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의 건강검진을 위해 휴가를 내었다. 일반적인 건진이 아니다 보니 대구에 있는 전문병원까지 내려가는데 자식 대표로는 내가 휴가를 내고 같이 다녀오느라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새벽 6시부터 금식인데 어제저녁을 드시고는 그 뒤로 아무것도 안 드시는 부모님께서 자식 아침은 또 차려주신다.
얼른 먹고 길을 나서 고속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다. 때가 또 점심시간이 되니 자식 밥 먹여야 한다며 근처 맛집을 찾아보라하신다. 괜찮다고 해도 기필코 찾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 하시어 찾아보니 대구는 막창이 유명한지 막창 집이 여러 개 나온다. 그중 가장 평점이 높은 집으로 가본다.
두 분은 드시지 않고 나만 먹어야 하니 일 인분만 주세요 하는데 일 인분은 안 된다고 하여 2인분을 시켰다.
드시지도 않을 식사를 자식 먹이겠다며 불판에 요리조리 구우시더니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서 젓가락으로 막창을 집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신다. 그러고는 자식 먹을 생각하니 신기하게 배가 안 고프다시며 나 혼자 먹는 것을 살펴보신다.
20년 전 공부한다며 대전 내려간 나를 밥 먹이시겠다면서 서울 집에서 밥이며 반찬이며 몽땅해서 아침 7시에 대전 학교에 오셔서 연락하셨던 그때가 떠오른다. 부모님도 그때가 생각이 났는지 그당시의 일을 말씀하시며 참 행복했다 하시며 웃으신다.
포장으로 2인분을 주문하니 사장님께서 가지고 다니면 상할 수 있다고 말린다. 그래서 그럼 병원 건진 끝나고 오겠다니까 오시면 3인분 드리겠다고 말씀하신다.
병원에서 일을 다 보고 부모님이 허기진다고 말씀하셔서 아까의 그 식당으로 향한다. 사장님이 반기며 3인분을 가져다주고 또 서비스로 달걀말이며 소시지도 가져다주신다. 그 친절함이 정말 감사하다.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며 이제까지 외식 중 제일이다 하신다.
말끝마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시는 어머니. 누구보다 항상 앞장서 걸으시던 아버지. 이제는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습이 너무 불안하고 이제는 가장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신다.
내 나이 마흔여덟이고 아버지는 내년에 팔순이시고 또 부모님 두 분의 금혼식이 내년이다.
벌써 친구들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도 한 내 나이와 이 세월이 오늘 하루의 기억을 좀 더 밀도 있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온 기차역에서 할머니만 찾던 하지만 이제는 전화도 잘 안 드리는 사춘기의 첫째와 곧 2차 성징을 보이려고 준비하는 둘째가 어머니 눈에 아른거리시는지 손주들 뭐라도 먹여야 한다며 처음 보는 비싼 빵을 듬북 사서는 손에 쥐어주신다. 속이 후련하다고 하시며 아버지와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시는 그 모습이 감사하고 또 넘어지실까 봐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