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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25. 2019

습작

서른다섯번째

“제가 준비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단상에 선 강연자가 말했다. “여러분께 제 못난 인생사를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려니까 조금 부끄럽기도 하네요. 간단하게 질문 몇 개 받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렴 대학생은 바쁠 테니까요”     


강연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마이크에서 삐-하는 소음이 일이 초간 튀어나왔다. 본 강연 도중에도 두세 번 났던 소리였다. 강연자는 이번에도 무대 왼쪽 끝에 있는 주최 측 담당자를 노려보면서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티를 냈다. 기껏해야 대학교 삼 학년이나 돼 보이는 담당 학생이 송구스러움이 덕지덕지 묻어 나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옆의 여학생은 맥없이 앰프 위의 계기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백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세미나실에 들어차 있었다. 강연자가 서있는 단상 멀리 위쪽으로는 가로로 긴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큰 글씨로 <“청춘은 굳세게, 열정은 부드럽게” : A주식회사 김 대표 초청 강연>이라 써붙여진 현수막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김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해당 학과 새내기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교수들의 통보로 별 수 없이 앉아있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두 시간짜리 특강이 이제 삼십 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삼십 분을 채우기 위해 없는 질문이라도 만들어낸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아주 홀가분하면서도 즐겁다는 표정으로 객석을 훑어봤다. 그리고 맨 앞으로부터 세 번째 줄 왼편에 앉은 여학생을 지목해 일으켰다.     


“저 학생한테 마이크 주세요” 김 대표가 말했다. 그러자 단상 곁에 있던 남학생이 부리나케 뛰어나와, 질문하려고 서있는 여학생을 향해 달렸다. 김 대표는 그렇게 뛰어가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고생하네, 고생해. 아주 청춘이군요. 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뛰시다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거기 예쁜 학생은 질문이 뭐죠?”     


“아, 아… 네 대표님” 질문을 위해 일어난 여학생이 마이크를 툭툭 두드리고 말했다. “우선은 강연을 정말 잘 들었고요…”     


“하하, 고맙습니다” 김 대표가 불쑥 대답했다.     


“일단 굉장히 존경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인생에 있어 항상 많은 도전을 해오셨고, 그래서 강연 내용에도 도전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온 것 같은데요…”     


“제가 그랬나요? 뭐, 그랬나 보죠. 네. 도전이라는 건 중요하니까요”     


“아, 네. 그래서…”     


“실제로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김 대표가 다시 끼어들어 말했다. “아, 말 끊어서 미안해요. 계속 질문하세요”      

“그래서 저 역시 제 목표나 비전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 특히 저처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고, 그래서 시간을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는, 대표님처럼 창업을 해서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몰두하고 집중하거나 하는 도전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저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 강의가 끝나고 알바까지 끝낸 뒤에 집에 돌아가면 벌써 오후 열한 시에요. 거기서 몸을 씻고 화장을 지우고 나면 자정이 넘어있어서, 어떤 일을 더 하기는커녕 다음날 강의를 위한 준비나 부족한 잠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오케이, 잘 들었어요. 거기까지” 김 대표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세미나실에 돌연 정적이 감돌았다. 이어서 김 대표가 단상을 뚜벅뚜벅 걸어 움직이는 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마이크에서 끼이, 끼이 하는 잡음이 새어 나왔지만 아까만큼 심하진 않았다.     


“우리, 예쁜 학생은 이름이 뭐죠?”     


“네?” 여학생은 당황한 목소리였다.     


“이름이 뭐냐고요. 성함”     


“아, 저는 소연입니다. 김소연…”     


“하, 그래요. 소연, 소연이. 그래, 우리 소연 씨는 꿈이 뭔가요?”     


“꿈이요?”     


“네, 꿈. 장래희망 같은 거요”     


“음.. 꿈이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옷을 되게 좋아해서, 의류회사에서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하, 그렇군요. 마케팅. 마케팅이라” 김 대표가 앞니로 아랫입술을 지긋이 눌러보였다. “그래요. 뭐 그럴 수 있죠. 그러니까 지금 소연이가 말한 문제는, 도전을 하고 싶은데 도전할 시간이 없다. 뭐 그런 거죠?”     


“네. 말하자면 그런데…”     


“핑계 대지 마세요”     


“네?”     


“핑계 대지 말라고요” 김 대표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여학생은 좀처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당황했겠죠. 그런데 이건 정말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도전할 시간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없으면 도전을 못 합니까? 카페 아르바이트는 왜 하죠? 도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하는 것 아니에요? 뭐 밥도 먹어야 하고, 남친 만나서 데이트도 해야 하고, 스타벅스가서 커피도 마셔야 하고, 동아리에서 술도 마셔야 한다, 그렇죠?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도전할 것도, 도전할 것에 대한 열정도 없어서 그런 거라고 봐요, 저는. 아, 이렇게 얘기하면 또 열정 페이, 뭐 그런 얘기 할 거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김 대표는 웃음기 띤 표정으로 주위를 쓱 훑어보고, 다시 말했다.     


