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걸로 치기로 했다.

by Cindy in Wonderland

돌고 돌아, 지금의 나는 부동산 개발 컨설턴트이다.

그리고 부동산 디벨로퍼의 다른 말은 아마도 쌈닭이다.


토지주, 구청, 시청, 도청,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은행, 투자사, 시공사, 설계사, 변호사, 분양대행사.

자금 조달, 복잡한 인허가, 타이트한 일정, 다양한 이해 관계자 조율, 끊이지 않는 송사...

매일매일 싸워야 할 상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면을 쓴 나의 하루는 대체로 평온하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두 사람, 남편과 여동생 덕분이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둘 다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일을 하는데,

특히 중환자실에서 누군가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하는 여동생을 보며,

그들에 대한 존경과 함께 나의 관점은 이렇게 바뀌어갔다.

'인허가나 시공이 늦춰진다고 해서 사람이 죽거나 사는 것도 아니잖아!'


게으른 것과는 다르다.

내가 손 쓸 수 없는 일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을 다해 끝낸 후 나는 한없이 느긋해졌다.

이것이 결국 굉장한 강점이 되었다.

이런 마인드가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번아웃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이 느긋한 성향이

선천적인지, 사회생활 덕분에 생긴 후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치열한 사회생활이 우리를 더 느긋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갈등을 싫어한다.

여동생과 평생 딱 한번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남편과는 연애 3년 결혼 2년 동안 팬트리에 넣을 수납장 크기로 단 한번 싸웠다.


그리고 느긋함과 느긋함이 만나 우리는 함께, 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은 ‘부계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기원전 235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된 제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제도는 세계가 서로 단절된 시절, 이미 모든 문명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지금 제도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은 우리에게 필요한가?

우리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엄마는 남편을 사위라 하고 어머니는 나를 며느리라 하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다.

공동명의의 집이 있고 리노루나의 엄마아빠이며

서로를 ‘남편’과 ‘아내’라 부르지만,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내 남동생의 결혼식 날 피로연 무대 뒤에서

단둘이 반지를 교환하며 '결혼한 걸로 치기로'했다.


"결혼한 걸로 치기로 했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지금의 마음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내가 틀렸다고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이 방식이, 지금의 우리 그 자체이니까.


변해버린 서로의 마음을 결혼이란 제도로 붙잡아두는 일 또한 하고 싶지 않다.

마음이 떠나버린 빈 껍데기, 그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의 서로를 믿고, 아낌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리노가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깨우고,

루나가 밥 달라고 외치는 이 소란스러운 일상이,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서약이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사랑의 서약


행정서류 한 장보다 함께 만든 매일의 기억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을

우리는 천천히, 우리의 방식으로 증명해 가는 중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게을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