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중환자실 면회
어제 할아버지 면회에 다녀왔다.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긴급하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하루 최대 2명에 20분, 1명씩만 입장 가능한 면회. 아빠가 먼저 들어갔다가 바통터치하며 교체되었다.
감염내과라서 개방형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 분들과 분리되어 무균실에 혼자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주위와 몸에 온갖 장치와 의료 기기들에 싸여 무기력하게 누워계신 모습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왔죠..!
마스크를 썼는데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민이 왔냐 요즘 뭐 하니, 몸은 건강하니, 엄마는 잘 있니... 그리곤 또 눈물을 보이셨다. 어릴 적엔 단점이라 여겼던 ‘손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병실에 찾아올 젊은 여성은 바로 한 명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으니.
1931년생인 그는 올해 96세가 되었다. 아주 연로하신 연세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마지막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 건 90세 생신이 되던 해 모습이 생생한 게 크다. 거진 70대 노인과도 견줄 만큼 신체, 정신적으로 인지가 좋은 편이셨고, 가장 건강한 100세 노인이 되지 않을까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자란 머리만큼 당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귀담아듣고 이해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기억에 없던 아주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를 향한 소망이 있었다. 열아홉 스물에 가족 하나없이 피난민이 되어 삶을 일구어내고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며 꽃피웠던 이야기를 꼭 엮어야겠다. 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더라도 외로움에 사무쳤고 늘 뒤에서 눈물을 훔치셨던 당신의 삶에 이런 의미가 있었다고 선물하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가 선택한 삶과 단절된 가족에 대한 궁금증, 오래 품고 존경해 온 어른을 향한 표현이었다.
드문드문 들었던 파편을 연결해 보자
오래전부터 막연히 품어왔던 계획이 있었다.
그 파편을 본격적으로 엮어보려 했던 시점은 2023년 봄, 네덜란드 유학 입시가 끝난 직후였다. 계획을 구체화해갈 무렵 23년 초 갑자기 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한참을 울며 후회가 밀려왔다. 당신의 존재가 내게는 거대한 기둥이었다는 걸 비로소 체감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 걸까. 고등학생 때 외조부모의 마지막을 맞이하며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후회가 있었다. 충분히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상실은 예상보다 깊었다.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곧잘 말은 잘했지만 전보다 살가운 손녀가 되어보자. 옆에 붙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헤어질 때는 꼬옥 안아드리자. 결심은 했지만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과의 대화는 꽤 유쾌하고 유익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께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의 축적 덕이다.
내 삶의 방향성을 잡느라 관계를 잠시 놓았던 시점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고집이 세고 깐깐하지만 영민하고 손재주가 많으며 삶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그.
이제 우렁찬 목소리도 만개한 웃음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었다며 지난날을 떠올리신다는 걸 알기에 그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썩 위안이 되진 않는다.
병원에 들른 후 할머니댁에서 떡국을 끓여 먹었다.
조잘조잘 수다를 좋아하는 건 3대째 물려받은 습성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자꾸만 그녀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기록해 두라며 채근한다.
그래요, 틈틈이 녹음하고 정리한 것들이 있긴 한데
한쪽의 입장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니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