“남는 시간으로 도전하는 게 아니라, 도전할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에요. 저는 어땠을까요? 저라고 시간이 아주 많아서 도전을 한 걸까요? 저는 아르바이트 안 했습니다. 못 했어요. 왜냐면 제 꿈과, 그 꿈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비싼 등록금 내고 입학한 B대학에서도 자퇴한 거에요. B대학 같은 명문대를 뛰쳐나왔다고요, 제 발로. 물론 여기 대학이라고 해서 안 좋은 대학이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결정을 내리려면 그만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얼마나 꿈이 명확하냐, 도전할 생각과 열정이 있느니에 따라서에요. 우리 소연 학생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당장 알바 안 한다고 밥을 못 먹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집 가면 어머니가 따뜻한 밥 차려주시지, 용돈도 주시지, 게다가 요즘은 얼마나 창업하기 좋은 상황입니까. 저때는 뭐 초기 투자? 이런 것도 없었다고요. 저도 부모님한테 싹싹 빌어가지고, 딱 오천만 원 받아서 시작한 게 전붑니다. 우리 부모님 입장은 어땠겠어요? 겨우겨우 키워 서 국내 최고 명문대라는B대까지 보내 놨더니, 그걸 관두고 창업한다는 자식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겠냐고요. 저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고요. 이런 도전정신이 있습니까? 소연 학생에게는 있어요?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부디 자문해보시면 좋겠어요. 자, 다음 질문?”     


말을 마친 김 대표는 다음 질문자를 지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질문을 위해 손을 든 학생은 아까보다 다소 줄어있었다. 이백 명 가량 되는 학생 중에 손을 든 학생이라곤 예닐곱 명에 불과했는데, 모두 남학생이었다. 

     

“에이, 이게 뭐야. 아까 질문하려던 학생은 다 어디 갔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보셔야 해요. 아니면 우리 회사에 취직하기 전까지는 저와 말 섞을 기회도 없을 테니까요, 하하...  여러분, 이런 것도 ‘도전’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상에서 하나하나 도전하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건 바뀌지 않아요. 기회는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아, 거기 여학생, 눈빛이 초롱초롱하네요. 무슨 질문인지 들어볼까요?”     


김 대표는 별안간 말을 마치고, 턱을 휘휘 저어 그 여학생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라는 제스처를 했다.   

   

“저, 저는 여기 C대학 언론정보학과에 다니고 있는 이소현이라고 하는데요”     


“소연? 아, 소현... 방금 전 학생이랑 이름이 비슷하네요? 예쁜 것도 비슷한데, 하하... 그래요. 질문이 뭐죠?”    

 

“저는 대표님이 첫 번째 창업을 실패하시고 바로 D 주식회사에 입사하셔서, 수석 기획자로 일하며 재창업을 준비하셨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D 주식회사는 최근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2위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회사인데요...”     


“아, 그랬던 가요? 1위는 어디죠? A주식회사인가? 하하.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 어떻게 보면 대학도 중퇴하셨고, 별다른 스펙도 없이 D 주식회사에 수석 기획자로 입사하신 셈인데, D 주식회사는 입사자들의 평균 스펙이 가장 높은 회사로 나와 있거든요. 물론 당시에 D 주식회사가 지금처럼 대기업은 아니었겠지만...”     


“아.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요. 낙하산 같은 거 아니냐 그런 얘기죠? 이런 질문 꽤 받았었는데” 김 대표가 고개를 돌리고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음. 낙하산이라고 하면 그렇죠? 어떤 사람이 그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데, 뭐 청탁 같은 걸해서 능력도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거요. 맞나요?”     


소현이라는 학생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김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D 주식회사는 당시에 그렇게 큰 회사도 아니었고... 직원이 백 명은 됐나? 매출도 그렇게 크지 않았고요. 근데 그 회사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랑 꽤 아는, 아니, 조금 안면이 있는 분이셨는데. 제가 첫 번째 창업을 하고 일을 진행하는 걸 주의 깊게 보신 모양이에요. 그래서 제가 첫 사업을 접고 나서 아버지 통해서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제 도전정신이나 열정, 창업으로 증명된 리더십이나 업무 기획력, 추진력 등등. 아무튼 이런 것들을 유심히 봤는데 우리 회사로 와서 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이렇게 연락을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당시에 창업 실패로 인한 후유증이 너무 컸거든요? 그래서 그때 뭘 준비하고 있었냐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근데 일을 하자니까 좀 벙쪘죠. D 주식회사면 당시에 아주 잘 나가진 않았어도, 그래도 꽤 성장하는 회사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혹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일개 사원으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한 회사의 대표였으니까. 저는 그래서 말했어요. 일개 사원으로는 일 못한다, 내가 내 영역에서 업무를 지휘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 안 그러면 난 그냥 미국으로 가버리겠다. 사장실에 단 둘이 앉아가지고 결판을 냈죠. 그래서 수석 기획자로 들어가게 된 거에요. 낙하산이 아니라”     


“아, 네...”     


