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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16. 2019

습작

스물한번째

"청소 좀 하겠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유미숙 씨가 남자 화장실 앞에 서서 말했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가 보니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셔츠 차림의 남자 두 명이 세면대 앞쪽에 기댄 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더 안 쪽에 늘어서 있는 소변기 앞에는 세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곧 유미숙 씨는 강남의 XX타워 십이층 남자 화장실의 타일을 크게 닦았다. 세면대와 거울에 묻은 물때며 정체모를 얼룩을 신문지로 비벼 깨끗하게 만들었고, 화장실 창틀에 낀 먼지를 털어냈다. 그러는 사이 다섯 명의 남자들은 유미숙 씨에게 시선 한 번 건네지 않고 화장실을 나갔다. 다행히도 이제는 쪼그려 앉아 소변기를 문질러 닦을 수 있었다.


다섯 개 가운데 세 번째 소변기를 닦고 있을 때쯤 남자 한 명이 더 들어왔다. 그 남자는 소변기를 닦던 유미숙 씨의 바로 옆 칸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지퍼를 열고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옆에 아주머니가 있든 없든 아무래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주머니 역시 그 남자가 아랑곳 않게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소변기를 닦았다.

유미숙 씨가 XX타워의 청소부로 일한 지는 삼 년이 넘었다. XX타워에 출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남으로 향하는 2호선 열차는 이른 새벽녘에도 몹시 붐볐다. 세미 정장이며 캐주얼한 업무용 복장까지 각양각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을 비집고 도착한 유미숙 씨는 가장 먼저 숙직실에 인사를 하러 가야 했다.


쉰에서 많게는 일흔 살까지도 있던 건물 경비원은 유미숙 씨 같은 청소부에게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였다. 어떤 측면에선 파견업체 부장보다도 더 중요했다. 이 사실은 큰 소리로 경비원에게 질책을 당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XX타워에 볼일이 있는 방문자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입주사 직원들이 수십 명 씩 있는 1층 로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럴 때에만 경비원과 청소부를 쳐다보곤 했다. 지긋한 나이에 볼품없는 몰골을 한 경비원이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는 듯이. 하기야 그 건물과 관련된 사람 가운데 경비원이 크게 소리치며 혼낼 수 있는 존재라곤 기껏해야 청소부뿐이었다. 아무튼 유미숙 씨는 그 날 이후로 경비원에게 밉보일 짓을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왔던 것이다.


"정말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 지 모르겠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는 거야, 도대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남자는 대변기 칸막이 안에 똬리를 틀고, 벌써 이십 분이나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미숙 씨는 다른 칸에 있는 모든 휴지통을 비웠다. 다만 이렇게 단 한 칸이라도 사람이 들어차 있는 경우에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 어, 그래.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되는 거지. 그런 게 회사생활이잖냐. 나중에 요 근처 오면 소주 한 잔 해. 저기 십 번 출구 쪽에 있거든. 매운탕이 기가 막혀 아주……"


화장실 칸 안에서 남자가 통화를 마무리하는 소리, 변기에서 일어나 바지를 올리는 소리, 그리고 물을 내리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고, 마침내 남자가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남자는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엿들은 것은 아닌지 뒤늦게 걱정이 된 나머지 남자 화장실 곳곳에 고개를 내밀고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 남자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세면대 앞에 걸터앉아 있던 유미숙 씨가 일어나 방금 남자가 빠져나온 칸을 살폈다. 그 칸의 휴지통은 거의 비어있다시피 했다. 대신 똥 닦은 휴지를 잔뜩 쑤셔 박은 변기가 콱 틀어막힌 채 꿀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XX타워는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를 세로로 수놓은 수십 채의 유리빌딩 가운데 하나였다. 건물에 있는 거라곤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입주사 몇 개와 공유 사무실 그리고 1층의 프랜차이즈 카페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입구 안쪽을 지나다녔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는 비상계단 옆에 작은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안에서 유미숙 씨 같은 청소부 다섯 명이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 계란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아침나절이 다 지난 뒤에야 오 분정도의 달콤한 단잠을 자는, 삼 평 남짓의 추레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마 사람들은 강남에 있는 수백억짜리 건물들의 계단과 화장실과 외벽의 유리들이 깨끗한 이유가, 수백 명의 보이지 않는 유미숙 씨가 당신 몰래 닦아놓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불과 이십 년 전, 그러니까, 유미숙 씨가 두 명의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강남의 여느 사람들처럼 회사에 다녔다는 사실 역시 모를 것이다. 그래서 불과 이틀 뒤에 자택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한들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강남에 있는 유리빌딩들의 화장실은 내일도 변함없이 깨끗할 것이고, 돌바닥과 타일에서는 락스와 세제 냄새가 날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 같은 무언가가, 매일 똑같이 깨끗해지는 마법이라도 부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우렁각시>, 2019. 4



목련, 캔버스에 아크릴, 15 x 15(cm), 2019. 4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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