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러시아 땅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았다. 이것은 값비싼 담비 가죽을 좇다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러시아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찾아 동토의 땅을 개척했고, 이후 경제적 판단에 따라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했다.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국 뒤에도 돈이 있다. 누르하치의 아버지 탁실리와 조부 기올개는 명나라에 의해 살해당했다. 명은 북방 여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족장을 처형했고 그 대가로 누르하치에게 조공과 무역 특권, 관직 부여 등 경제적·외교적 혜택을 제공했다. 후금은 이를 바탕으로 말, 인삼, 가죽 등을 교역하며 은과 무기, 군자금을 확보했고, 결국 청이라는 제국을 세우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명나라가 내어준 혜택이 자신을 무너뜨린 원인이 되었다.
미국 케네디 가문의 사례도 흥미롭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는 증권 투기와 금주법 시대의 술 유통권, 영화 산업,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합법과 편법을 넘나들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자산은 자녀들의 정치 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케네디 가문은 대통령, 장관, 상원의원을 배출하는 미국의 정치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권력의 뿌리는 부였고, 그 부는 시대의 틈을 읽은 자의 몫이었다.
이념의 충돌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도 따지고 보면 돈에 대한 철학의 차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자유와 선택의 도구로 보지만, 사회주의는 돈을 통제와 분배의 대상이라 본다.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흔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때로 돈이 거의 전부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 아닐까. 허세를 걷어내면, 우리는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국은 돈이지."
하버드대의 연구는 행복의 핵심이 돈이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돈이 없으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도, 친구도,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받쳐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된다.
우리는 돈을 벌고 쓰면서도, 정작 잘 버는 구조나 잘 쓰는 방법은 배우지 않는다. 경제적 격차는 대부분 소비 습관이 아니라 돈을 버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절약한다고 해서 격차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좋은 직업이란 결국 ‘잘 버는 직업’이고, 좋은 삶이라 부르는 것들—좋은 집, 음식, 교육, 여가—은 대체로 비싸다. 결국 우리는 돈을 중심으로 가치를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람, 공동체, 환경, 삶의 질처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치들은 때때로 소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고, 그 결과 다수의 행복이 무너지기도 한다. 경제적 논리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는 결국 돈만 남고, 신뢰와 연대는 사라진다.
우리가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이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써라.”
이 말은 단순한 근면 예찬이 아니다. 돈을 수단으로 삼되, 삶의 방향은 잃지 말라는 경고다.
돈은 문화를 만들고, 거짓을 정당화하며, 위선을 포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결투 장면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 당시 서부 개척지의 보안관과 마을 지도자들이 총싸움을 막기 위해 무기 소지를 금지하거나 제한했으며, 총격이 벌어지는 경우 대부분 기습이나 등 뒤에서 쏘는 형태가 많았다고 한다.
드비어스(De Beers)는 20세기 초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증표”라는 문화를 창조했다.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해 사치품을 사회적 관습으로 상업화하였다. 다시 말해, 사랑을 명분으로 다수의 주머니를 털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패션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며 윤리적 소비를 촉구하지만,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돈 앞에서 더욱 정직해야 한다. 돈을 무시하지도, 맹신하지도 말아야 한다. 현명하게 벌고, 똑똑하게 쓰되, 휘둘리지 않는 것. 그것이 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품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