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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08. 2019

습작

열여섯번째

내가 학교 앞을 지날 때 일이었다. 수십 명의 학생이 누군가를 둘러싼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또 제각기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고 있는가 하면, 중앙에 선 사람과 나란히 서서 셀카를 찍기도 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장 바깥쪽에 있는 학생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사람이 모여있어요?"


"엄청 대단한 사람이 왔어요" 학생이 대답했다.


"아아, 뭐하는 사람인데요?" 내가 다시 물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인스타 팔로워가 십만 명을 넘는대요. TV에도 나왔다고 하고요"


학생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대충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나가서는, 저도 잘 모른다는 그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대단한 사람 주위로 몰린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을 에워쌌다. 나는 그렇게 에워싼 사람들이 '저 사람은 누구에요?' '아, 아무튼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하는 말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한데 모이고 흩어지는 광경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떠났다.


-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요즈음의 근황을 묻기에, 나는 작게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느닷없이 '어떤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느냐'고 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지만, 헤밍웨이의 글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헤밍웨이 좋지. 대단한 작가야" 친구가 말했다.


"역시 그렇지? 너는 어떤 게 제일 재밌었어? 난 최근에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었거든"


"아, 나는 헤밍웨이를 읽어본 적은 없어"


"뭐?" 나는 의아한 나머지 말했다. "아까는 헤밍웨이가 대단한 작가라고 했잖아"


"그야 당연한 거 아냐?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도 받았잖아. 그리고 헤밍웨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책을 안 읽어도 그 정도는 상식이지"


"음…… 헤밍웨이가 대단한 작가라면, 단순히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멋진 글을 썼기 때문 아닐까?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멋진 글이라는 걸 인정받았으니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 아니야? 문인도 결국에는 결과로 보여주는 거라고. 뭐든 그렇잖아. 최근에 그, 이름이 특이한 작가였는데. 외국에서 상 받아서 유명해진 여자 작가 있잖아"


"한강"


"맞아. 그분도 외국에서 맨부커상을 받아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 맨부커상이 엄청 대단한 상이더라고. 세계 3대 문학상이라며? 그런 대단한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다니"


"문학상도 '3대' 같은 게 있었어?" 나는 정말 몰라서 되물었다.


"넌 어떻게 글 쓴다면서 나보다도 모르냐? 제대로 글 쓰려면 좀 알아보고 해야지. 신춘문예 당선도 좀 해주고……"


그날 친구는 내게 문학상 당선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관련 학과를 이수하고 유명교수와 친해질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신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나갔다. 나는 그 날 저녁까지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었기 때문에, 카페에 남아 작업을 계속하다가 퇴근시간이 되기 전에 빠져나왔다.


-


또 한 번은 좋아하는 그림을 카톡 커버 사진으로 해놓았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연락이 와서는, "그런데 카톡 사진이 그게 뭐냐" 고 핀잔을 줬다.


"카톡 사진이라니?"


"커버 사진" 친구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슨 발로 그린 것 같네. 니가 그린 거냐?"


"아, 내가 그린 건 아니고" 내가 대답했다. "앙리 마티스가 그린 거야. <이카루스>라고……"


친구는 내 대답을 보더니, 얼마지 않아서 '그런 건 좀 그림 위에다가 적어놓지 그랬느냐'고 더럭 짜증을 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뒤로 나는 어디서부터 '위대함'을 찾아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누가 만드는 위대함인지도 모른 채, 무수히 많은 위대함에 둘러싸인 나와 내 글은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었다. 찬연히 빛나는 별들은 우리의 아주 작은 발광發光조차 허락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위대함은 위대함과 가까이 있음으로써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달이 아름다운 이유가 하얀 표면과 토끼 그림이 아니라 그저 태양으로부터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듯이.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가 등대의 불빛을 동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매일 같이 화려한 파티를 여는 졸부였기 때문이듯이. 그렇게 위대함은 내게로부터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난 더 이상 별일 수 없는 명왕성처럼 고꾸라져 빛을 잃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 그리고 실타래>,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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