있다.


역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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