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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12. 2019

습작

예순번째

 어제는 꿈을 꿨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있었다. 통장에는 매 달마다 수천만 원의 인세가 꽂혔고, 신림동에는 내 이름을 딴 문학관이 지어지는가 하면 이십대 작가가 쓴 작품으로선 최초로 수능이며 모의고사에 지문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편 나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이사를 가는 대신 집주인에게 매번 신간을 제일 먼저 보내주는 조건으로 절반의 월세만 내기로 했다. 집 살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나서도 월세살이가 더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삶은 변한 게 없었다. 같은 집, 같은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같이 글 쓰는 삶이 이어졌다. 가끔 무료해지면 집 앞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땅거미가 지고 저녁이 돼 있었다. 이제 막 여름에 접어들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농구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도 여전히 부러져 있었다. 왜지?     


 농구를 못하니 별 수 없이 코인노래방에 갔다. 열창을 하고나면 항상 당이 필요했다. 나는 배스킨라빈스에 가서 하프갤런 사이즈를 주문했다.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라는 직원의 질문에 엄마는 외계인을 다섯 번 담아달라고 했다.     


 집까지 가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면 드라이아이스를 왕창 담아주는 법이다. 그러면 나는 집에 가서 뜨거운 물을 담은 양동이에다 얼음을 쏟아 넣는다.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이내 열 평 남짓한 집안 전체를 채운다. 난 초등학생, 모기차 뒤꽁무니로 희뿌연 연기를 따라다니던 열 살짜리의 마음으로 글을 썼다.      


 적당히 다 쓰고 나니 밤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여전히 배는 고프지 않아 우유를 한 잔 따라 마셨다. 자세히 보니 유통기한이 사흘 지나있었다. TV를 켜보니 마침 토요일이었던 모양으로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영 중이었다. 나는 방송을 반쯤 보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는 늘 그랬듯 멍청한 생각들을 했다. 내일은 무슨 일을 할까? 일단 해가 뜨는 대로, 얼마 전에 완공됐다는 내 문학관에다 몰래 불을 지르고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서, 얼마 전 있었던 6월 모의고사에서 출제된 내 글의 핵심소재가 ‘소통이 단절된 현대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따위가 아닌 ‘사흘 동안 똥을 못 싼 나머지 응축된 분노의 소산’이라고 발표할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세상에 처절한 복수를 안겨줄 것이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나니, 나는 빚쟁이에 무명작가로 돌아와 있었다. 월 초에 내야할 월세는 전액그대로 걸렸다. 빌어먹을 손가락은 아직도 부러져 있었다. 내가 불을 싸질러야할 문학관은 온데간데없었고, 내 멍청한 글을 갖다가 학생들이 점수를 따내야하는 비극도 없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인 일이었다. 아, 해가 떴으니 다시 글이나 쓰러 가야지. 나는 언제 베스트셀러 하나 쯤 내보나?     


<진인사대천명>,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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