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마무리 못하고 또 한 해가 가고 있다고 느끼던 2018년 세밑에 나와 아내와 아들 둘 이렇게 네 명은 베트남 호찌민으로 향하였다.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월남전, 베트남 쌀국수, 삿갓처럼 생긴 모자, 박항서 감독, 20세기에 미국과 전쟁하여 이긴 유일한 국가, 오토바이, 사람과 차가 뒤 섞인 정신없는 교차로
이 정도의 단편 지식만 가지고 베트남으로 향하였다.
여행이라고는 비행기 타는 것과 수영장 가서 놀고 음식 사 먹는 것 외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우리 아들들과 혼자 가서 편히 쉬고 싶지만 아내와 엄마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아내 덕에 그래도 한번 더 외국여행을 가본다.
호찌민 공항에 도착하여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이층으로 올라가 택시를 타고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남쪽의 레지던스 아파트로 향한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리조트가 아닌 비앤비 숙소로 정했는데 무얼까 좀 더 호찌민 사람들을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잠을 자고 첫날 아침 아파트를 나와 건너편 마트로 향하였다. 길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모르겠는 그때 베트남 남자분 두 분이 성큼성큼 길을 건너기 시작하여 따라 건너기 시작하였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것이로구나 싶을 때 어느새 건너편에 건너와 있는 우리 식구들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와 진짜 뭐 이렇게 건너지 했던 길 건너기가 며칠이 지나자 베트남은 사람을 믿는 것이 구나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첫 번째 기억이다.
호찌민의 중앙 시장 앞은 정말 너무나도 혼잡하였다. 아무리 그 상황에 익숙한 베트남 사람들이라도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길을 건너가다 차에 부딪히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뭐라고 큰 소리로 몇 마디 하더니 그냥 길을 가고 차도 그냥 다시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경찰이 와야 할 상황으로 보였는데 그냥 넘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큰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워낙 차와 사람이 뒤 엉키니 애초에 과속이 없었다. 그래서 사고가 나도 크게 나지가 않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면서 어떤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에 의한 대형 사고를 막는 문화와 애초에 뒤 섞여서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게 만드는 문화. 나는 여기서 베트남의 인간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이미 반년이 넘게 지나버린 베트남 호찌민에서 또 기억나는 한 가지는 꾸찌 터널 견학이었다.
월남전 때 베트남 군인들이 구축했던 정글 속 진지가 꾸찌 터널인데 가이드가 우리는 비록 전쟁을 하고 서로를 죽였지만 미국인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투어는 아래 사진에서 처럼 정말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위장술부터 정말 잔인하기만 한 부비트랩 등과 실제 지하 땅굴을 걸어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다. 세계 유일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겪었으며 아직도 대부분의 청년들이 군대를 의무적으로 가고 있다.
이런 우리의 상황 속에서 6.25 보다 약간 뒤에 발발했던 월남전의 현장이 이제는 관광 자원으로 이용되고 이제는 적국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다고 당당히 말하는 가이드가 살고 있는 베트남의 현재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 두 녀석도 지금 상황이라면 십 년 정도 뒤면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다. 분단은 현실이고 우리의 의식은 파주 언저리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언젠가 베트남처럼 다 추억으로 바뀌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을지 도저히 현재는 상상도 어렵지만 분명 기적을 일구어온 우리나라니 만큼 꼭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해보는 경험이었다.