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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간다. 한라로 간다.

백수 1일 차

by 투오아

20대 때부터 꿈꾸던 여행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설악 공룡능선 그리고 두 번째는 제주도 자전거로 한 바퀴 돌기이다.


이번 이직을 계기로 일주일의 시간이 생겨 더 나이 들면 힘들 것 같아 공룡능선을 가려다가 같이 가기로 한 동행에 일정 변경이 있고 겨울로 들어선 설악에서 조난 사고가 잦은 데다 코로나로 대피소 운영을 하지 않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아내가 그럼 한라산이 어떠냐며 추천해 주었다. 제주도라면 혼자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목표지를 한라산으로 변경하였다.


제주도는 우리나라라 마음먹고 바로 출발할 수 있어 좋다. 어제저녁 급히 바꾼 일정에도 비행기도 예약하고 숙소도 예약하였다. 약간 흥분하였는지 새벽까지 잠이 안 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 피곤하다.


아침에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씻고 아이들 온라인 수업하는 것 보고 내일 저녁에 보자고 인사하며 나왔다. 역시 재택근무 중인 아내가 몇 번이고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하며 걱정해준다. 이번 여행을 동의 해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보내본다.


왜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내가 경험한 다섯 번의 이직 동안 한 번도 여행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번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생명과학 그리고 데이터 특히 유전체학이 바꾸어 나갈 미래에 대한 신앙적인 믿음으로 달려온 지난 11년이었다. 몸이 아파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지난 일 년이었다.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처음 이 전공을 선택했던 2003년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은 새로 시작이다. 그 첫걸음을 강렬했던 20대를 정리하기 위해 떠났던 지리산 종주 때처럼 나를 다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내 몸이 알려주었나 보다.


숨을 들이쉬려면 숨을 내쉬어야 하고 나를 다시 채우려면 나를 비워내는 고독한 여행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부끄럽지 않은 첫걸음을 떼길 바라며 이렇게 기행문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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