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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09. 2019

습작

열일곱번째

"여자 친구랑 얼마 전에 헤어졌거든요"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랬구나. 왜 그랬는데?"


"왜냐면, 제가 너무 큰 잘못을 했거든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걔가 없으면 정말 저는 하루도 더 못 살 것 같아요. 너무 우울하고, 괴롭고, 후회되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전화도 해보고, 카톡도 해보고, 길게 편지도 썼는데 묵묵부답이에요. 어떻게든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없어"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뭔가 방법이 있을 거에요. 다 없던 일로 하고 새롭게 시작할..."


"정말 그 아이를 사랑하니?"


"네. 정말 진심으로요. 다시는 걔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에요. 전 확신해요"


아들은 거의 울먹거리듯이 말했다. 아버지는 안경을 올려 쓴 다음, 양손으로 펼친 신문 위로 시선을 내밀었다.


"정 그렇다면, 딱 하나 남은 방법이 있지"


"네?"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물었다. "뭔데요? 말해주세요. 전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걔를 위해서라면..."


"다만 하나는 알아야 해. 이미 일어난 일들을 없던 걸로 만들 수는 없어. 어떤 수를 써서든지 말이야"


"그래도, 방금은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럼" 아버지는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다음에 사랑하게 될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거야. 너 스스로,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지"


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큰 방에 걸어 들어갔다. 공포스러운 정적이 이어졌다. 아들은 거실 바닥에 쓰러져 내내 울다가, 문득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그 날은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패자부활전>,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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