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l 20. 2019

습작

예순네번째

 오 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부터, 나는 매일같이 취업준비에 몰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거나 집안에서 모종의 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처럼 핑크빛 넘치는 연애나 하기에 나는 너무 나이를 먹었고, 학교까지 졸업한 이상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자기소개서며 대외활동에서의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글 쓰는 일에는 원래부터 소질이 없었거니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무슨 활동을 할 만 한 인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고, 얼마지 않아 모든 바깥활동을 끊고 집에만 처박혀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장애아 보호시설에서 하는 교육봉사를 시작한 것은 정말이지 우연스런 일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초췌한 얼굴의 나를 마주 앉혀놓고 말했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너한테 뭐라 할 사람 없다. 쉬워 보이는 일부터 해보는 게 어떻겠니? 뭐가 됐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교육봉사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용돈이 궁했던 새내기 시절에는 중고등학생 과외도 몇 번 했었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대여섯 살 꼬맹이들에게 언어의 기본부터 가르치는 일과는 카테고리가 달랐다.      


 시설은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도 한 시간은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보호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또 내가 제법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 무척 대단한 일이나 해낸 것처럼 여기는 듯 했다. 난 멋쩍은 기분으로 아주 사소한 일부터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나 사회봉사활동에 나도 모르는 적성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저 온종일 몰두할만한 일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교육봉사라는 일에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대개 일주일도 안 돼 제법 긴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좀 더 지나서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짧은 일기까지 쓰게 됐다. 소장은 날 더러 ‘현장 직원들이 세 달 동안 못한 일을 보름 만에 해냈다’며 치켜세웠다. 립서비스인 건 알았어도 조금 으쓱해지는 건 별 수 없었다. 봉사활동 기간 동안 나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보람으로 행복했으며, 어느 순간부턴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어떤 측면에서는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교육봉사가 마무리 될 무렵이었다. 그동안 나는 조급했던 마음을 말끔히 게워냈고, 잃어버렸던 자존감까지 조금쯤 회복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봉사를 시작한 뒤로 부쩍 혈색이 좋아졌다며 뿌듯해하셨다. 실제로 나는 한결 나아졌다. 없으면 못살 것 같던 항우울제도 차츰 줄여나갔고, 거의 모든 일들을 내 뜻대로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불쑥 솟구치곤 했던 것이다. 다만 교육봉사가 끝난 뒤에는 대체 뭘 해야 할지, 또 당최 마음 한쪽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도리가 없었다.     


 한편 그 와중에도 딱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다은이는 중증발달장애를 갖고 있던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였는데, 또래는 물론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보다도 배우는 속도가 느렸다. 하기야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문장 구성이며 발음 같은 것들이 조금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발음이 비슷한 단어 몇 개를 여전히 구분하지 못했고, 음만 비슷할 뿐 완전히 뜻이 다른 단어를 갖다 쓰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테면 머리를 ‘감다’가 아니라 ‘간다’라고 하고, 개가 ‘죽다’를 ‘줍다’라고 하는 식이었다.     


 단순히 발음만 헷갈린 거라면 별 문제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명확하게 발음하는 일 자체도 드물었고, 말하는 당사자가 헷갈린다고 한들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듣는다면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은이는 발음만이 아니라 단어가 가진 의미 자체를 혼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발음을 몇 번, 몇 십번 반복해 가르쳐도 다음 날이면 원래대로 되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내가 교육봉사를 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그랬다. 그날까지도 나는 몇 시간이나 다은이 곁에 붙어서, 단어 하나라도 제대로 알 수 있게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조촐한 송별회라도 해야지 않겠냐’는 소장의 말도 정중히 거절해가면서.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은이는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답답했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형편없이 실패하는 모양이 나와 꼭 닮아있는 것 같아서.     


 “따까줘요. 언니, 머리 따까줘요” 다은이가 느닷없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말했다. 대번 알아들은 나는 다은이를 돌려 앉히면서 말했다.     


 “우리 다은이, 그럴 때는 ‘따까줘요’가 아니라요, ‘땋아줘요’에요. 언니가 말했잖아요?” 나는 다은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두 갈래로 나눠잡은 뒤 번갈아 땋기 시작했다.      


