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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16. 2019

습작

예순세번째

 “그림이 그리고 싶어요, 아빠” 


 재현이는 어린 나이치고 조르는 법이 거의 없었다. 표현이 서투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원하는 게 없는 것인지. 적어도 나는 후자 쪽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재현이가 말도 꺼낸 적 없는 만화책이며 꽤 좋은 사양의 노트북, 휴대폰 같은 것들을 잔뜩 사서 가져다주곤 했던 것이다. 이마저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아빠 노릇이라는 걸 흉내나마 낼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느닷없는 이야기를 하는 재현이의 모습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십이 인치짜리 아이패드 프로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보험료 지급이 영 늦어지는 통에 그만한 여유는 없었다. 결국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예쁜 스케치북 하나와 크레파스 한 세트를 사서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수술일에 보호자는 달리 할 것이 없다. 사실,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는 잠을 자도 상관없다. 보호자가 잠에 든다고 해서 성공적으로 끝날 수술이 실패하거나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상관이 있다면 당일 집도의가 전날 얼마나 잠을 푹 잤느냐 하는 쪽일 것이다. 보호자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기다리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독립된 변수다.


 다만 나는 지난 2년간의 병원생활 동안 편하게 잠들고 깨는 보호자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수술실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놓은 대기실에선, 꾸벅꾸벅 조는 사람조차 볼 수 없었다. 개 중에는 합장한 채 몇 시간이고 기도인지 뭔지를 하는 분도 있었다. 어쩜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생겨먹은 족속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도, 어떻게든 해보려 안간힘을 쓰는 동물 말이다. 


 재현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반차를 내고 나온 아내가 대기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내는 내 몰골을 한 번 훑어보더니, 끝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근처 공원에서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했다. 나는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장차림의 아내가 하는 말에는 늘 거부할 수 없는 둔중함 같은 것이 있었다. 


 병원 앞 광장에 앉아 캔커피를 마셨다. 적잖이 내성이 생겨버렸는지 각성효과는 거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당을 섭취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달달한 음식이라곤 먹을 틈이 없었다. 커피는 너무 달았고, 해는 광장의 돌바닥 위로 찬연히 흐드러졌다.


 광장에 바짝 붙어있는 도로가에는 오래된 가로수가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이어진 가로수에서 잎사귀들이 서로 부비는 소리가 났다. 난 제법 기분이 좋았다. 십 년 전만해도 이런 날씨에는 아내와 단둘이 아무 곳으로나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때마침 나는 하품을 했다. 그래서 눈물이 찔끔 나온 이유가 하품 때문인지 추억 때문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재현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말한 대로, 나는 근처 공원에 가서 삼십 분 정도 거닐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재현이의 말이 떠올라,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문구점까지 걸어갔다. 


 문구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크레파스가 있는 매대를 찾아가보니 종류가 꽤 많았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비싼 삼십육색 크레파스 세트 하나와, 표지에 예쁜 고래가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 한 권을 사서 나왔다. 


  크레파스를 손에 쥔 것이 얼마만이지? 적어도 이십 년은 됐을 것이다. 나는 열두색깔 뿐인 내 크레파스 세트가 부끄러웠다. 그때는 금색과 은색, 노을색이며 바다색같이 생소한 색깔의 크레파스가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한두 푼 아끼겠다고 가장 저렴한 걸 사 오신 어머니에게 더럭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한편 집에 오랫동안 보관돼있던 그 크레파스는 십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크레파스를 쓸 나이는 한참 지나있었지만, 어쩐지 한동안 슬픈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제 내 인생에 크레파스는 두 번 다시 없을 것만 같아서.


 수술을 한 번 끝낼 때마다 무척 힘들어했던 재현이었다. 곁에서 안절부절하는 아내도 무진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재현이를 위해 크레파스를, 아내를 위해 안개꽃 한 다발을 사서 병원으로 돌아갔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현이는 내가 나간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죽었다고 했다. 아내는 소식을 전해온 의사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 따위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내는 재현이가 우리 곁에서 완전히 떠나버린 삶을 나보다 한 시간이나 더 살아왔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하루를 꼬박 새우고 나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슬픈 얼굴로 집안 곳곳을 살폈다. 재현이는 집에 없었다. 재현이의 방은 재현이가 떠나기 전과 거의 똑같았다.


 나는 재현이의 침대 위에 전날 산 크레파스를 내려놓으려다 말았다. 그리고 크레파스를 그대로 든 채 안방의 아내 옆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한참을 함께 울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내 것이 돼버린 크레파스를 사이에 두고. 

         

<아빠의 크레파스>,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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