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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1. 2019

습작

스물다섯번째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고양이 진짜 좋아하는구나"


"응"  


"왜 안 키우는 거야? 그렇게 좋아하면 한 마리 키우면 될텐데"


"집주인이 동물을 안 좋아해"


"그래?"


"표면적으로는 그래"


"표면적이라고?"


"응. 키우려면 몰래 키울 수도 있겠지. 매일 방을 검사받는 것도 아니니까"


"나도 그런 생각했어. 너만큼 좋아하면 잘 숨겨가면서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맞아"


"그럼 표면적이지 않은 이유는 뭔데?"


"내가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뭐?"


"내가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아니, 무슨 소리야? 사랑하면 키우면 되는 거잖아. 좀 번거롭긴 하겠지만"


"사랑하면 꼭 키워야해?"


"음.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그래도 좋잖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매일 곁에 있으면"


"그럴 필요 없어. 우리나라에는 길고양이가 많으니까"


"길고양이가 없으면?"


"유튜브로 보면 돼"


"그것만으로 돼? 그냥 보기만 하는 거잖아"


"보기만 해도 좋아. 그리고 길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쪽이 재밌기도 하고"


"고양이 엄청 좋아한다며. 보는 것만으로는 못 견딜 것 같은데"


"응. 견디기 힘들어"


"왜 말이 오락가락해?"


"오락가락한 적 없어"


"그럼? 보는 것만으로 견디기 힘든데 왜 안 키우는 거야? 고양이가 네 곁에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잖아"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곁에 두지 못해서 괴로운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있거든"


"그게 뭔데?"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 곁에 있어서 불행한 거야"


"음"


"나는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를 행복하게해줄 자신은 없어"


"왜?"


"왜냐면, 나는 고양이 밥은커녕 내 밥도 제때 못 챙겨먹고, 가끔 느닷없이 집을 떠나고 싶고, 일하고 있을 때 방해받는 걸 견디지 못하고, 외로운 주제에 먼저 다가와주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피곤할 때 잠을 못 자게 하면 엄청 화를 내는 인간이거든"


"그런데 그건 그냥 이기적인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지"


"네가 아무리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너 자신보다 사랑하진 않는거야"


"맞아. 이기적이지. 더 이기적인 걸 알려줄까?"


"더 이기적인 거?"


"고양이를 두어 달 정도 키워본 다음에야 알았다는 거야. 내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키워봤구나"


"응"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됐는데?"


"좋은 분한테 입양 보냈지. 행복해 보이더라구. 새끼도 다섯마리인가 낳고"


"슬프지 않았어?"


"슬펐지"


"왜 슬펐는데?"


"글쎄, 내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어서?"


"좋아. 더 배운 건 없어?"


"있어"


"뭘 배웠는데?"


"갖고 싶은 마음이 곧 사랑은 아니라는 거야. 소유욕과 사랑은 다른 거니까"


"사랑하니까 갖고 싶은 게 아니고?"


"단순히 갖고 싶은 것은 소유욕이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 갖고 싶으면 그게 사랑인줄 알거든"


"소유욕은 가진 뒤에는 없어지잖아. 내 생각에 사랑은 좀 더 고차원적인 거야. 소유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개츠비는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해"


"그건 네 생각이고"


"그렇긴 해"


"잘 있어"


"응. 잘 가. 사랑해"


"이제야 좀 진심 같은걸"


"나도 알아"


넌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뒤돌아 나갔다. 난 뒤따라 일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머릿속에는 온통 아우성치는 소리. 그럼에도 삼십분 넘게 아무 말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생각해도 기적적인 발전이었다. 그 날 이후 내가 널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슬픔과 그리움뿐이었다. 야속하게도 내가 가는 길에는 고양이가 무척 많았다.


<고양이 키우기>, 2018. 8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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