 “따아줘요? 으응……” 다은이가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응. 땋아줘요. ‘따까줘요’는 어디다 쓸까요? 우리 다은이가 화장실에서 발 씻고 나왔어, 그럼 수녀님한테 뭐라고 해요? 발이 물에 젖었잖아요, 그럴 때 뭐라고 해요?” 나는 다은이의 머리채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발 따아줘요”     


 “아니, 그때 ‘따까줘요’ 해야지. 따라해봐. ‘발 따까줘요’”     


 “……따아줘요, 발 따아줘요” 다은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쯤해서 나는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또 한숨이 나오는 대신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은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그건 언니 온 첫 날에 가르쳐줬잖아” 나는 울먹거리는 소리를 겨우 참아가며 말했다. “언니는 내일 되면 이제 없어. 다신 안 온단 말이야……”     


 “언니, 울어?” 다은이가 고개를 조금 돌리며 물었다.      


 “아니, 안 울어” 내가 대답했다.      


 “미아내요. 다은이 미아내요……”      


 “아냐, 다은이 안 미안해도 돼. 언니가 잘못한 거야. 언니가 미안해”     


 나는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비록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눈망울이 흠뻑해지긴 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안구건조증도 아닌데 무려 반 년 가까이 그랬다. 울고 싶지도 않았고, 울어서도 안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 머리 다 땋았다. 다은아, 어때? 예쁘지?” 나는 다 땋은 머리를 다은이 앞으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다은이는 머릿결이 무척 좋았다. 땋아줄 때마다 귀찮기는커녕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예뻐! 예뻐요. 고마워, 언니” 다은이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고맙긴, 언니가 다은이한테 고마워. 한 달 동안 다은이랑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언니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다은이를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음, 음……”     


 “다은아, 언니가 묻는데 대답해야지. 잘 지낼 수 있지? 다은이가 잘 못 지내면 언니는 슬퍼”     


 “언니, 언니, 보나 언니”     


 “……그래, 보나 언니 여기 있어” 나는 조금 놀라서 대답했다. 다은이가 내 이름과 언니를 같이 붙여 부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보나 언니…… 사람. 사람해요, 사람”     


 “에이, 다은이. 그럴 땐 사랑해요, 라고 해야지”     


 “사람해요”     


 “다은아, 사람이랑 사랑은 다른 거에요. 비슷하게 들리지만 달라요”     


 “으응, 몰르겠어요” 다은이가 머리를 흔들며 얼버무렸다.      


 “다은아, 사람은 언니랑 다은이 같은 거. 사랑은……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음……”     


 “보나 언니, 사랑?” 다은이가 날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보나 언니, 사랑이에요. 사랑”     


 “아니, 아니야. 언니는 사람이야. 다은이가 언니한테 하는 게 사랑인거고”      


 “사람? 사랑……” 다은이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고 나서 다시 말했다. “보나 언니, 사랑이야”     


 “아니…… 뭐가 똑같은 거야? 사람이랑, 사랑이랑” 나는 대뜸 답답해져서 물었다. 다은이에게 확실한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은이는 음, 음, 하며 몇 초나 고민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슬퍼요”     


 “슬…… 뭐?” 나는 또 한 번 놀라서 되물었다. ‘슬프다’는 말은 전부터 몇 번 가르쳐주긴 했지만, 다은이 스스로 먼저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슬퍼요? 뭐가 슬픈데?”     


 “사람, 사랑” 다은이가 말했다. “없으면 슬퍼요. 둘 다”     


 “……”     


  나는 다은이의 말에 대답은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대로 눈물이 흘렀다. 한두 방울이 뺨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소나기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보나씨! 무슨 일이에요? 왜 울고 있어요? 다은아, 언니한테 무슨 일 있었니? 다은아……”     


 그 순간 건넛방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있던 소장이 뛰어 들어왔다. 내 어깨를 흔들며 무어라 말을 했지만 내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보나는 참 눈물이 많아, 세상에 슬픈 일이 그렇게 많니, 하던…… 그 사람의 말이 불현듯 떠올라 몇 번이고 머리를 울릴 뿐이었다.          


<이음동의어>,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하단 링크에서 해당 글과 그림을 구매해주시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글과 그림 구매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