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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12. 2019

습작

마흔두번째

"저는 고깃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었어요"


어떤 곳에서 일했느냐는 질문에, 여자는 반 쯤 기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짧은 침묵 뒤. 젊은 면접관이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실로 침착한 대응이었다. 표정이 한결 밝아진 여자가 다시 말을 꺼냈다.


"네. 정말 힘든 일이에요. 고깃집은 숯불에다 철판을 쓰는 곳과 그냥 까스불을 쓰는 곳이 있는데.."


"네, 네"


"제가 일하던 곳은 철판을 쓰던 곳이었거든요. 고기를 삼인 분쯤 구우면 불판을 두 번 이상 갈아줘야했어요. 탄 맛에 민감한 손님들은 일인 분 굽는데도 몇 번이나 갈아달라고 하는데, 뭐 어쩔 수 있나요. 갈아줘야죠"


"참 번거로웠겠네요"


면접관은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조금 실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는 탄력을 받았다.


"번거롭고말고요. 실제로 저는 서빙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일 많이 한 일이 철판을 가는 거였어요. 손목이 아파 죽을 뻔 했지만 악착같이 견뎠어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라"


"그렇군요"


여자는 어색한 제스처 한 번 없이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준비한 멘트치곤 조악했고 즉흥적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일을 하다보면, 철판을 갈은 다음에는 가게 뒤편으로 나가서 철판에 붙은 탄 찌꺼기들을 세제로 밀어줘야 하거든요. 이게 설거지보다 힘들어요. 근데 이걸 제대로 안 해놔서 제가 대신한 적도 많아요. 원래는 주방에서 할 일인데, 주방 직원이 어느날 갑자기 가게에 안 나오겠다고 해서 철판가는 것부터 씻는 것 까지 제가 다 했죠. 그렇게 집에가면 팔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요.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사장이 월급도 올려줄법 하잖아요? 그렇죠?"


"음, 상식적으로는 그렇죠. 업무강도가 높아지면.."


"그런데 안 올려줬어요"


"임금을 올려달라고 직접 말하셨나요?"


"말했죠. 그러니까, 조금 돌려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들은 체도 안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대놓고 돈 더 안 주면 내가 나가겠다,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사람 일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건 직접 말해도 괜찮죠. 더 많은 일을 했으니 돈을 더 달라는 건 정당한 요구니까요"


"그렇죠, 그게 원래는 맞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러기가,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가게 사정이라는 것도 있고. 그때 손님도 떨어지는 중이었고..."


면접관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뇌까리듯이 말하다 황급히 소재를 바꿨다.


"아, 가게 사장님이 저랑 친했어요"


"네"


"거기서 제가 가장 오래 일하기도 했구요"


"얼마나 일하셨나요?"


"삼 년 정도 일했어요"


"아, 네"


"일한 기간도 기간이지만, 제가 일을 가장 잘했거든요. 주방에 있는 애들은 다 철도 없고, 금방 포기하고 나가버리기 일쑤였는데. 저는 일을 찾아서 했으니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사장님도 가게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제게만 따로 오셔서 상의를 했어요. 가게 직원들 사이에서 반장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요. 다른 직원들도 제 눈치를 봤구요.."


여자는 책상을 내려다보며 쉬지도 않고 말했다. 한편 면접관은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몇 번이고 참아야했다. 여자의 자존감은 계획 없이 수십 번이나 쌓아올린 젠가처럼 위태해보였는데, 이보다 더 위태로운 것은 어떤 표정의 일그러짐도 없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아야하는 면접관의 심리였다.


"고기를 굽는 게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사람이 적을 때는 직접 가서 구워주기도 하지만 엄청 붐빌 때는.... "


"대학을 가지 않은 게 후회될 때도 있었지만요.... 사실 그 대학은 원서를 냈다면 백 프로 붙었을 거에요...."


"제가 말했죠, 똑바로 안 할 거면 그냥 때려치우라고.... 어쩜 계속 일했다면 제게 가게를 물려줬을지도 몰라요... "


금방이라도 휘청대며 쓰러질 것 같은 여자의 존재의미 앞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숨쉴 때 나오는 바람마저 조심해야했다. 면접관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 부디 연민이 아니길 바랐다. 버스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 유리궁전까지 면접을 보러온 여자에 대한 깊은 존중 때문이 아니라, 나는 이런 추레한 여자에게마저 존중이 없어선 안 된다, 라는 일종의 방어기제 때문이었다.


"저, 선생님?"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면접관이 자기도덕성을 유지하는데 진땀을 빼는 동안, 여자는 장장 십 분에 걸친 이야기를 끝냈다. 약간의 어지럼증 가운데 옷장냄새 가득한 정장과 정신머리 없는 화장이 감각에 들어왔다. 면접관은 겨우겨우 마무리 멘트를 꺼냈다.


"아닙니다.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딱 시간이 다 됐네요. 이제 댁으로 돌아가시면, 신중히 검토하여 결정을 내린 뒤에 이틀 내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면접관은 거짓말을 했다. 신중한 검토는 이미 이루어졌고, 결정도 끝났다. 연락을 주는 기한도 원래는 사흘이었다. 빼놓은 하루는 아마도 심리적 세금일 것이다. 괜한 희망은 고문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발상은 과연 연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면접관은 책상에 엎어져서, 좀 더 서류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번에는 어땠어? 쓸 만해?"


면접관은 아무 대답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이 면접관의 속을 엎어놓았다. 컴퓨터 앞에서 머리채를 올려 잡고 멍하게 있기를 잠깐.


'바늘까지는 필요 없는데, 바늘까지는..'


속으로 되뇌며 불합격 통보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썼다.


<비눗방울>, 2018. 9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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