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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24. 2019

습작

예순일곱번째

 “비가 올 땐 무슨 생각을 하나요?”     


 터무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질문이란 단순하면서 터무니없는 것들이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뭐가 되고 싶은가, 당신은 당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이런 질문들은 이렇다하고 정해진 답도 없거니와, 간혹 적당한 대답을 내놓더라도 얼마 안 가 낡고 녹슬어가다가 이내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요 며칠사이 흐리고 습기 찬 나날들이 이어지더니 기어코 하늘에 구멍이 난 모양이었다. 이따금 후두둑 떨어지던 큰 빗방울들이, 이제는 시야에 세로로 선을 긋고 있었다. 언젠가 비가 올 줄은 알았지만 가방에 우산이 없는 줄은 몰랐다. 


 나는 와르르 쏟아지듯 흩뿌리는 비 사이를 냅다 달렸다. 신발 밑창에 고인 빗물이 철퍽거리며 달라붙었다. 맞아보니 실로 무지막지한 비였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얼마나 묵직했던지, 내리는 비에 젖기보다는 마구 두들겨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코너에 몰린 복서같이 머리를 감싼 채 계속해서 달렸다. 


 정류장에 도착할 무렵에도 비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로 주변으로 사람들이 가득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그사이 나는 축축하고 습하며 한편으론 찌는 듯이 더운 버스 내부에서 이곳저곳으로 부대끼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 횡단보도를 건너 지났다. 건너편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단은 적당한 건물 그늘을 찾아들어가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며 팔뚝과 다리에 들러붙은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고개를 들어 도로 쪽을 바라봤다.


 비는 줄곧 쏟아져 내릴 모양이었다. 빗발이 어찌나 거센지 도로 건너편이 안개가 낀 듯 흐릿해 보였다. 그 앞으로 이따금 차가 지나갔다. 또 몇 대는 고깔을 쓴 것이 택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빈 차’표시가 빨갛게 켜 올려 진 차량은 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마저도 일말의 기대조차 허락지 않으려는 듯, 하나같이 더 속도를 내며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비가 올 땐 무슨 생각을 하나요?’      


 무슨 생각을 하긴? 생각을 할 겨를이 있어야 생각이란 걸 하지. 애당초 이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덜 젖겠다고 시도를 해보지만 얼마 안가서 단념하고 만다. 그 즈음 나는 손끝에서 머릿속까지 빠짐없이 적셔진 상태다. 빗속에선 젖은 옷을 말릴 수 없다.


 나는 준비도 없이 와서 당신을 만났다. 그렇게 비가 오면 비에 대한 생각밖에 할 수 없다. 흠뻑 젖어버린 뒤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탔다. 나는 택시 뒷좌석에 기대 누운 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내리는 비를 보며 당신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처럼 비가 흘렀다. 봄은 저 멀리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때마침 밀려드는 당신에게, 나는 지금 내리는 비가 장마인지 소나기인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다.     


<비가 올 땐 무슨 생각을 하나요?>,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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