“이게 얼마 전에 그 뭐냐, 이름도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듣도보도 못한 언론사 하나에서 낙하산이다 어쨌다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써가지고 제가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몰라요. 막말로, 그렇게 일 잘하는 낙하산이면 사장이 잘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들었더니 기자가 한 마디 대꾸도 못하더군요. 요즘 기자는 정말 아무나 하나 보던데. 우리 소현 학생도 나중에 기자가 되실 수도 있겠는데, 그런 기자는 되지 마시길 바래요. 누가 뭐래도 기자는 팩트를 바탕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네, 알겠습니다” 소현이 대답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이제 질문을 두 번 받았는데. 두 번하면 정 없으니까 딱 마지막 질문까지 답변하고 가겠습니다. 여러분 보니까 제가 참, 우리 딸도 좀 있으면 수능을 치는데 금방 여러분 같은 대학생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또 생경하네요. 아, 아까부터 여기 맨 앞에 앉은 남학생이 계속해서 손을 쭉 뻗어가지고 흔들어대는데, 내가 이거 무시하고 집에 갈 수가 없잖아. 자, 남학생, 질문이 뭐에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아, 저” 안경을 쓴 남학생이 일어나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 이번에 도전에 대해 말씀하신 것 정말 인상 깊게 잘 들었습니다. 저는 새내기는 아니고 이제 졸업을 앞둔 학생인데요, 평소에 A주식회사의 행보와 대표님의 모습을 오랫동안 동경해와서 꼭 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 네. 고마워요” 김 대표가 말했다.     


“그, 이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하기가 좀 꺼려지는데요. 저는 C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저희 학교 경영학과 교수님들 역시 정말 뛰어나신 분들이라고 생각하고요. 교수님들의 훌륭한 지도편달 덕분에 이번에 학과 수석으로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학과수석이라니” 김 대표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는 B대 다닐 때 학사경고만 두 번 받았는데”     


“그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 그런데 학과 수석뿐 아니라 이런저런 대외활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자격증은 물론 어학능력도 상당 부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뭇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훨씬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고 소기의 성과도 더 많이 올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요.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이 오히려 못해요, 요즘은”     


“그런데 저는 이번 A주식회사 공채에 지원했지만 1차 서류 탈락 통보를 받았습니다”     


“오, 저런” 김 대표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남학생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저는 A주식회사 인사팀이 우수한 인재로 구성돼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인재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인지하고 있구요. 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면접도 아니고, 서류에서 광탈을 한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가 어려운 결과였습니다. 왜냐하면, 취업 포털에서 찾아본 결과 제 이력은 대부분의 합격자 스펙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딱 하나, 출신 학교를 제외하고요. 저는 A주식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1년 가까이 자소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를 준비했고, 빚까지 내서 면접 과외를 받는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이런 결과를 받았다는 것에.. 저는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제가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 좋아요. 이해했습니다.” 김 대표가 불쑥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정말 잘 이해했어요. 네. 더 말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지금 시간이...”     


김 대표는 왼손을 들어 커다란 손목시계를 유심히 확인하는 체를 했다. 단상 옆 방향으로 몇 번 눈짓하자 남학생 한 명이 단상에 황급히 올라와서 김 대표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아까 질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마이크를 운반하던 그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은 이제 강의 시간인 두 시간이 끝났고, 김 대표님은 이후 스케쥴이 바쁘셔서 급히 퇴장했다는 말을 남기고 내려갔다. 그러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 일제히 세미나실 맨 뒤쪽에 있는 문으로 걸어 나갔다. 오직 한 사람, 마지막 질문을 하던 남학생만이 맨 앞자리에서 앞으로 걸어갔다.     


김 대표는 남학생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자마자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 있는 문으로 빠져나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만 어디에 차를 주차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그동안 아까의 그 남학생이 부리나케 쫓아와 정중하게 질문을 이어나가려 했다. 이어 김 대표는 “아, 제가 너무 바빠서. 나머지는 제 페북 계정에 연락을 주시면 답변해드릴게요. 제 페북 계정 알죠? 정말 미안해요.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가지고... 그럼, 파이팅해요” 하고 남학생을 돌려보낸 뒤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김 대표는 아내와의 통화를 끝낸 뒤, 곧바로 회사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곱 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인사팀장은 퇴근도 않고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아, 대표님. 전화받았습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아! 금방 받네. 강 팀장, 나 오늘 C대까지 가서 강연했거든요? 근데 마지막 질문이 뭐였는지 알아요? 나 참 부끄러워가지고...”     


“네? 무슨 일이요?”     


“참내. C대 경영학과 졸업생, 아니, 졸업예정자인가? 그 학생이 우리 회사에 이력서 넣었다가 떨어졌다고 따지고 들지 뭡니까. 나 참, 강연하면서 이런 일을 다 겪고. 인사팀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네?”     

“아, 그러셨군요. 면목없고 송구스럽습니다.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시정해요. 이래서 지방대 서류는 받지도 말자니까...”   

  

<체크메이트>, 2019. 5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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