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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2. 2019

습작

스물여섯번째

나는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뭔가 배우고 싶은 마음에 했던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 가운데 학원을 다니지 않는 녀석은 나를 포함해 둘 뿐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또래는 물론이거니와 한참 어린 꼬마애들에게도 바보 취급당하던 장애아였는데, 다른 애들이 학원에 가버리고 나면 그 동네 바보와 단 둘이 남게 되는 것이 싫었다.


딱히 그 아이가 싫다거나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린이들은 바보가 쓰던 지우개를 한 번 써도 바보가 된다고 믿는다. 하물며 바보랑 놀기라도 하면 바보 취급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난 바보가 되는 것 자체보단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딱히 나라고 바보가 아닌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학원을 보내달라고 무진 떼를 썼는데, 집안 상황이라는 게 떼를 쓴다고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다른 애들 다 갔던 태권도 도장도 나는 못 갔다. 매일 저녁나절이 될 때마다, 슈퍼마켓 앞에는 흰색 승합차 한 대가 서있었다. 그럼 곧 멋진 도복 차림을 한 동네 친구들이 나와 차에 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매월 팔 만원이면 삼시 세 끼를 라면으로 먹어도 남는 돈이었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검은띠 심사에 합격하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깬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흰 띠조차 매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꿈은 꿀 수 있다니. 너무 생생했던 나머지 다음 날 저녁에는 그 흰 차에 그냥 올라타버려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정말 타지는 않았다. 난 열 살도 되지 않은 꼬마였지만,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쯤은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로움을 견디는 일만큼은 아무리 배우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동네 바보와 놀지 않는 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는데, 학교 조차 가지 않는 여름방학만큼은 견딜 수 없이 지루하고 따분해서 그런 바보라도 곁에 있는 게 감사할 정도가 된다. 결국 나는 선심이라도 쓰듯이 동네 바보 민수와 친구가 돼줬던 것이다. 실제로 민수는 내가 '할 거 없으면 같이 놀래?'라고 한 번 물어봐준 것을 정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였다. 세상에 그만큼 불평등한 우정도 몇 없을 것이다.


결국 난 민수와 매일 어울려 다녔다. 동네 어른들이 보기엔 아주 친한 단짝 친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게 싫었던 나는 항상 민수를 앞질러 걸었다. 그럼 민수는 또 바보같이 '같이 가, 같이 가' 하면서 잰걸음으로 따라왔다. 난 민수가 너무 미웠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미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미워하는 인간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짜증 났다.


뭐 이런 바보 같은 놈이 다 있을까? 민수는 나보다 게임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고(난 달리기를 못하는 편이었다), 철봉에 매달려 앞으로 한 바퀴 도는 것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내가 다 가르쳐줘야 했다. 민수는 나랑 한 달 동안 놀면서 멋진 모래성을 쌓는 법을, 놀이터에서 가장 높은 기구에 올라가는 법을, 라이터 장치를 분해해 전기총을 만드는 법을, 노란 고무줄로 별 모양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테니스 공을 빠르게 던지는 법과 누가 던진 공을 각목으로 쳐서 멀리 보내는 법도 배웠다. 나랑 놀면서는 차츰 말도 더듬지 않게 됐다.


민수는 배우는 게 무척 느린 데다가 말귀도 잘 못 알아먹었다.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내면 그제야 제대로 했다. 민수도 아예 학습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서, 가끔은 내가 봐도 꽤 잘 해내는 것도 있었고, 나는 '방금은 나쁘지 않았어. 물론 운이 좋긴 했지만'처럼 칭찬 같지도 않은 칭찬을 하곤 했다. 민수는 그 같잖은 칭찬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처럼 웃었다.


민수는 내게서 많은 걸 배웠다. 그러나 떠나는 법까지 배운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떠나는 법이란 따로 배워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언젠간 주위의 누구라도 떠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민수는 해질 무렵이 되자 '가야 해, 이제 가야 해' 하고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너 따위가 가긴 어디를 간다는 거냐'고 비아냥댔다.


'오늘부터 피아노 학원에 간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민수는 그동안 바보여서 학원을 안 갔던 거지, 나처럼 돈이 없어서 못 간 게 아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 2층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학원 창문에는 'XX 피아노 학원 개인 레슨' 이라는 글자가 노란 스티커로 붙어 있었는데, 그 너머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와 어둑어둑한 건물 그늘을 비췄다.


닫혀있는 학원 창문으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상가 건물 뒤편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민수의 차례는 직접 보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조차 제대로 이어 치지 못하는 놈은 민수뿐일 테니까. 민수는 이후로도 몇십 번이나 실수를 했고, 나는 거의 일주일 동안 상가 뒤꼍에 앉아 연주 소리를 들었다.


그사이 민수는 '젓가락 행진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냈다.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난 여전히 민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줄 수 있었지만,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방법만큼은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다. 학원에서 빠져나온 민수는 기다리고 있던 내게 와선,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손 모양을 흉내 내보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거기에 난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서, 더 이상 놀아줄 생각 없으니 그만 꺼져버려, 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말이었다. 처음부터 '놀아주는' 사람은 민수였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민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난 방학만 되면 집에 처박혀서, 산 지 몇 년이 지나 털털 소리가 나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게임이 질릴 때는 책을 읽었다. 집에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보름도 안돼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질리면 다시 게임을 했다.


이 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담배 심부름을 시켰는데, 조금 크고 나서는 꼭 용돈 이삼천 원을 함께 쥐어 보냈다. 그 돈으로는 뭐든 살 수 있었다. 네 개에 천 원하는 하드 아이스크림이며 얼어있는 제리뽀를 사 먹거나 죠리퐁과 이백 미리짜리 우유 한 팩을 사서 퍽퍽 말아먹을 수도 있었다. 게임에 완전히 중독돼 있었던 나는 방학 중 밖에 나가는 일 자체를 싫어했지만, 이런 이유로 담배심부름을 가는 것만큼은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심부름을 갈 때마다 단지 앞 상가를 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좋든 싫든 피아노 학원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무척 짜증이 났다. 짜증이 나는 스스로도 짜증이 났다. 이러면 왠지 내가 민수를 질투하는 것 같잖은가. 아니지, 민수가 피아노를 치든 말든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고, 나는 그딴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물론 질투가 확실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만큼은 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뭐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복잡한 감정은 풍화돼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느 시점부턴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든 거의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담배심부름을 나갔다 돌아오는 어느 저녁에, <전민수(중학교 2학년) 시장 배 콩쿠르 입선> 이라는 현수막을 본 뒤로는 그 은밀스런 질투조차 할 수 없게 돼버렸다. 내가 질투하기에 민수는 너무 먼 곳으로 떠났다. 나는 기다릴 자격도 없이 고작 게임이나 할 뿐이었다. 오투잼, 리듬스타, 알투비트와 디제이맥스……


<비교우위론>, 2019. 4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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